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영화 ‘7광구’(감독 김지훈)가 언론시사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후의 반응은 극단적이다. ‘3D 괴물 영화’를 최초로 시도한 것에 대해 찬사가 이어지면서도 부실한 스토리에 대한 비판도 곁들여졌다. 미국영화 ‘에이리언’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섞은 듯한 장면들, 영화 전반부 어설픈 말장난에 의한 웃음 유발과 스토리 라인은 보는 이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괴물과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는 차해준 역의 하지원이다.
영화 ‘형사 Duelist’와 드라마 ‘다모’ ‘시크릿 가든’을 통해 여전사 이미지가 이미 굳어진 하지원이지만, 별 대사 없이 홀로 괴물과 싸우며 영화 후반부를 책임진 몫에 대해서는 호평이 대세다.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하지원은 여러 가지 아쉬움을 준 영화에 대해 본인 역시 본 개봉에서는 언론시사회나 VIP 시사회의 문제가 해결될 것임을 강조했다.
“언론시사회나 VIP 시사회 모두 봤는데, 사운드도 좀 아쉽고 화면이 밝지 않아서 캐릭터들의 세세한 모습이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어제 후반 작업을 하러 갔는데, 조금 더 캐릭터들이 살아나서 배우들의 감정이 다 보이고, 괴물 역시 관객들에게 더 튀어나와 보였어요. 시사회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7광구’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블루스크린에서 연기를 한 제가 봐도 3D 부분은 외국 영화보다 질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일반 관객들이 보실 때는 구토할 정도로 괴물이 튀어나와야 하잖아요(웃음).”
‘7광구’ 촬영의 대부분은 실내 세트장의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했다. 모든 배우들이 그렇지만, 특히 하지원은 후반 15일을 보이지도 않는 괴물과 싸우는 연기를 홀로 수행했다. 늘 상대를 두고 연기해 온 입장에서 머릿속에 괴물을 그리고 표정과 몸짓 연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터. 그나마 괴물의 역할을 해 주는 ‘그린맨’이 존재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장에 동영상 콘티가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찍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머릿속에 늘 괴물의 크기와 움직임, 상황을 상상으로 그리다 보니, 에너지가 더 많이 소비된 것 같아요. 고생했지만, 재미있었어요. 또 괴물 역을 맡아 주신 ‘그린맨’이 있어서 감사했어요. 이 분이 정말 걸을 때도 괴물처럼 걷고, 다가올 때도 괴물처럼 다가오세요. 혼자 찍을 때는 몰랐는데, 배우 모두가 찍을 때는 시선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 분이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데, 괴물 비슷한 탈 같은 것을 만들어서 너무 잘해 주셨어요. 오죽하면 감독님이 ‘그린맨’ 보고 ‘네가 제일 연기가 낫다’고 하셨을까요.”
하지원은 ‘7광구’ 차해준을 통해 여전사 이미지를 보여 준다. ‘시크릿 가든’에서의 스턴트우먼인 길라임, ‘다모’의 채옥, ‘형사 Duelist’의 남순을 통해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제는 하지원=여전사의 등식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가 됐다. 하지원 스스로도 그렇다. 오죽하면 언론시사회 때 “어렵지만 행복하기 위해 액션 연기를 한다”고 말했을까. 마음뿐이 아니다. 강인한 체력도 배우 하지원을 여전사이게끔 한다.
“(‘7광구’) 배우들 중에서 제가 체력이 가장 강했어요. 새벽까지 촬영이 이어질 때 다들 지쳐할 때, 안성기 선배가 저한테 ‘지원이 너는 왜 이렇게 쌩쌩하냐’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캐릭터를 위해서 운동을 많이 했어요. 준비할 때는 사람들도 잘 안 만났고요. 서 있는 자세 하나도 운동을 할 때와 안 할 때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웨이트 열심히 하고 고기도 많이 먹어서 탄탄하고 건강하게 보이려 노력했죠. 서있는 자세, 작살총 쏠 때 자세 하나하나 모두를 통해 캐릭터를 완성시키려 세심하게 다듬었어요.”
