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장군·북한장교로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전쟁
“강정마을, 명동 철거…세상은 여전히 전쟁터죠”
[쿠키 영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영화 ‘최종병기 활’(감독 김한민)의 류승룡은 다소 지쳐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몽골 장군 쥬신타 역을 맡아 뜨거운 연기를 펼친 영화의 언론시사회가 있었던 지난 1일 이후 줄곧 언론 홍보 인터뷰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하루에 4~5개 이상의 매체의 기자들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제작사나 홍보사 입장에서는 영화를 홍보해야 하기에, 매체 입장에서는 독자에게 배우의 생각을 알리는 일련의 과정이기에 필요하지만, 배우에게는 마냥 즐거운 일로만 다가서지는 않을 터이다. 공식 인터뷰 마지막 날인 5일 금요일 저녁, 바로 뒤에 하나의 매체만을 남겨둔 채 진행된 류승룡과의 인터뷰는 화면에 보여지는 영화 텍스트 자체보다 그 뒷이야기, 영화보다 더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실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질문도 비슷하잖아요. 악역을 맡았는데 어떤가, 어느 장면이 힘들었느냐, 배우들 간의 호흡은 어땠느냐, 제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 ‘고지전’과 연결하기도 하고요. 어느 때는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녹음해서 어느 질문에 몇 번, 어느 질문에 몇 번 누르고 싶다니까요. 아니면, 미리 답변 지를 적어서 그때그때 내놓으면 어떨까도 생각해 봐요.”
너무나 많이 들어서 그랬을까. 인터뷰에 시동을 거는 몇몇 기본적 질문에 류승룡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가장 힘들었을 것 같은 절벽 위를 건너는 장면을 이야기할 때는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가 힘들었고, 위험했다”고 말했고, 악역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다는 질문에는 “‘된장’ 등에서 재미있는 역을 하기도 했는데, 많은 관객이 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화면이나 사운드가 강렬하고 타 영화와 차별성을 갖는다는 질문에는 “배우들이 연기하고 스태프들이 촬영한 것이 축구로 치면 전반전이라면, 이후의 작업들은 후반전이다. 그것이 모두 잘 된 것 같다. 아마 동일한 시간 안에 후반 작업을 이렇게 잘하는 스태프들은 없을 것이다”라고 막힘없이 스태프들을 칭찬했다.
힘든 장면에서 대역을 쓰는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분들이 없으면 촬영이 안 된다. 주연 배우가 다치면 제작에 차질이 생기는데, 그 분들 덕분에 그런 일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얼굴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거의 모든 연기는 내가 했다”고 말했고, 대작 주연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서는 “부담감 없이 그냥 ‘내가 연기를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1억 영화라서 부담감이 없고, 100억 영화라서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모든 영화에 충실할 뿐”이라는 정석의 답이 나왔다.
‘비슷한 질문’에 ‘똑같은 답변’을 내놓으면서도 류승룡은 “그렇다고 인터뷰가 즐겁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홍보한다는 마음보다는 사람을 만나 데이트를 한다는 기분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며 영화를 알려야 하는 주연 배우로서의 모습도 잃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엉뚱한 곳으로 흐른 것은 그가 북한 장교 역을 맡은 ‘고지전’과 ‘최종병기 활’을 섞으면서부터다. 시대가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기자가 “‘고지전’이 전쟁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고, ‘12시간 총력전’이라는 말에서는 가슴이 아팠다”고 말하자, 류승룡은 “그때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그런 곳이 많다”고 말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잖아요. ‘고지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지금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어요. 다들 세상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죠. 왜 하는지도 모르고, 위에서 형식적으로 무조건 하라고 하니, 하는 전쟁이죠. ‘고지전’에서처럼 12시간 동안은 총력전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죠. 지금 보세요. 김진숙 씨는 (크레인에) 올라가 있고, 강정마을도 그렇고요. 또 명동 철거 현장이나 용산 철거도 보세요.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이 많죠. 우면산 사태도 보면, 잘 사는 동네라 복구한다니까 몇 천 명 투입시키는데, 그 옆의 구룡마을은 언론에도 나오지 않잖아요.”
흥미로운 것은 류승룡이 말하는 이슈들이 포털 사이트 상에서는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쉽게 관심 갖기 어려운 사안들이라는 사실이다. 포털 사이트의 특성상 주로 검색어에 한정된 이슈만이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 뿐이고, 그 대부분이 연예 뉴스나 해당 시간에 방송되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 대형 사건에 대한 속보들이다. 되레 류승룡이 주목한 것들은 현재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SNS)에서 이슈가 되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류승룡이 남긴 트위터 글을 접해 보지 못했기에,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 다소 놀랍게 다가왔다.
“트위터를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글을 남기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 배우가 트위터에 글을 남기는 것이 홍보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 읽기만 하죠. 보다 보면 느끼는 게 포털 사이트와 트위터의 이슈들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어요. 저는 세상을 트위터로 보지, 포털로 안 봐요. 트위터를 들여다 보면 아직도 세상에는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걸 알게 되고, 이를 통해 힘을 얻게 됩니다.”
사회에 관한 발언 수위가 약간 높아지는 듯싶어 인터뷰 말미에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중 자신의 출연작 이외에 본 것이 있는지 물었다. 흥행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경쟁 작에 대해 의식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답변은 또다시 예상을 벗어났다.
“한국영화는 거의 다 보는 편인데, 최근에 볼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근래에 본 영화는 ‘마당을 벗어난 암탉’인데, 아이들과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나왔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고무적이에요. 저도 더빙에 참여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예요.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가족영화 애니메이션에 참여하고 싶고, 이런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류승룡과의 인터뷰는 ‘최종병기 활’에 대한 ‘짧은’ 이야기와 전쟁 같은 현실에 대한 ‘긴’ 이야기,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에 관한 ‘희망’의 말로 마무리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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