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人터뷰] ‘만추’ 김태용 “이질적인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Ki-Z 人터뷰] ‘만추’ 김태용 “이질적인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기사승인 2011-02-19 13:05:01

"[쿠키 영화] 흔히들 영화 <만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통해 인기를 모은 현빈이 이 영화를 살렸다고 말한다. 아무리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초청작품이라 할지라도, 영화가 가지고 있는 느낌상 국내 개봉이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고, 실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만추>는 이후 개봉일 조차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현빈앓이’는 고스란히 <만추>에 영향을 미쳤고, 개봉일이 17일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다. 현빈이 영화를 개봉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개봉 이후 시선은 중국 배우 탕웨이를 거쳐, 김태용 감독으로까지 옮겨져 갔다. 현빈은 영화 속에 녹아있었지만, 그 흡수는 온전히 원작에 가깝게 만들려 했던 김태용 감독의 연출력에 기인한다. 이질적인 공간에서 전혀 모르는 남녀, 아니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주제로 한 영화는 쓸쓸함과 더불어 깊고 강한 느낌을 선사했다.

<만추>는 지금은 필름을 찾을 수 없는 원작인 이만희 감독의 <만추> (1966)를 시작으로, 김수용 감독의 <육체의 약속> (1975)과 김기영 감독의 <만추> (1981)를 통해 리메이크 된 작품이다. 배경이 한국이 아닌, 미국 시애틀로 바뀌고 배우들 역시 젊은 감각의 한국인 남자 현빈과 중국인 여자 탕웨이가 등장하지만, 천재 감독의 뛰어난 원작이 있고 두 차례나 리메이크된 전례로 인해, 고충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 감독은 ‘변화’보다는 ‘원작의 깊이’를 찾아가는 과정에 몰입했다.

“원작은 본 적이 없고, 리메이크작을 봤는데 이번 <만추>는 그 작품들과도 많이 달라요. 기본적으로 원작이 가지고 있는 설정이 깊고 워낙 열려 있기 때문이죠. 그냥 길에서 두 남녀가 하루를 보내고 여자는 감옥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어서 영화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된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어떤 남녀가 만나고, 만나서 뭘 해야 하는지. 두 남녀의 이야기라는 설정만 지키고 싶었죠. 원작이 워낙 열려있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데 있어서 부담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원작과의 차별을 두기보다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어떻게 하면 닮을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한 거죠”

김 감독의 <만추>는 이질적인 느낌을 제공한다. 우선 남녀 주인공이 같은 국적이 아닌, 한국인과 중국인이다. 여기에 배경은 동양이 아닌, 미국 시애틀이다. 문화적, 언어적, 공간적인 이질감이 한꺼번에 존재한다. 신기하고 기이하지만 불편한, 그러면서도 동경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냥 이질적인 느낌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내용 설정을 하면서 어쩌면 더 이질적인 사람들이 더 이질적인 공간에서 만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죠. 어쨌든 길에서 만난 모르는 남녀가 하루를 보내는 설정이잖아요. 서울과 부산이 2시간이면 만나는 그런 느낌보다는 더 이질적인 공간을 제시하고 싶었고, 그래서 미국을 선택했죠. 또 동양사람 둘이니까, 약간 낯선 공간, 떠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여행지보다는, 다른 사람에게는 삶의 공간인데 두 사람에게는 떠있는 공간으로요. 거기에 약간 음습한 느낌을 선사해야 해서, 시애틀을 골랐죠”

이전의 작품들은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 있는 남성적 폭력과 가부장적인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려졌다는 점에서 개봉 당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김 감독의 <만추>는 이런 부분이 배제됐다는 성향이 강해보였다.



“사회적인 문제 제기는 김기영 감독의 버전이 강했던 것 같아요. 원래 원작에서는 왜 남편을 죽였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기본적으로 남자를 죽이고 감옥을 갔다는 자체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담고 있지만, 어느 쪽에 포커스를 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도록, 원작이 워낙 열려있는 작품이죠. 원작은 모르는 남녀가 쓸쓸한 여행에 동참했다는 것에 집중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도 그래요. 미국이란 공간에서 아시아의 두 남녀잖아요. 소수민족이라든가 하는 정치 사회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보다는 남과 여의 이야기, 길에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만추>는 뒤늦게 개봉일을 잡는 바람에 흥행 타이밍을 절묘하게 잡을 수 있었다. 현빈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늦가을’이 어울렸겠지만, 현실은 현재가 가장 유효한 타이밍으로 작용한 셈이다.

“어찌하다보니 지난해 11월 개봉 예정이었다가 미뤄졌는데 마침 현빈이 유명해져서 도움이 되네요. 개봉이 미뤄질 당시에는 따뜻해지기 전에, 봄이 오는 3월이 되기 전에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2월 개봉도 현빈의 영향보다는 원래부터 결정된 거였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개봉 타이밍이 더 좋다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게다가 현빈이 해병대를 가서, 더 느낌이 좋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현빈이 갑자기 사라지는데, 실제로도 (인기 절정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거잖아요”

‘시크릿 가든’의 ‘이주원’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만추> 속 ‘훈’은 다소 어색할 수 있다. 애시당초 ‘훈’을 먼저 연기한 현빈이기에, 어쩌면 ‘이주원’으로 변하기 전 느낌을 충분히 관객을 즐길 수도 있다. 가벼운 ‘이주원’으로 변신하기 전, 쓸쓸한 ‘훈’에 대해 김 감독은 “낯선 선물같은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현빈을 추천을 받아 만났는데 느낌이 좋더라고요. 멋지게 잘 생겼는데, 너무 가볍지도 않고요. 잘생긴 사람인데도 쓸쓸함도 있고, 뭔가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같이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극중 ‘훈’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접대하는 캐릭터잖아요. 뭔가 자신감도 있어야 하고, 무겁지도 가벼워서도 안되는 느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죠. 또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축축한 시애틀에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자에게 선물 같은 남자여야 했기 때문이죠. 낯선 선물 같은 느낌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 박효상 기자 islandcity@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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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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