‘7광구’는 하지원에게 또 한 번의 도전이기도 하지만, 자칫 여전사 이미지로 고착될 수도 있는 위험한 영화이기도 하다. 동시에 실질적으로 한국 최초의 3D 영화를 혼자서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만만찮았을 듯하다.
“‘7광구’는 사실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한 작품이 아니었어요. 제가 액션을 좋아하는데 그 안에는 사람도 있고 흔들리는 여자도 있고, 여린 면도 있고 서민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죠. 또 여자가 괴생물체와 맞서 싸우는 역할을 해 보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약한 모습 보여 주기 싫었고, 진짜 멋진 여전사를 연기하고 싶었어요 ‘7광구’ 안에서의 모습이 그런 역할인 것 같았어요. 저한테는 도전이었죠. 대사도 별로 없어서 내 캐릭터를 제대로 잡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후반부 액션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저보다 감독님이나 영화를 만드시는 분들에게 더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많이 고생하시니까요.”
영화 속 해양괴물은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보아 온 괴물보다 징그러움과 잔인함이 강화됐고 두뇌 역시 뛰어나다. 하지원은 비록 블루스크린에서 연기했지만, 실제로 영화 속 같은 괴물을 상대로 연기했다면 연기 감정이 다르지 않았을까. 영화 속 괴물에 대한 하지원의 생각은 어떨까.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그 괴생명체는 사람이 일부러 건드려서 변이가 된 거잖아요. 제 생각에는 처음에 그 괴물이 나온 의도는 우리랑 놀아 달라고 온 것 같아요. 제가 언제 그것을 느꼈냐면, 괴물이 드릴에 갈리는 장면을 마지막에 찍었는데 그걸 보고 불쌍해서 울음이 나왔어요. 자연을 훼손시킨 것은 인간이고, 괴물은 그 피해를 입은 것일 뿐이니까요. 엉뚱한 생각이지만, 괴물과 서로 눈빛 교환을 할 때 알게 모르게 사랑스럽게 교감했다면 이상한가요(웃음).”
하지원은 영화를 위해 7개월 가까이를 준비했다. 몸에 근육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해 오토바이를 타는 연습도 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오토바이 시내 투어까지 했다. 그 덕에 약속 시간에 종종 늦어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다른 차로 갈아탈 정도였다. 7개월 동안 하지원의 시간은 온전히 ‘7광구’를 위해 바쳐진 셈이다.
“영화 제작비가 엄청나잖아요. 정말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나오고, 후반에는 저 혼자 끌고나가야 하고요. 그런 생각에, 진짜 헛되이 보낸 시간이 없어요. 누가 스케줄을 강요한 것도 아닌데 제 스스로 빡빡하게 만들었죠. 웨이트도 하루 종일 했어요. 나중에는 트레이너가 근육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요. 그렇게 7개월을 보냈죠. 독하게 마음먹었던 이유는 이렇게 큰 영화의 여자주인공인 해준이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헤어도 두 달 정도 길러서 오토바이를 탈 때 헤어가 어떻게 날리는지도 체크했어요.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고민한 거죠. 팔의 각도부터 시작해 의상도 일일이 다 입어 봤고요.”
여전사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일까.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에 아직 갇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하지원을 길라임으로 부른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어도
‘하지원 씨 사인 부탁해요’가 아니라 ‘길라임 씨 사인 부탁해요’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저는 좋아요. 드라마나 영화할 때마다 배우가 연기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감동인 것 같아요. 굉장히 감사드리죠. 그렇다고 제가 아직도 그곳기서 하지원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극중 이름을 불러 줬다는 것은 캐릭터를 인식해 준 것이니 그것을 연기한 배우인 저에게는 행복인거죠.”
답을 들으며 하지원이 아니라 길라임을 사랑한 대중이 길라임에게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하지원, 이번에는 차해준으로 우리를 가둘지 지켜볼 일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박효상 기자 islandcity@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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