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말해달라”는 형식적인 질문을 했다. 그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형식적이지 않은 답을 했다. 매일 매일의 경기가 항상 중요했다고 했다. 언제나 그는 붙박이 주전이 아니었다. 오늘 잘해도 내일 누구에게 밀려날지 몰랐다.
19년을 그렇게 뛰었다. 부동의 주전이라고 하기도 힘들었고 타이틀 하나 딴 적도 없었다. 타율 3할조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아마와 프로를 통틀어 국가대표로 뛰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LG의 레전드가 됐다. 30일 공식 은퇴식을 하는 이종열 LG 육성군 코치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대표가 될 만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매년 버텨내기가 힘들었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의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다는 게 내겐 약이 됐다”고 털어놨다.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스스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노력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타고난 재능은 부족했을 수 있지만 그에겐 재능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끈기와 성실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1991년 LG트윈스에 계약금 900만원을 받고 입단한 이후 19년 동안 LG에서만 활약했다. 통산타율 0.247, 1175안타, 448타점을 기록했다. 성실한 플레이로 내야 수비의 주축 역할을 맡았지만 스타플레이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이 코치는 그럼에도 LG에서 19년간 선수로 뛰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운으로 19년을 버텨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부심 느낀다”며 “다른 팀으로 옮기지 않고 LG에서만 뛰었다는 점도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충고를 졸업하고 그가 LG에 입단했을 때 팀에는 김재박과 이광은이라는 거목이 버티고 있었다. 국가대표 출신 송구홍도 그와 같은 해에 입단했다. 1992년에는 향후 타격왕까지 했던 박종호도 팀에 입단했다. 1994년 시즌에는 거포 내야수였던 한대화가 LG로 이적해왔고 국가대표 유격수 출신 유지현도 입단했다. 쟁쟁한 스타들이 항상 LG 내야에는 차고 넘쳤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타구에 얼굴을 맞고 앞니가 4개나 부러지기도 했고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부상 후 다시 LG 내야에서 출전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라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타격폼을 바꾸고, 스위치 히터로 변신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이 코치는 “내가 부상을 입었을 때 팀에서 재활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가장 먼저 재활체계를 갖췄던 LG에서 뛰었기 때문에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19년을 LG에서만 뛴 그는 그의 땀과 열정이 녹아 있는 서울 잠실구장에서 팬들에게 선수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한다.
은퇴식을 앞둔 그는 구단과 팬들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19년간 선수생활을 한 것, 선수 은퇴 후 육성군 코치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그는 “구단에서 좋은 시간을 주셨다”고 표현했다.
이 코치는 “LG가 2000년대 후반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지금 LG는 새로운 팀으로 태어나는 중”이라며 “육성군 코치로서 LG의 변신에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열렬했던 LG 팬들의 성원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감사를 표시한 뒤 “새롭게 태어날 LG를 기다리고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 사진 제공 LG 트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