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찌질했던’ 윤종신을 잘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찌질했던’ 윤종신을 잘 알고 있습니까?

기사승인 2011-06-23 10:25:00

[쿠키 연예] 가수가 예능인이 되기까지

윤종신(42)은 데뷔 21년차 가수다. 1990년 그룹 공일오비(015B) 1집 ‘텅 빈 거리에서’의 객원 보컬로 가요계에 발을 내딛었다. 공일오비 정석원의 수려한 멜로디 라인과 윤종신의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성이 맞물린 ‘텅 빈 거리에서’는 갓 데뷔한 신인 그룹의 타이틀 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비록 수려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순수한 미성 하나만으로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여성들까지 풋내기 대학생 윤종신의 팬이 됐다.

탄력을 받은 윤종신은 이듬해 솔로 데뷔 앨범을 낸다. 자신의 자작곡과 정석원의 도움을 받은 곡을 실었다. 그러나 ‘처음 만날 때처럼’을 제외하고 다른 수록 곡들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텅 빈 거리에서’의 후광이 너무 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윤종신은 예상치 못한 상업적인 실패에 당황하지 않고 음악적 동지 정석원과 함께 작사가 박주연을 영입, 2집 ‘너의 결혼식’과 3집 ‘오래전 그 날’로 엄청난 히트를 친다. 각 곡을 시작하는 가사인 ‘몰랐었어’,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라는 구절을 여고생부터 여대생, 남성 팬들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

서글픈 일상에서 이별을 주제로 처연한 정서를 담담히 풀어내는 일련의 주제는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동시대를 관통한 신승훈이 ‘발라드의 황제’로, 이승환이 ‘라이브의 황제’, ‘어린 왕자’로 인기를 누릴 때 윤종신은 ‘이별의 아이콘’, ‘헤어져야 사는 남자’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고운 미성이 거칠게 바뀌고, 부드러운 고음은 음 이탈 현상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보컬 능력이 쇠퇴하기 시작했을 때 윤종신은 비로소 2막을 열었다.

1995년 발표한 ‘공존’의 타이틀 곡 ‘부디’는 어느 정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비슷한 분위기의 팝 발라드를 답습했다는 비판이 나올 찰나, 윤종신은 1년 간의 공백 끝에 당시 발라드 앨범으로는 최초의 콘셉트 형식을 지닌 5집 ‘우’를 내놓는다. 이 앨범에는 그룹 토이의 유희열이 참여, ‘환생’으로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수록 곡들이 한 편의 멜로드라마를 연상시킬 정도로 연속성 있게 이어지는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비로소 공일오비 객원 보컬 이미지를 떨치고 가수에서 뮤지션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명반으로 평가 받는 5집 이후 윤종신은 6집부터 9집까지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한 편의 책과 다큐멘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일관성 있는 주제로 풀어내는 그만의 독특한 앨범 구성에 슬픈 이별 가사도 더욱 깊어졌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9집 후 4년 만에 발표한 10집도 정석원과의 조우, 파격적인 스타일 변신 등으로 인해 화제를 모아 ‘너에게 간다’와 ‘몬스터’, ‘You Are So Beautiful’ 등이 히트했지만 ‘저주 받은 걸작’ 범주에 머물렀다.

2005년부터 윤종신은 잠시 숨고르기에 돌입한다. 가수를 떠나 라디오 DJ와 시트콤 드라마를 병행하고, 부쩍 잦아진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해 ‘예능 늦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 국민적인 인기를 모은 엠넷(Mnet) ‘슈퍼스타K’ 심사위원으로 때 아닌 유명세도 치렀다.

이에 대해 윤종신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예능 녹화를 하고 온 날에 음악이 더 고프다. 강호동, 유재석이랑 신나게 떠들고 집에 들어오면 음악이 더 하고 싶다”며 “예능에서 여러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영감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뮤지션 윤종신은 변한 게 없다.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졌을 뿐”이라며 “비록 나는 어릴 적에 운 좋게 얻어걸린 것도 그렇고, 예능을 동시에 하는 것도 그렇고, 소위 모범 사례로 꼽을 뮤지션은 아니지만 인생을 열심히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멜로디와 가사로 옮긴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예능인이 가수로 돌아온 순간

