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탄핵 정국 위기에 빠졌지만, 현 사태에 대해 자성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탄핵 가결 이후에도 친윤석열계 지도부 구성을 검토하거나, ‘탄핵 찬성론자 색출’에 나서는 등 민심을 역행하는 모양새다.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 ‘탄핵 찬성파’ 의원들을 향한 공격이 시작됐다. 대구 지역구를 둔 의원들 사이에서는 “레밍(집단자살 습성이 있는 나그네쥐)”, “쥐새끼”, “배신자”, “박쥐” 등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찬성표를 던진 이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당대표마저 축출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6일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자진 사퇴 형식이었지만 실상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떠밀려 축출됐다. 장동혁·김민전·인요한·진종오·김재원 등 선출직 국민의힘 최고위원 5명 전원이 사의를 밝혔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극단적 유튜버들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한다면 보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간 국민의힘은 지도부를 수차례 바꿔왔다. 당대표 3명(이준석·김기현·한동훈), 비대위원장 4명(주호영·정진석·한동훈·황우여), 대표 권한대행·직무대행(권성동·윤재옥)이 2명이었다. 한 대표 사퇴 이후 꾸려진 이번 비대위는 국민의힘의 6번째 비대위이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5번째 비대위 체제이다. 특히 ‘최고위원 사퇴-지도부 붕괴’로 인한 비대위 출범은 이번이 두 번째다.
당 내부에선 친윤 핵심 권성동 권한대행을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한 데 이어 비대위원장마저 친윤계를 앉히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권영세·김기현·나경원·윤상현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권 권한대행이 비대위원장직을 겸직하는 ‘원톱 체제’까지 거론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이 반성 없고 소수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낡은 영남당 이미지에 갇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다”라며 “브레이크 없는 극우 정당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탄핵 방탄, 기득권 정당 이미지로 민심을 넘어서서 조기 대선 국면을 극복할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내에서도 공개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내 최다선인 6선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은 17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국민께 석고대죄부터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분위기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지나칠 정도로 비난한다”며 “탄핵에 찬성하지 않은 분들이 탄핵에 찬성했던 분을 징계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 분들이 정치를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같은 날 CBS라디오에서 “결국은 우리 당을 그냥 이른바 ‘영남 자민련’으로 축소해 버리고 우리가 권력을 잃는 한이 있어도 다음에 똘똘 뭉쳐서 지역에서 의원 배지는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주장 아니겠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직격탄을 맞았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2~13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도(25.7%)는 더불어민주당(52.4%)에 26.7%p나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