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급여, 정년보장 등 대우가 좋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은행에서 직원 사망자가 매년 발생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올초에도 한은 내에서 엘리트로 꼽히는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주장은 괴담처럼 회자되고 있다. 외부의 찬사와 질시 속에 가려진 직원 근무환경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은 김모 차장은 사내소식지인 ‘한은소식’에서 ‘중앙은행 신수설 유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은이 신이 내려준 직장이 되려면 적어도 ‘일하다 죽는 사람 못봤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한은에서는 일하다 죽는 사람이 너무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이어 “적어도 내가 근무해온 18년 동안 해마다 한명 이상의 직원이 현직에서 세상을 하직했다”며 “일하다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건 신의 직장으로서 결격 요건임에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잇단 사망이 업무 스트레스와 연결돼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의 직원은 2400명 정도로 독일(1만2000명), 프랑스(1만6000명), 중국(13만명) 중앙은행들에 비해 규모가 초라해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하다보니 스트레스로 죽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호에 실린 그의 주장은 지난달말 한 직원의 자살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자살한 직원이 한은 내에서 요직을 거친 ‘실력파’여서 주변의 충격이 더욱 컸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한은 장세근 부총재보는 “매년 한명 이상 직원이 죽는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것 같다”며 “사망 원인도 스트레스 만이 아닌 일반 사고사 등도 포함됐다”고 해명했다. 또 지난해부터 고충상담반을 가동해 직원들의 고민 등을 들어주는 등 각종 애로해결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를 떠나 한은에서 직원들의 사망사고가 꾸준히 발생하는 점은 구성원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다. 특히 가장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의 경우 2004년 이후 약 5건, 즉 2년에 한 번꼴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수 자질을 가진 엘리트간의 갈수록 심화하는 경쟁체제와 이를 완화할 내부의 소통구조 부재를 직원 사망의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 꼽는 분위기다.
한은의 한 직원은 “근무가 위험한 3D업종도 아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직원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인사적체 해소 등 근무 여건에 대한 관심 없이 내부 경쟁만 다그치는 분위기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