윤종신에게 2010년은 특별한 해다. 3월부터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통해 매달 한 곡의 싱글을 발표했다. 그렇게 모은 한 곡 한 곡들로 12집 ‘행보’를 꾸렸다. 예능인으로 정점을 달리던 2008년 발표한 11집 ‘동네 한 바퀴’로 오랜만에 가수로 악수를 청했다면 12집은 예능 출연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이지만 음악적으로 맞받아쳤다. 같은 해 ‘사랑의 역사’ 공연도 시작했다. 단독 콘서트는 4년 만이었다. 1장 ‘우린 만나야 했다’가 6월, 2장 ‘신청곡’이 9월, 3장 ‘그대 없이는 못 살아’가 연말에 열렸다. 꾸준히 음악적인 산물로 만나겠다는 의지의 투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 윤종신은 2011년 공동작업을 선택했다. ‘월간 윤종신’은 올해 1~6월 김광민과 이상순, 이현우, 장필순, 이정, 정준일 등 모두 객원 보컬을 썼다. 자신의 보컬을 재능 있는 역량으로 채워 넣는 프로듀싱 능력은 공일오비 객원 보컬 출신으로 시작한 그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사랑의 역사 4장 ‘내 생애 가장 찌질했던 이별’ 공연은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사랑의 슬픔을 담담히 읊조리는 자신의 음악적 인생에 대한 일종의 회귀 본능의 결정판이었다.

17일부터 서울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예전의 곱디 고운 미성은 사라졌지만 윤종신 특유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났다. ‘고속도로 로망스’와 ‘친구와 연인’, ‘팥빙수’, 그리고 앵콜 곡으로 선보인 ‘본능적으로’와 ‘막걸리나’를 제외한 20여 곡은 모두 이별 테마에 맞춰졌다. 자신의 최대 히트 곡이라고 할 수 있는 ‘텅 빈 거리에서’와 ‘환생’, ‘부디’, ‘너에게 간다’ 등은 아예 없었다. 골수 팬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흡족했다. 조금은 대중적으로 소외됐던 곡들을 위한 성찬으로 여겨졌다.

공연 연령층은 다양했다. 데뷔 초창기 팬덤인 30대와 40대도 많았지만 20대 연인들이 가장 많았다. 잦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해 과거와 달리 높아진 인지도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무대 연출은 소박했다. 별다른 공백 없이 윤종신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주로 지나간 추억들과 팬들에 대한 느낌, 자신의 정서에 대한 소회가 주를 이뤘다. 7인조 밴드의 연주는 크게 흠 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작은 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는 묵직했다. 그에 반해 조명은 대부분의 곡들이 핀 조명 하나로 집중력을 높였을 뿐 화려한 무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매번 곡의 시작을 알리는 인트로 영상도 이미지 위주로 전개해 화려함을 철저히 배제했다. 다소 심심하기까지 느껴지는 무던한 부분은 시그널 글자로 적극 활용했다. ‘찌질의 조건’ 10가지를 꼽아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자아냈다.

공연 중간에 나온 초대 손님도 무난했다. 보통 콘서트에서 해당 가수의 앨범과 전혀 상관없이 인맥을 통한 인물이 나오는 경우가 태반인데 반해 윤종신은 자신의 앨범에 참여한 김연우와 이정, 정준일, 조정치 등을 불렀다. 특히 이정은 초반 합동 공연을 마치고 1시간쯤 지나 다시 무대로 돌아와 자신의 공연을 선보이는 성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윤종신이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한 박정현도 출연했다. 당초 예정됐던 하림은 독감으로 인해 출연하지 못했다.

3일 간의 공연에 대한 애정은 윤종신의 트위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매일 감상을 적었다. 첫째 날에는 “고마워요. 오늘 첫 날 잘 몰입해주셨어요”, 둘째 날에는 “이번 공연 왠지 느껴지는 게 많은 공연입니다. 여러분들 눈빛도 반응도 제 노래도. 앞으로 제 공연과 음악행보에 많은 영향을 끼칠, 이렇게 여러 가지 얘길 주고받고 소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윤종신다운 공연”, 마지막 날에는 “감사합니다. 객석을 가득 메우진 못했지만 그 빈자리 허전하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불렀습니다. 잘 할게요. 오래도록.”

윤종신이 자신의 공연에 대해 매일 일일이 코멘트를 남긴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내 생애 가장 찌질했던 이별’이라는 공연 타이틀과는 달리 ‘내 생애 가장 만족했던 콘서트’가 아니었을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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