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에도 “우리팀 경기 보고파”…10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블루 그라운드

암투병에도 “우리팀 경기 보고파”…10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블루 그라운드

기사승인 2009-09-21 17:45:00

[쿠키 스포츠] 축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사진도 좋아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을 찍는 명예 사진기자가 됐다. 10여 년동안 축구팀을 쫓아 다녔다. 홈 경기든 원정 경기든 심지어 외국에까지 쫓아가 응원하는 팀의 사진을 찍었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홈 경기에 가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경기장에서도 끝까지 지켜보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홈 경기를 3경기 연속 보지 못했다.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다시 한 번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들의 모습을 앵글에 담고 싶었다.

9월 6일 수원월드컵경기장. 그는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를 한 채 경기장에 갔다. 들고 있는 카메라가 좀 무겁게 느껴졌다. 경기장에는 1만5000여 명의 팬들이 모였다. 경기 전 전광판에 구단이 준비한 동영상이 상영됐다. 그의 사연이 나왔다. 그가 찍은 사진들도 나왔다. 동영상은 “Don't give up. You are loved”라고 말하고 있었다.

응원팀은 후반 시작하자마자 실점했다.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또 골을 먹었다. 2-3으로 역전됐다. 응원팀은 홈에서 패할 수 없다는 각오로 총 공세를 펼쳤지만 골은 지독히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좀 이겨줬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 졸이고 있던 후반 44분, 기다리던 동점골이 터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골을 넣은 후 서포터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간 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는 포효하거나 주먹을 불끈 쥐는 대신 무언가를 묻는 듯하더니 경기장 통로 쪽으로 뛰어갔다. 링거를 꽂은 채 휠체어에 앉아있던 ‘그’였다. 스트라이커는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서로 손을 마주쳤다.

경기는 3대 3 무승부로 끝났다. 경기 후 선수들은 그에게 몰려가 사진을 찍었다. “힘내세요”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방송사 인터뷰를 마친 감독도 그에게 와서 무릎 굽히고 앉아 눈을 맞춘 채 대화했다. 인사를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의 눈은 퉁퉁 불어 있었다.

그는 그날 이후로 아직 경기장에 가지 못했다. 대신 그동안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21일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장소는 자신이 입원하고 있는 수원 성빈센트병원의 중앙로비였다. 그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의 명예 사진기자인 신인기(43)씨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
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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