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지난 2008년 12월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탤런트 한혜린은 톡톡 튀었다. MBC 드라마 ‘종합병원2’에서 막내 간호사 순덕 역을 맡았던 한혜린은 극중에서 당돌한 모습을 보이더니 현실에서는 장난 잘 치는 막내 동생의 느낌을 풍겼다. 당시 신인이었던 그는 “일을 즐기고 싶다”는 말을 강조했었다.
그로부터 약 30개월 만에 만난 한혜린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SBS 주말드라마 ‘신기생뎐’에서 철 모르는 부잣집 딸로 자라나 온갖 풍파를 겪으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금라라 역을 맡은 한혜린은 한층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금라라에 너무 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질문에도 5초 이상의 시간을 생각하는 모습은 캐릭터에 어느 정도 잠겨 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
- 드라마 시작 당시 임성한 작가가 배우들에게 개별적 홍보도 못하게 하고, 인터뷰도 못하게 해서 답답한 마음이었을 같다. 첫 주연인데도 자신을 다양하게 알리기 쉽지 않았다.
“답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작가나 감독님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주연들이 모두 신인이라서 연기 테크닉 등이 뛰어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죠. 저뿐 아니라 다른 배우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촬영 중간에 인터뷰 대신 몰입을 하면 ‘내가 드라마를 찍고 있는 탤런트구나’라는 생각 대신 금라라가 되고 단사란(임수향)이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이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 극중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대학생으로 나온다. 춤에 대한 준비도 적잖이 했을 것 같은데.
“어떤 비중으로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준비를 많이 했죠. 라라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졸업생이니 전문가처럼 추어야 하잖아요. 사실 드라마에 나온 동작은 단순해 보일 거예요. 이틀이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희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웠어요. 느리지만, 진땀나는 동작들이에요. 선을 만들어야 하고, 전문가처럼 보여야죠. 드라마 초반에는 대본을 받지 못해서 어디에 포인트를 맞출지 몰랐어요. 그냥 충실히,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만 했죠.”
- 드라마 초반에 보면 캐릭터가 굉장히 못되게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악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도 있었다.
“못됐다보다는 너무 어려움을 모르고 사랑만 받고 자라서 그래요. 자기감정이 최고이고, 배려심이 없는 거죠. 상황적으로 얄밉고 못된 모습을 보이지만 라라 입장에서 보면 악한 마음을 품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라라 대사 중에 ‘나는 밥은 안 먹어도 친구 없으면 못 산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친구들을 좋아하고 정도 많죠. 단지 남자 문제가 생기고, 거기에 상처를 받으면서 못되게 표현을 한 거죠. 사란이 같은 경우 어른스러워서 꾹꾹 누르는데, 라라는 바로 표출하다 보니까, 사회생활을 해 본 분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 (한혜린의 말대로) 극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철없는, 사랑받지 못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역으로 흐르지는 않더라.
“라라가 인생에서 큰일을 많이 겪잖아요. 친구에게 남자를 빼앗기고,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고, 평소 싫어했던 작은 엄마가 친엄마라고 하고요. 거기서 애정결핍이 시작된 거죠. 친부모는 애정을 줬지만 자기를 어쨌든 포기한 것이고, 기른 부모는 자신을 그다지 혼내지 않는 등 거리가 있었고요. 사랑이 고픈 인물이죠. 마지막 도피처로 삼은 게 오진암과 그 어머니였고, 자라면서 받지 못한 모정을 거기서 찾으려 했는데 그마저도 배신당하면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부용각이고요. 자신이 춤추는 것을 보고 좋아해 주는 손님들을 보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한거죠. 물론 거기서도 ‘왕따’를 당하지만요. 드라마 초반에 사란이가 불쌍하게 비쳐지지만, 제가 보기에는 라라가 가장 안타까워요.”
“제가 원래 밝았는데 라라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성격이 조금 바뀌었어요. 대사를 거짓으로 해서도 안 되지만 솔직히 이런 우울한 기분 속으로 몰입하기 싫었어요. 라라에게 닥치는 일련의 상황에서 오는 감정들에 몰입하기 너무 힘들거든요. 배우를 하려면 그런 식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기 싫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푹 빠져 있네요.”
