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클릭진단] 롤러코스터 탄 ‘나는 가수다’…3주 만에 온탕에서 냉탕으로

[Ki-Z 클릭진단] 롤러코스터 탄 ‘나는 가수다’…3주 만에 온탕에서 냉탕으로

기사승인 2011-03-26 12:59:00

[쿠키 연예] 브라운관을 집어삼킬 성장주였다가 하루아침에 폭락하면서 종잇조각이 됐다. ‘폐지’와 ‘신설’을 반복했던 MBC를 구원할 ‘구세주’까지 거론됐던 주말 예능 ‘우리들의 일밤’ 코너 ‘나는 가수다’의 씁쓸한 현주소다.

방영 전부터 실력파 유명가수들의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독특한 내용으로 기대를 모은 ‘나는 가수다’. 지난 6일 첫 뚜껑을 연 ‘나는 가수다’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각종 포털 사이트 연예면을 도배하다시피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지지부진했던 ‘일밤’에 실망하고 떠났던 시청자도 다시 돌아와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열성을 보였다. 그렇게 뜨거웠던 ‘일밤’이 어쩌다가 이렇게 한 순간에 식게 됐을까.

‘나는 가수다’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은 매끄럽지 못한 제작진의 진행에 있다. 지난 20일 방송에서 청중평가단에 의해 첫 번째 탈락자로 결정된 가수 김건모에게 기획에도 없었던 ‘재도전’의 기회를 주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자승자박한 격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정한 규칙은 ‘탈락자는 무조건 프로그램을 떠난다’였다. 어떤 경우에서든 예외가 생길 수 없다는 게 시청자와 당초 맺었던 약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면서 결과적으로 청중평가단의 소중한 선택과 믿고 따라와 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격이 됐다.

매니저를 대표해 김제동이 나서서 ‘재도전 기회를 주자’며 제작진을 설득했고, 제작진 역시 노래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가사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김건모가 마지막에 입술 전체에 칠한 우스꽝스러운 립스틱 퍼포먼스가 청중평가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입을 모으며 김건모에게 선택권을 줬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여자 출연자 백지영, 박정현, 이소라가 모두 눈물을 흘렸고, 심지어 이소라는 촬영을 못하겠다며 현장을 뛰쳐나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가수경력 20년차의 대선배가 첫 번째 탈락의 주인공이라는 ‘비운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출연진의 애석한 마음도 반영됐다. ‘나는 가수다’의 수장 김영희 CP도 어렵게 섭외한 ‘국민 가수’ 김건모를 단 3회 출연만으로 떠나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작진은 여러 면에서 출연진의 마음을 달래보겠다며 재도전의 기회를 줬고, 칼자루를 쥔 김건모는 자신의 탈락을 안타까워하는 후배의 마음에 흠뻑 취해 절대 해서는 안 될 ‘예스’(Yes)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과 출연자는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잊은 것이다. 촬영 당시 현장 분위기에 도취되면 프로그램의 전반적 흐름이나 규칙을 순간적으로 잊을 수는 있다.

사실 제작진에게 ‘나는 가수다’를 위기에서 스스로 구해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주어졌다. 하나는 ‘편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포일러’였다. 3회 분량 촬영이 끝난 직후 현장 스태프에 의해 하나 둘 소문이 퍼지면서 “한 뮤지션이 재도전 기회를 가질 것”이라는 내용이 공개됐다. 이런 내용이 대대적으로 알려지자마자 대중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는 제작진이 재도전의 기회를 줄 경우 시청자의 반발이 상당히 강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수다’ 김영희 CP 이하 제작진은 고집스럽게도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줬고, 편집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재도전의 흐름을 이어 4회 분량을 촬영했다.

이렇게 ‘나는 가수다’는 시청자를 기만한 죄로 하루아침에 ‘브라운관 샛별’에서 ‘문제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재도전이 전파를 탄 직후 시청자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나는 가수다’는 시청률은 낮았지만 화제 면에서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 중 단연 1등이었다. 특히 과거 전국시청률 4~5%를 오가며 바닥을 기었던 초라한 ‘일밤’과 비교하면 11.8%(20일 기준)는 눈부신 성장세다. 특히 이 시청률은 호응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신입사원’과 합산해서 나온 수치라 ‘나는 가수다’의 인기는 이보다 더 높아 MBC로서는 가슴 떨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눈앞에서 ‘대어’를 놓친 MBC. 울며 겨자 먹기로 ‘공로자’ 김영희 CP도 경질시킬 수밖에 없었다. 김 CP는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시청자와 MBC 모두를 울린 셈이다.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력파 가수 윤도현, 박정현, 백지영, 김범수, 김건모, 정엽, 이소라를 섭외한 가장 큰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PD로서 최악인 ‘경질’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김건모 역시 하차를 결정했다. 시청자가 원하지 않는 재도전은 자신에게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건모의 이 같은 선택은 또 한 번 ‘나는 가수다’를 수렁으로 몰고 갔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탈락해서 떠나는 게 아닌 자진 하차라는 점에서 남은 후배 가수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든 것이다. 일부 출연진은 자신을 불러준 수장과 대선배가 떠난 사실에 안타까움과 충격을 금치 못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칩거 중이다.

결과적으로 김건모가 그날 그 자리에서 멋지게 ‘노’(No)를 외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는 가수다’는 경쟁자 ‘1박2일’과 ‘런닝맨’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협적 존재가 됐을 것이다. 아마 주말 예능을 넘어 브라운관을 장악할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괴물 프로그램’이 됐을지도 모른다.

방송 3주 만에 천국에 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극과 극 맛을 본 ‘나는 가수다’. 세시봉 특집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놀러와’의 신정수 PD가 새 수장으로 임명됨에 따라 역전과 만회의 기회는 아직 남았다. 한 달 동안 휴식기를 갖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가수다’ 출연자는 예전처럼 시청자의 가슴을 움직이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시청자 못지 않게 찢기고 멍든 ‘나는 가수다’의 남겨진 이들에게 건투를 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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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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