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로와 인도 ‘위험한 공존’

자전거도로와 인도 ‘위험한 공존’

기사승인 2011-05-31 15:40:00

[쿠키 사회] 지난 28일 친구를 만나러 서울 여의도를 찾은 최모(35·여)씨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쌍둥이빌딩 앞 인도 바닥에 그려진 보행자 표시였다.

차량 진입로를 사이에 둔 인도엔 자전거와 보행자 진입구간이 따로 표시돼 있었다. 문제는 보행자 진입구간이었다. 바닥에 그려진 표시대로 인도에 올라가려면 사람들은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로 나가야 했다. 도로엔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 진입구간에 밀려 도로 쪽에 만들어진 것이다.

휴일이라 자전거 이용자들이 많았지만 최씨는 결국 자전거 도로 진입구간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시와 지자체가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를 설치하면서 보행자들의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보행자들은 서울시가 현장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정책만 내놓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위험천만’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방송인 김미화씨는 지난해 9월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좁은 인도를 둘로 갈라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든 것이었다. 자전거 도로는 그나마 공간을 확보해 괜찮았다. 하지만 보행자 도로는 아니었다. 가로수가 보행자 도로 3분의 2 가량을 차지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김씨는 트위터에 “과천 국립과학관 앞은 사람도 자전거도 못 다니는 길”이라며 “어디로 다니란 말이냐”며 불편을 호소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겸용 도로는 기존의 인도에 자전거 도로만 만들어 놓은 형태였다. 좁은 도로를 나눠서 사용하다 보니 보행자와 자전거 운행자 모두 ‘위험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행자는 20여㎞로 달리는 자전거와의 충돌 위험을 감수한 채 걸어야 했고 자전거 이용자들은 언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나마 여의도동 쌍둥이빌딩 앞 인도는 나은 축에 들었다. 7m 정도로 다른 인도에 비해 폭이 넓은 편이었다. 그 중 약 3m는 자전거 도로가 차지했고 나머지 4m는 보행자 공간이었다. 그러나 가로수가 서있어 실질적으로 걸을 수 있는 공간은 1m에 불과했다.

회사원 김모씨는 “기존 인도를 반으로 갈라 생색만 내지 말라”며 “보행자나 자전거 탄 사람의 위험을 정녕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간 말다툼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지난 21일 회사원 이모(28·여)씨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를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괜한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몰던 그는 마주오던 행인에게 “위험하게 자전거가 왜 인도로 다니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씨는 엄연히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다만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인도로 걷던 보행자가 이씨의 자전거를 미리 피하지 못해 역정을 낸 것이다.

이씨는 “오늘만 크고 작은 사고를 4건이나 목격했다”며 겸용도로의 위험성을 토로했다.

◇손놓은 서울시의 자전거 정책=서울시도 자전거 도로가 ‘차도’ 위에 설치돼야 한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설치된 자전거 도로인데다 각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시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서울시내 자전거전용도로 총 808.64㎞ 중 겸용도로는 596.58㎞로 73%에 달한다. 대부분의 자전거 도로가 ‘겸용 도로’인 셈이다.

트위터리안 @pg*****는 “잠실 신천역 잠실3단지 쪽 지하철 출입구 옆에는 인도가 없고 자전거 전용도로만 남았다”며 “보행자와 자전거 탑승자의 시비가 잦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4월 6일 ‘2011년 서울시 업그레이드 자전거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 같은 문제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차도에 놓인 자전거 도로 일부를 폐쇄하고 인도로 옮기는 등 무사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간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온 현실을 무시한 ‘책상머리 정책’”이라며 비판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택시 정류장과 교차로 구간에서 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 도로를 인도로 잠시 우회해 놓은 것일 뿐”이라며 “기본적으로 자전거는 ‘자동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각 지역구에도 차도에 설치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진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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