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연극열전3’ 8번째 작품으로 오른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의아했고 한편으로는 꽤 반가웠다. 의외인 것은 스타 배우들이 즐비하게 있는 ‘연극열전3’ 시리즈에 대중성이 떨어지는 두 배우가 나오는 연극이 과연 어울릴까라는 점이었고, 동시에 반가운 것은 훌륭한 연극이 대학로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연극열전3’ 시리즈를 통해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지리적으로 따지면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과 무관한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이 ‘무관성’은 ‘상관없다’는 느낌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늘 평범하면서도 연관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지역의 어느 부부의 ''''어느''''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극에 등장하는 남편 종철은 아내 선미와 어렵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다른 부부처럼 집에서 한껏 분위기도 잡을 줄 알고 뜻깊은 날에는 외식도 하면서, 비록 다른 사람의 멋진 차를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끌고 다니는 소형차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애교에 무뚝뚝한 남편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대응하는 방식이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이들의 이러한 행복에 불안 요소(?)로 등장한 것은 아내 선미의 임신. 종철은 자산의 학력, 사회적 지위, 경제력 등을 들어 출산을 막으려 애를 쓴다. 이에 반해 선미는 현실적 어려움을 인식하면서도 어떻게하든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 이들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 가고, 봉합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행동이다. 여타 연극들처럼 배우들이 다른 장면으로 암전되지 않는다. 배우 두 명이 알아서 침대를 조립했다고 분해하고 의자를 끌어오며 공간과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관객들에게 노출된다. 이 때문에 이들의 모습은 연극이라기보다는 그냥 한 부부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 때 들리는 초침소리 역시 단순하게 장면의 변화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갈등으로 치닫는 부부의 모습으로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평범하면서도 우리 소시민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부의 모습은 너무 적나라해 관객의 몰입도는 한층 높아진다. 특히 이들이 아이 출산을 놓고 서로의 수입과 지출을 일일이 기재하면서 논의하는 모습은 허탈한 웃음과 쓴 반응을 이끌어낸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또 너무나 피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온다. 특히 남편 종철이 하나하나 지우면서 ‘이거 하지마 하지마’ ‘안 피면 되지’라고 말하면 기호식품들과 문화생활을 포기할 때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 생계비 문제나, 저출산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원작인 독일 극작가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의 1972년 작품 ‘오버외스터라이히’ 역시 독일 변방의 어느 지명으로 ‘경남 창녕군 길곡면’처럼 어떤 마을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른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들 두 지명은 큰 의미가 없다.
관객들은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올 때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동시에 접하기 싫은 무대 위 한 부부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어느 순간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처럼 똑같이 할 것이다.
초연 때부터 손발을 맞춘 배우 김선영과 이주원이 또다시 무대에 오르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오는 9월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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