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지난 2000년 4월. 탤런트이자 방송인 홍석천은 한 손오공을 모험을 그린 한 어린이 뮤지컬에 ‘사오정’ 역으로 출연했다. MBC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를 진행하고 있던 홍석천은 이때까지는 어린이의 친근한 벗이자, 시청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연예인이었다. 그 후 5개월 후 홍석천은 순식간에 ‘혐오’ 대상으로 사회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같은 해 9월말 홍석천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뽀뽀뽀’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했는데 나 스스로 성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해 괴로웠다”며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부모님들과 팬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홍석천은 “내가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은 내 영혼의 문제로 매우 중요하다”면서 “그동안 특별한 계기가 없어 밝히지 않았던 것일 뿐 주변 사람들에게는 줄곧 이 사실을 시인해왔다”며 ‘뽀뽀뽀’ 등 모든 방송 출연을 중단했다.
홍석천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어 커밍아웃을 선언했지만, 스스로에게는 고난을 안겨줬고 한국 사회에는 커다란 충격과 동시에 사회적 의제를 던져줬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10년, 홍석천과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화되어왔을까.
홍석천이 커밍아웃한 2000년과 그 다음 해인 2001년까지 ‘커밍아웃’과 ‘동성애’는 만지기 조차 아슬아슬한 뜨거운 의제였다. 홍석천은 ‘뽀뽀뽀’는 물론 KBS2TV ''야한밤에‘ 출연 정지를 일방적으로 통고했고, KBS 제2라디오 시트콤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는 출연 정지와 함께 미리 녹화된 방송도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동성애 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성애 지지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은 물론
“홍석천의 방송출연금지는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폭력”이라고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에 대해 기독교, 천주교, 유고 등 종교단체는 들은 “동성애 논란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반박했다.
홍석천은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거부당하는 존재로 화제를 낳았다. 2000년 11월 3일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설 예정이었던 홍석천이 “아직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 “보건복지위가 희화화될 수 있다”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국회 앞에서 발길을 돌린 것이다.
힘든 상황을 겪던 홍석천은 해외에서조차 이슈가 되었다. 2003년 LA타임스는 “‘한국 스타, 커밍아웃 뒤 인기 추락’이라는 서울발 기사에서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홍씨가 한국판 ‘세서미 스트리트’인 MBC TV ‘뽀뽀뽀’ 출연이 정지되고 동료배우들까지 그를 피하는가 하면 10대 소년들은 길거리에서조차 욕을 퍼부었으며 가족들까지도 동반자살을 권유하는 혹독한 세월을 지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홍석천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해외에서조차 그의 행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국의 공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선언해 동성애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하며 홍석천을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에 선정했다.
홍석천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해 9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는데, 세월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성적 소수자들 살만한 세상 위해 힘을 보태겠다”며 입당했다. 3년 만에 홍석천은 성적소수자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고, 그의 행보와 발언을 통해 사람들은 한국의 성적소수자에 대한 변화를 읽었다.
또 2007년에는 케이블TV에 얼굴을 비추며 본격적인 활동에 임하기 시작한다. 한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자신의 이상형은 근육질 꽃미남이라고 거침없이 고백을 했지만, 이에 대해 대중들의 시선은 이전보다 따갑지 않았다. 이어 2008년에는 아예 동성애자들의 일상과 고민을 다룬 프로그램 진행을 맡게된다. 비록 흥미 위주의 접근이라 논란이 일긴 했지만, 동성애가 방송가에서 일회성 아이템이 아닌, 한 프로그램의 메인 주제로 떠올랐으며 이를 이끄는 이가 홍석천이라는 사실은 세상이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올랐음을 시사했다.
이런 홍석천은 또한번의 행동으로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된다. 이혼한 자신의 친누나의 아이들을 입양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조카들 생부의 친권포기 각서를 받으려면 법적인 입양자, 보호자가 필요했으며, 홍석천은은 보호자 개념으로 조카들을 입양했다. 그러나 또 이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커밍아웃’이라는 홍석천의 행동이 세간의 시선에서 어느 정도 수그러들 즈음 홍석천은 동성애자로서 넘기 힘든 영역에 또한번 발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2010년.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한지 10년이 지난 현재 홍석천을 받아들이는 세상의 시선은 ‘평범’해지다 못해, 다른 의미로 특별해졌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기러 온 홍석천에게 사람들은 다가가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구했고, 홍석천은 스스럼없이 그들과 어깨동무하며 환하게 웃어줬다. 그동안 트랜스젠더 연예인이 다수 나오고,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는 물론 드라마까지 나오자 사람들은 ‘동성애’에 대해 사람들이 관대해진 까닭이다.
홍석천이 지난 6월 12일 열린 제11회 퀴어문화축제에서 “커밍아웃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성 정체성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이유도 없다”며 “스스로를 사랑해야 타인의 사랑도 받을 수 있다. 여러분 모두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발언이 성소수자들 뿐만 아닌, 다른 이들에게조차 박수를 받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내 가족과 내가 아는 사람들’만 아니라면 성적소수자가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성애자는 “아직은 국한됐지만 내가 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점점 공개적으로 변하고 있다.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도 자유롭게 와서 대화하고 놀고 간다. 그러나 역시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에도 만족한다. 게이가 ‘병’이나 ‘정신이상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적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아직도 논란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2010년 대한민국 사회의 포용력은 10년 전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바로 홍석천이 10년 전 외로이 외친 ‘커밍아웃’이 끌고 온 변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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