- 배우들도 힘들겠지만 시청자들도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드라마 줄거리상 연속됐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과 아들이 섞이고…. 그 중간을 조금 더 충실히 설명해 줬으면 하는 부분들이 잘려 나간 느낌이다.
“연기자들도 그 건너뛰는 중간의 내용을 또 다르게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여 주려 하니 힘들어요. 조금 느슨하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임 작가님 작품이 사건도 많고 캐릭터도 많고 표현하려는 것이 많죠. 시청자에게는 중간 중간 건너뛰는 것이 불만일 수 있지만, 다양한 스토리가 펼쳐진다는 장점도 있다고 봐요.”
- 임성한 작가 작품이 주로 신인들을 주연으로 세우고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을 조연으로 세워 받쳐 준다. 심지어 아다모 역의 성훈은 이 작품이 처음이지 않은가. 자칫 신인들이 조연들의 연기력에 묻히지 않을까 우려되는 캐스팅 방법이다.
“경력이 많고 연기력 좋은 선배들과 같이 호흡을 맞추면 도움 받는 부분이 많아 좋아요, 그래서 그런 걱정은 안 했어요. 저희가 부족하니까 힘든 것은 당연하죠., 할 수 있는 게 노력밖에 없어요.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연기 경력이 많아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는 노력뿐이죠. 덕분에 드라마 중반을 넘어서며 연기에 대한 평가가 좋아졌어요.”
- 과거 ‘종합병원2’ 때보다 배역에 임하는 자세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다.
“연기를 하다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해야겠더라고요. 여러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까 표현을 안 하면 다들 임의적으로 해석을 하세요. 그러다보면 오해도 생기고요. 예전에는 제가 표현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제 목소리를 많이 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에요.”
- 라라 캐릭터에 많이 잠겨 있는 느낌이다. ‘종합병원2’ 할 때와 비교해 캐릭터뿐 아니라 현실에서의 한혜린도 변한 듯하다. 지난해 4월 오디션 이후 1년 넘게 라라로 살아오면서 라라가 된 것 같다.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연습 때부터
라라와 상반되는 제 모습을 없애라고 하셨어요. 사람을 대할 때 라라는 직설적이잖아요. 그런데 전 아니거든요. 감독님이 연기를 잘하려면 이기적으로 하라고 하세요. 그런데 저는 NG가 나면 카메라든 조명이든 다 눈에 들어오면서 죄송해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기보다 내 길에 집중하는 게 스태프를 도와주는 것이더라고요. 그런 특성들을 바꾸고 다른 사람이 되니까 저 스스로 혼란이 왔고,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달까요. 연기하는 직업을 가져가기 위해 쌓아야 하는 것들, 필요한 것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배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단편적 생각에 머물지 않게 되더라고요.”
- 위험한 경계선에 있는 것 같다.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은 좋지만 벗어나는 조절도 필요한 것이 연기자다. 자신의 원래 캐릭터와 비슷한 배역이거나 착한 배역이라면 현실에 그대로 묻혀 와로 걱정이 안 되는데, 상반된 캐릭터나 악역은 현실로 옮겨 올 때 분명하게 경계선을 설정하지 못하면 사람이 달라져 보인다. 신인 티 벗더니 ‘사람 변했다’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그 이유다.
“현실감이 떨어지고 거기(드라마)에서만 사니까요. 모든 감각이 라라의 캐릭터에 맞춰져 있는 상황이죠. 예전에는 어느 상황에서는 한혜린이 반응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뭐든 라라가 반응하죠.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배우에게는 작품이 끝난 뒤의 환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어요. 스스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 ‘신기생뎐’, 한혜린이라는 배우 개인에게는 어떤 도움이 되었나.
“연기 자체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까, 표현을 잘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즐겁게 할까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 이상의 배움을 얻었어요. ‘연기 성장통’이랄까요. 크게 성장한 것은 없지만, 스스로는 굉장히 연기에 대해 노력했습니다. 또 비중도 주연이다 보니 책임감이라는 것도 배웠고요.”
-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
“영화 ‘위험한 상견례’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선은 라라를 잘 끝내야겠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