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리뷰] ‘고지전’, 전쟁과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쿠키 리뷰] ‘고지전’, 전쟁과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기사승인 2011-07-13 14:39:00

[쿠키 영화] 1914년 12월 24일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프랑스 북부 독일군 점령지역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로를 죽이며 싸우던 연합군과 독일군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하루 휴전을 한 것이다. 이들은 전사자를 위해 합동 장례식을 치렀고 기도를 올렸다. 담배를 나눠 피고 서로의 가족 사진을 돌려 봤다. 죽음의 땅에서 축구를 하며 서로 즐거워했다. 그러나 다음날, 이들은 다시 서로를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지난 11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된 영화 ‘고지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기적같이 일어난 이 크리스마스 휴전을 떠올리게 했다. 서로를 왜 죽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말이다.

‘고지전’은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한창이던 1953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동부전선 애록고지를 배경으로 한다. 방첩대 중위였던 강은표(신하균)은 북한군과 내통하는 아군을 조사하러 애록고지 악어중대로 향한다.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를 만나게 된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이등병이었던 김수혁은 어느새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있다. 강은표는 그곳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를 탈환하고 빼앗기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북한군과 악어중대 부대원들 사이에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거래가 오감을 알게 된다. 그러나 강은표는 전쟁으로 인해 변해 버린 김수혁과 군인들을 보면서 이내 자신도 변해 가기 시작한다.

100억 원 대의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답게 ‘고지전’이 스크린 가득히 보여 주는 스펙터클은 기대 이상이다. 군인들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장면을 쫓아가는 카메라의 동선이나 넓은 고지에서 싸우는 군인들과 널려진 시체들의 모습은 관객들을 전쟁터 한복판에 세워 놓는다.

그러나 영화의 힘은 이러한 영상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 속 영상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사람만 남는다. 수혁의 말대로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사람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는 고지이기에 남북한 군인들은 일정한 장소를 통해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다시 전투가 시작되면, 서로를 죽이게 되지만 말이다. 하이라이트는 휴전 협정이 체결된 후의 모습이다. 잠깐이나마 서로를 향해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이들은 마지막 12시간 총력전을 펼쳐야 된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한다. 왜, 무엇 때문에 서로를 다시 죽여야 되는가를 놓고 양측 군인들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짙은 안개 속에서 남북한 군인의 목소리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전선야곡’은 제2차 세계대전의 크리스마스 휴전을 떠올리게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게 흘러 간다.

‘고지전’은 한국영화가 갖는 전형적 힘인 드라마에 무게를 실었다. 인물과 집단이 가진 과거를 통해 현재의 상황과 인물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우연과 필연을 섞어서 관객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낸다. 또 집단과 집단 간의 관계, 개인과 개인과의 스토리를 서로 엮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국군에 관해서는 각각의 캐릭터를 살리는 방식을 취한 반면, 북한군에 대해서는 개별보다는 전체 집단으로 묶어버린다. 이러한 구성은 배우들의 역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국군 역을 맡은 배우들은 연기력을 펼칠 수 있었던 반면 북한군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력은 한정돼 보인다. 고수는 한층 성숙된 연기력으로 악어중대를 이끄는 강한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 어느 때는 너무나 냉정해 ‘악’(惡)의 기운을 느끼게까지 한다. 이와 비교되는 신하균 역시 전쟁으로 점차 성격이 변해 가면서도 감성적 인간의 면모는 잊어 버리지 않으려는 감정선을 잘 유지한다. 고창석과 류승수는 감초 같은 역할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신예인 이제훈과 이다윗 역시 자기의 몫을 소화해 낸다. 그러나 좀 더 무게감 있고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북한군 장교 역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됐던 류승룡은 비중이 너무 낮아서 연기 평가 자체가 힘들고, 유일한 여배우인 김옥빈 역시 특별한 연기력을 요구하지 않는 수준에서 그쳐 아쉬움을 더한다. 오는 20일 개봉.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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