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현재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김광수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처럼 극과극의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 것이다. 한쪽에서는 매니저로서는 최고를 외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마케팅과 돈으로만 연예인을 키우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예인들과 격이 없이 지내는 제작자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연예인들을 속칭 ‘굴리는’ 제작자로 비판받는다.
‘연예계의 권력자’ ‘연예계의 실력자’ ‘연예계를 망쳐놓는 제작자’ ‘최고지만 닮고 싶지는 않은 매니저’ 등의 수식어는 김광수 대표가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고 나쁨을 떠나 국내 엔터테인먼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광수 대표이기도 하다. 그런 김광수 대표가 최근 몇 년 간 다시 음반제작자로, 드라마제작자로, 영화제작자로 그리고 뮤지컬 제작자로 나서며 주목받고 있고, 여기에 소속 연예인들과 마찰도 주목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난 영원한 매니저”
김광수 대표의 이력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심있는 이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알고 있다. 1981년 KBS ‘백댄서’ 시절을 거쳐 85년 가수 인순이 로드 매니저로 입문, 김완선, 구본승, 윤상, 황신혜, 이미연, 조성모 등 당대 최고의 스타를 만들었고, 이후에도 이효리, 송승헌, 이범수, SG워너비, 씨야, 티아라, 다비치 등의 매니지먼트를 총괄했거나 지금도 총괄하고 있다.
2000년도 초반 조성모를 발굴해 1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고, 이미연을 내세운 편집 음반 ‘연가’를 빅히트 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김광수 대표는 무수히 많은 편집 음반 양산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편집 음반의 히트는 바로 개별 가수들의 앨범 부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는 두 차례나 PD 사건에 연루되어 단칸 지하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1995년
PD들에게 승용차를 선물하거나, 돈을 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또 2002년에도 가수의 홍보 청탁과 함께 금품을 주고 받은 혐의를 받았다.
이후 2004년 초 복귀해 ‘SG워너비’를 내세워 음악성으로만 승부해 결국 성공했고, 2006년도에는 5월 경에는 총 2000만장을 판매한 제작다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엠넷미디어 제작이사로 자리를 겸하면서 이효리 등을 영입했고, 다시 2009년 7월 8일자로 엠넷미디어를 떠나 자회사 격인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연예계 권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김 대표는 항상 “난 영원한 매니저”를 외친다. 매니저로서 연예계 권력자로서 김 대표는 현재는 어떨까.
“워커홀릭 빠진 김광수, 앞을 내다본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있는 이들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떠나 개개의 능력을 따질 때, 김광수 대표를 제일 앞에 놓는다. 이것은 김광수 대표가 어느 회사에 몸담았든, 그 자체로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 ‘일’로 안보며 몰입하는 김대표의 ‘워커홀릭’ 적인 면모에서 시작한다.
6시 30분 전후로 사무실에 출근한 김대표는 인터넷으로 자신은 물론 소속 연예인들의 기사를 체크한 후, 8시 30분 경 직원들과 회의를 한다. 기사에 반박 내용을 보도자료로 뿌리려면, 즉석에서 담당자에게 일을 시키기도 하고, 사안이 클 경우에는 직접 전화를 하기도 한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이 일에 회사 매니저들은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한다. 물론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휴가를 주는 대신 빨리 독립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해준다. 언제까지 월급쟁이로 살 수는 없잖는가. 스스로 자립해서 수익도 내는 제2의 김광수가 많이 나오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2000년 대 초반까지도 김 대표는 “일이 많아 결혼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일’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김 대표로 하여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했고, 한번씩 ‘사고’를 칠 때마다 엔터업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김 대표가 편집 음반을 내 히트시키면, 이를 따라해 편집 음반이 쏟아져나왔고, 조성모를 키울 당시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또다시 다른 가수 제작자들도 따라했다. 보컬로만 승부하는 그룹을 전면에 내세우면 곧 이어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느낌의 가수들이 따라나왔다. 물론 이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허접한 편집 음반이 판을 치고, 물량 공세의 뮤직비디오로 중소형 기획사들이 허덕였으며, 가요계에 천편일률적인 느낌의 가수들만 만들어지게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김 대표의 ‘사고’는 한번씩 연예판을 흔들었음은 사실이다.
또 지난 2001년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의 공동 제작자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5억원 규모의 음반펀드를 조성한 직후 그가 “앞으로 유명 가수들이 O.S.T에 서로 참여하려고 경쟁하는 모습을 곧 보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한 말은 현재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 혹자는 김 대표가 앞을 예측한다기보다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자신의 힘으로 이뤄나가고 있고, 다른 종사자들이 따라오게 만들려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김 대표는 일에 관해서는 지독한 사람이다. 일일이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모든 과정에 개입되어 있다. 또 자신의 일과 관계된 사람이라면 값비싼 자기의 시계도 즉석에서 내주며 일하자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이 때문에 간혹 김 대표와 소속사 직원들 간의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일에 열중한 나머지 자신의 ‘감’만 믿고 즉석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해 보내라고 하거나, 소속 연예인들의 구성이 즉석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최근에 코어콘텐츠미디어에서 나오는 남녀혼성그룹 ‘남녀공학’의 실체가 알려질 초반, 여성그룹이냐 혼성그룹이냐 8인조냐 9인조냐 혼선을 가지고 온 것도 어떻게 보면 내부 회의가 김 대표의 즉흥적인 ‘감’과 충돌해서 외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감’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다. 김 대표는 “성공하는 비결이라면 저는 ‘감’으로 판단한다. 새 앨범을 허밍만 들어보고 타이틀곡을 정한다. 또 지금까지 했던 프로젝트 중에서 상당 부분이 즉흥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솔로로 준비하던 친구들을 모아 만든 것이 SG워너비이고, 여성그룹 가비앤제이를 보고 나서 바로 결성한 것이 씨야다”라고 자신이 일을 추진함에 방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감’에서 시작한 일에 김 대표는 직접 모든 과정에 개입해 추진한다.
