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한 운전면허 적성검사

하나마나한 운전면허 적성검사

기사승인 2009-09-27 17:48:01

[쿠키 사회] 회사원 고모(27·여)씨는 지난 주말 운전면허를 갱신하려고 서울 외발산동 강서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았다. 1종 면허를 딴 지 7년이 됐으니 6개월 안에 적성검사를 받으라는 안내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체검사실에 들어선 고씨는 시력검사표 앞에 앉은 여직원 지시에 따라 검사를 받았다. “눈 가리세요.” “반대쪽 가리세요.” “(두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떼세요.” “앉았다 일어나세요.” “아픈 데 있어요?”

모든 항목에서 정상 판정을 받고 ‘합격’ 도장을 받기까지 30여초밖에 안 걸렸다. 서류를 작성하고 차례를 기다린 시간을 합쳐 5분 안에 끝났다. 검사비는 5000원. 여기에 검사 수수료 4000원과 면허증 발급 수수료 6000원이 더 붙어 모두 1만5000원을 냈다.

다른 운전면허시험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남시험장에서 나오던 한 20대 여성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하던데 저는 안 시키네요. 청력검사는 아무도 안 했고요”라고 말했다. 도봉시험장에서 만난 김모(33)씨는 “다른 지역에서도 검사를 받아 봤는데 대충대충 하더라”고 했다. 시한 6개월을 넘겨 범칙금 3만원을 더 냈다는 50대 여성은 “이렇게 하면서 늦었다고 범칙금을 매기느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치러지는 적성검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1종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7년(만 65세 이상은 5년)마다 받아야 하는 적성검사는 시력검사와 앉았다 일어서기로 끝난다. 함께 해야 할 청력검사는 따로 하지 않는다. 정신 질환자나 약물 중독자를 가려내는 검사는 아예 없다. 서류에 쓰인 질문에 응시자가 ‘예’나 ‘아니오’로 답할 뿐이다. 합격률은 99%를 넘었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운전하는데 지장이 있는 사람까지 그냥 통과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전국 운전면허시험장 25곳(태백시험장 제외)에 있는 신체검사실은 경찰공제회가 운영한다. 일선에서 물러난 60∼70대 의사, 간호(조무)사, 사무직원 등 5∼10명이 연봉계약직으로 근무한다. 경찰공제회 김효진 사업운영본부장은 “검사 대상자가 경찰서 민원실과 외부 병·의원을 번갈아 오가는 수고를 덜어주려고 면허장에 검사실을 설치했다. 검사비는 경찰 복지에 쓰인다”고 설명했다. 적성검사를 받을 수 있는 외부 병·의원은 전국 1807곳이지만 찾는 사람은 극소수다.

적은 인력이 매일 수백명에서 수천명을 상대하다 보니 검사는 더욱 엉성해졌다. 시험장 측은 그래도 할 건 다 한다고 해명한다. 청력은 시력을 잴 때 지시하는 내용을 알아듣는 정도면 되고, 신체 장애 여부는 앉았다 일어서기로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의사는 “노련하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피검자들은 뭘 몰라서 ‘다른 검사를 왜 안 하느냐’고 하는데, 우리는 걷는 모습만 보고도 발가락에 있는 문제까지 잡아낸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김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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