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issue] 여성가족부, ‘술’ ‘담배’때문에 ‘동네북’ 되다

[Ki-Z issue] 여성가족부, ‘술’ ‘담배’때문에 ‘동네북’ 되다

기사승인 2011-08-27 13:00:00

[쿠키 연예] 여성가족부가 2010년 3월 19일 출범한 이래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그것도 주업무인 여성과 가정 관련 사항이 아닌,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때문이다. 이 업무는 여성가족부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담당했었다. 양 기관 모두 사실상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과 관련해 유관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지금과 같이 거센 상황은 아니었다. 왜 그런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지난 25일 여성가족부 홈페이지는 누리꾼들의 게시물로 인해 일시적으로 다운됐다. 누리꾼들은 납득하지 못하는 기준으로 대중가요를 대거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음란한 이미지나 단어를 빗대 ‘없애주세요’ 시리즈를 올리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뽀로로와 푸들이 바지를 입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변태’같다며 없애달라고 하는가 하면, 조리퐁이나 조개도 음란한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며 없애주길 요청했다. 급기야는 비오는 날 술 생각이 나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유해하니 비 자체를 없애달라는 황당한 주문까지 했다. 이날 반나절 동안 올라온 ‘~없애주세요’의 글은 2500건을 훌쩍 넘었고, 대형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에는 ‘여성부’가 반나절 이상 오르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에 대해 누리꾼들의 반발이 이처럼 거세진 것은 여성가족부가 ‘술’‘담배’ 등의 단어가 들어간 노래에 대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이전에 보건복지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이를 지정할 당시에는 주로 선정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어 비의 ‘레이니즘’의 가사 중 ‘떨리는 니 몸 안에 돌고 있는 나의 매직스틱,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느낀 바디 셰이크’라는 부분이 성 행위를 묘사한 것 같다며 당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렸다. 또 동방신기의 ‘미로틱’ 역시 성적인 뜻을 내포한 듯한 가사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지만,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가 법원에 유해물판정 취소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선정성 논란이 일었던 빅뱅의 지드래곤 공연은 검찰에 수사 요청까지 했고, 결국 입건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번 분위기는 청소년유해매체물 선정 업무가 여성가족부로 이관되면서도 한동안 유지됐다. 태양의 정규 1집 중 ‘무브’‘테이크 잇 슬로우’‘니가 잠든 후에’, 세븐의 곡 ‘드립스’, 서태지의 곡 ‘F.M 비즈니스’도 선정성을 문제 삼아 청소년 유해 판정을 내렸다.

그러던 여성가족부가 기성 가수들의 곡은 물론 아이돌그룹, 인디밴드 들의 노래에 ‘술’ ‘담배’가 들어간 노래를 앞뒤 연관성을 생각하지도 않고 무더기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기 시작했다.

2PM의 ‘핸드업’(술 한 잔을 다 같이 들이킬게 one shot) 10cm의 ‘아메리카노’(이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실 때) 장혜진의 ‘술이야’(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널 잃고 이렇게 내가 힘들 줄이야) 김조한의 ‘취중진담’(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약한 모습 미안해도 술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지는 마) 백지영의 ‘아이캔 드링크’(난 술을 못 마셔요. 몇 번을 얘기해야 돼요) 비스트의 ‘비가오는 날엔’(취했나 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애) 등이다.

청소년이 들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곡들을 ‘술’ ‘담배’라는 단어 때문에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것에 대한 반발은 당연히 일어났다. 특히 수익과 직결된 가요기획사와 가수들은 ‘왜’라는 의문과 함께 답답해했다.

그러던 중 누리꾼들의 대거 반발은 물론 SM엔터테인먼트가 그룹 SM 더 발라드의 곡 ‘너무 그리워’에 술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물로 지정된 것에 대해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로 인해 여성가족부에 대한 질타가 본격화 됐다. 법원조차도 이 같은 심의를 부당하게 여긴 것이다.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비난을 받고, 법적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여성가족부에게 닥친 셈이다. 벌써 일부 기획사에서는 소송을 검토 중이고, 만약 줄 소송이 이어져 여성가족부가 잇따라 패소를 할 경우에는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권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의 한 축인 음악을 심의하는 기관이 여성가족부라는 것도 대중들을 납득시키지 못할뿐더러, 가장 큰 문제는 음악 전체의 맥락을 읽지 못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단편성이 현재 여성가족부에 대한 전체적인 불신으로 이어졌다”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단순히 여성가족부가 대중들과 가요계 관계자들의 비판을 받는 것은 둘째치고, 한국 대중음악의 창의성 자체가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지난 23일 “청소년 유해 매체물의 심의 세칙을 마련해 술이나 담배 등을 직접적으로 권하는 내용에 대해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음반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 다음달 말까지 심의 세칙을 확정할 방침임을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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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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