육군첩보부대(HID) 소속이던 고 심문규씨는 55년 9월 동해안을 따라 북한에 잠입했다가 북한군에게 붙잡혔다. 북한에서 1년7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 이중간첩 임무가 주어졌다. 북한군은 그에게 남한 HID의 기밀을 탐지하고 요인을 암살하라고 지시했다.
심씨가 57년 10월 서울에 도착한 뒤 택한 길은 자수였다. 그는 곧바로 HID를 찾아가 북한군에게서 받은 지령을 털어놨다. 하지만 HID는 제발로 찾아온 그를 563일간 구금하고 육군 특무부대를 거쳐 군 검찰로 송치했다.
군 검찰은 민간인 신분인 HID 소속 북파공작원을 수사할 권한이 없었지만 심씨를 중앙고등군법회의에 기소했다. 심씨는 처음에는 군사기밀 탐지 등 단순 간첩혐의를 적용받았지만 나중에는 위장자수 혐의를 받고 61년 5월 대구교도소에서 처형됐다.
45년 뒤인 2006년 10월 심씨의 아들 한운(60)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6개월 전인 2006년 4월에야 아버지가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사연인지 파헤쳐보기로 했다.
일곱 살 때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를 평생 찾아다닌 그였다. 한운씨는 “아버지가 사라진 뒤 어머니는 음독으로, 여동생은 급체로 숨지고, 남동생은 남의 집에 양자로 보냈는데 10여년 뒤 세상을 등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15일 “HID의 내부 심문 자료 등을 검토한 결과 ‘간첩 심문규 심문 경위’에 들어 있는 근거들은 그를 위장자수로 몰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는 심씨 가족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한운씨는 “한을 풀어 감개무량하다”면서 “아버지처럼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처형된 분과 유족의 억울함을 밝히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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