모든 과정에 직접 개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 대표의 성격에 대해 또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김 대표는 자신이 추구하는 일을 성공시키는 데 있어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고개를 숙일 줄 안다. 물론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 위치의 제작자가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쉬운 행동은 아니다. 소속 연예인과 관련된 비판성 기사에 바로 기자에게 전화해 전후사정 이야기 줄줄이 할 제작자가 누가 있겠는가. YG의 양현석이나 JYP 박진영 등은 모두 직원들이 알아서 하지 않냐”며 한 사례를 거론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로드매니저부터 시작해 25년 간 연예계의 중심에서 주목을 받아온 김 대표가 후배 매니저들에게는 어찌되었든 목표점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이 일에 대한 지독함에서 시작된 것도 안다. 그러기 때문에 동시에 함부로 올라설 수 없는 자리인 것도 안다”고 말했다.
PD 수뢰 사건 연루 이미지와 ‘기획형’ 가수 추구의 충돌
여러 가지 호평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에게는 벗지 못할 굴레가 존재한다. 앞서 잠깐 거론한 PD수뢰 사건에 두 차례나 연루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1995년 초 터졌다. 김 대표는 91년과 92년 MBC PD에게 자신의 소속 가수의 출연 청탁과 함께 승용차를 선물했다. 또 다른 PD에게는 수 백만원의 돈을 건넸다.
그러나 이후 조성모와 이미연의 연가를 통해 김 대표는 화려하게 부활한다. 스타 제작자 ‘김광수’가 PD 수뢰 사건에 연루된 제작자 ‘김광수’를 덮는 순간이었다. 언론에서도 연예계 ‘미다스의 손’이라며 김광수 당시 GM기획 대표를 호평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내 2002년 중순 또다시 가수의 홍보 청탁과 함께 금품을 준 혐의로 SM엔터테인먼트, 도레미 미디어, 싸이더스 등과 함께 또다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 당시 단순히 지상파 방송국 뿐만 아니라 케이블 채널, 스포츠신문 기자까지 전방위로 확대됐고, 김 대표는 2003년 3월 검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 두 번의 사건으로 김 대표는 아직까지도 ‘돈’으로 스타를 키우는 제작자라는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몇 후배 매니저조차도 “최고의 매니저지만, 이 말을 듣기까지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을 정도다.
김 대표 역시 당시에 대해 “사람 놓친게 정말 눈물나고 야속했다”며 “한때 자살까지도 생각했었다”고 한 언론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이 당시의 이미지는 향후 김 대표가 추구하는 마케팅을 ‘저비용 고효율 마케팅’이냐 ‘돈과 권력으로 펼칠 수 있는 마케팅’이냐로 다양하게 평가되게 만들었다. 일례로 2008년 영화 <고사 : 피의 중간고사> 마케팅 당시 대형 톱스타들을 대거 불러 모은 선상 파티를 한다든지, 출연 배우들을 제주도까지 무대 인사를 시키며 관객몰이에 동원한 사례를 두고 여러 가지 평가가 당시 나온 것도 이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기획형 가수를 추구하는 김 대표가 내놓는 가수들이 ‘가수’로 인정받느냐도 왈가왈부 말이 많다. 이는 2000년 대 조성모에게서 비롯됐다. 사실 ‘얼굴없는 가수’라는 칭호와 함께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 그리고 철저한 계산에 의해 방송 출연한 조성모는 김 대표의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2001년 조성모가 김 대표에게 자신은 기획상품이 아니라, 가수라는 것을 증명키 위해 결별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김 대표도 당시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순수하고 귀엽고, 그러면서도 운동 잘 하는 조성모를 좋아했지, ‘뮤지션’ 조성모를 좋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조성모를 가수라기보다는 기획 상품으로 인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조성모는 당연히 내리막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단 조성모 뿐만이 아니다. SG워너비 채동하, 씨야 남규리 등 김 대표가 만든 대표적 기획형 그룹 멤버들의 탈퇴는 이들의 가수 생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특히 한동안 이어진 남규리와의 대립에서 ‘악마와 손잡는 게 싫었을 뿐’ ‘남규리와의 소송 긴 터널의 시작’ 등 원색적인 말이 나온 것은 물론, 다른 씨야 멤버들까지도 이에 가세한 모습은 당시 보는 이들조차 불편하게 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티아라 멤버 지연과 은정이 트위터에 짤막하게 남긴 하소연조차도 연예계 사람들에게는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또 씨야, 다비치, 티아라 등 멤버들이 따로 또 같이 활동하거나, 티아라의 경우 멤버들이 ‘연기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구나”가 아닌, “너무 혹사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김 대표의 기획형 가수관에 기인해 나오는 것이다.
김광수의 연예계 파워 당분간 지속될 듯
그러나 여러 가지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도 김 대표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견해다. 한 사람이 가요계와 영화계, 드라마는 물론 뮤지컬 까지 손을 대기에는 사실상 쉽지 않다. 물론 이에는 김 대표의 능력을 믿고 투자한 이들이 대거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이 역시도 김 대표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다.
한 방송 관계자는 “김광수 대표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자신이 칭찬을 받든 비판을 받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인맥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안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연예계에서 가지고 있는 파워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단지 김 대표가 자신의 뿌리나 다름없는 음반 업계에서 이같은 기획형 가수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는 영원한 음반 제작자이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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