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블랙리스트’ 이 단어만큼 최근 사회를 들썩이게 한 것도 없을 듯 싶다. 개그우먼 김미화가 자신의 트위터에 ‘KBS 블랙리스트’ 발언을 한 이후, 사회 전체가 ‘블랙리스트’ 논란에 빠졌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금까지도 ‘홍보 반, 피해 반’을 본 이들이 있다.
이 발언이 터진 날, 처음으로 자신들을 알린 여성 힙합듀오 ‘블랙리스트’ (치타 (본명 김은영), 루시 (본명 박소현))가 그 주인공이다. 오죽하면 담당 매니저가 “홍보 음반을 들고 KBS에 들어갔더니, 다들 놀리냐고 면박을 줬다”고 할 정도였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적어도 이름만은 확실히 알린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김미화 씨가 제3의 홍보 멤버가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어요. 처음 저희 ‘블랙리스트’의 이름을 알린 날인데, 엉뚱하게 불똥이 튀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죠. 그런데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설 때, 저희를 잊어버리는 사람을 없을 거 아니에요” (치타)
엉뚱하게 이름을 알리기는 했지만, 이들의 실력은 만만치 않다. 1년 6개월의 준비 과정을 거쳐, 1999년 여성 힙합 듀오 ‘타샤니’를 기획했던 박준섭 씨에 의해 다듬어져 데뷔했다. 스스로 100% 라이브를 통해 승부하겠다는 이들은 첫 데뷔곡 ‘스톱’ (STOP)으로 신인치고는 담대한 승부수를 던졌다.
“저희의 연습량이 장난이 아니에요. 제2의 타샤니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 색깔은 많이 달라요. 물론 저희가 연습할 때 그 분들의 노래도 많이 따라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타샤니에 빗대어서 말이 나온 것이지, 저희가 똑같이 하지는 않아요. 도리어 나중에 제2의 블랙리스트가 나오게 해야죠” (치타)
데뷔를 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는 다른 가수들처럼 집안의 반대 혹은 연습생으로서의 고된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치타의 경우에는 가수의 꿈을 안고 고등학교 1학년을 자퇴한 후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던 중 2007년 1월 건널목에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죽을 위기를 넘기기 까지 했다. 당시 뇌사 상태로 죽을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랩을 하고 고향인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지하철 역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저희가 최초였죠. 그러다가 노래를 하려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2007년 검정고시 준비를 하다가 사고가 크게 난거죠. 머리 수술을 하는데, 장애를 가거나 죽을 확률이 높다고 말하더라고요” (치타)
말은 쉽게 했지만 1년 간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도리어 가수의 꿈은 커져갔다.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는 병원 생활로 더 허스키해졌다. 퇴원 후 이벤트 회사와 미사리 카페 등에서 잠시 노래하며 생활비를 벌던 치타는 현재의 소속사를 만나, 가수 준비 후 팀을 꾸렸다.
치타와 팀을 꾸린 루시는 현재 경북예고 3학년으로 성악과를 다니고 있다. 디자이너인 할머니를 어릴 적부터 봐와서 2학년때까지는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점점 음악을 더 좋아하게 돼 성악과로 전과했다. 물론 집안의 반대는 심했다.
“아버지에게 소속사 들어가고 연습생이라도 되면 음악을 할 수 있냐고 했더니 붙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 와서 현 소속사 오디션을 봤어요. 연습생 계약하고 집에 말했더니, 네가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루시)
루시도 예술쪽 집안이다. 할머니가 디자이너라는 것도 그렇지만 고모할머니의 아들이 현재 군대에 가있는 배우 이준기다. 그 끼를 이어받았으니 루시 역시 얌전하게 앉아있을 체질은 아닐 듯 싶었다.
이 둘이 만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호흡만큼은 서로 잘 맞는다고 입을 모았다. 루시만 숙소생활을 하고, 치타는 혼자 살고 있지만, 거의 하루 종일 연습을 같이 하다보니 이 같은 떨어짐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블랙리스트’의 올해 목표는 여느 걸그룹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열심히 해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여드려야죠. 일단 저희는 실력만큼은 자신있어요. 또 음악적 취향이 잘 맞는 둘이 함께 무대를 하고, 다른 그룹과 차별성이 있잖아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치타, 루시)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