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윤종빈-하정우-최민식, ‘나쁜놈들’의 훈훈한 情

[쿠키人터뷰] 윤종빈-하정우-최민식, ‘나쁜놈들’의 훈훈한 情

기사승인 2012-02-06 11:43:00

"윤종빈 “하정우가 추천…최민식 외 아무에게도 시나리오 준 적 없다”
하정우 “최민식과의 호흡? 인정받고 귀여움 받고 싶은 게 전부”
최민식 “정우에게 큰 빚…형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다오”

[쿠키 영화] 개봉 첫 주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나쁜놈들’)의 주연 하정우를 폭설이 내린 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배우와의 인터뷰 자리에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이 함께했다.

영화 ‘추격자’‘황해’에 비할 때 미국 뉴요커를 연상시키는 슈트와 코트 패션의 ‘의뢰인’에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조직폭력배 스타일을 선보인 ‘나쁜놈들’ 속 외모는 나날이 예리한 멋을 뽐내는데 하정우의 스크린 밖 성격은 여전히 둥글다. 내 얘기만 하고 싶은 게 당연할 수 있는 인터뷰에 감독과 후배를 동석시키는가 하면 자기 자랑보다 동료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함박눈보다 포근하다. 특히 ‘나쁜놈들’의 최민식 캐스팅에 숨겨진 일화는 자못 감동적이다.

먼저 윤종빈 감독이 입을 열었다. 윤종빈과 하정우는 지난 2005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나 ‘비스티 보이즈’(2008), ‘나쁜놈들’(2012)을 함께해 왔다. 사석에서는 한 살 어린 윤 감독이 하정우를 형이라 부른다.



“하정우, 시나리오 첫 장도 보지 않고 출연 승낙”

“정우 형에게는 늘 고마운데요, ‘나쁜놈들’ 시나리오를 주던 날은 특히나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형이 연기한 최형배가 최민식 선배님이 연기한 최익현에 비해 비중이 작다 보니, 책을 주러 만났는데 얼른 건네지도 못하겠더라고요. 머뭇거리다, 그래도 일적으로는 감독과 배우니까, 한 번 읽고 검토해 봐 달라고 말했죠. 그런데 형이 책 위에 손을 턱 얹더니 첫 장도 들춰 보지 않고 ‘우리 사이에 검토는 무슨 검토냐, 무조건 한다’고 시원하게 수락을 해 줬어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이에 대해 하정우는 “감독과 배우 이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통했느냐를 우선시 한다. 이미 인간적으로 통한 사이라면 흥행감독이냐 아니냐, 배역의 비중이 크냐 작다는 문제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중이 작지 않느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되레 반문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을 참 좋아 하는데요. 로버트 드니로도 그 영화에서 최형배 정도 (분량으로 출연)하지 않았나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제 비중보다 최민식 선배님 캐스팅 성사에 더 마음이 쓰였는걸요.”

윤 감독이 최민식 캐스팅 이야기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민식 출연 거절…‘악마를 보았다’ 끝나도록 기다려”

“제가 드라마를 거의 안 봐요. 어렸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달’은 정말 너무 좋아하면서 방송시간 기다려 봤거든요, 최민식, 또 한석규라는 배우가 어찌나 연기를 잘하던지. 개인적으로 그때부터 최민식 선배님의 팬이기도 하지만 정우 형이 최익현 역에 적극 추천했습니다. 사실 이거 (최민식) 선배님께도 말씀 안 드린 건데, 선배님께서 ‘악마를 보았다’에 출연하시느라 저희 영화 출연을 거절하셨을 때, 최익현 배역을 놓고 다른 어느 배우에게도 시나리오를 준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악마’가 끝나도록 기다릴 수 있었던 것도 정우 형의 ‘눈’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판단이 정확하거든요. 여기저기 책을 돌리는 대신, 애초에 형사였던 최익현을 부산세관 출신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어요. 다시 선배님께 책을 드리며 좋게 읽어 달라고 말씀드렸고, 드디어 함께하게 됐습니다(웃음).”

지난 2005년 ‘주먹이 운다’ 이후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2008)과 ‘악마를 보았다’(2010)를 선보이기는 했으나 배우 최민식을 향한 대중의 ‘갈증’을 해갈시키기엔 부족했다. 명실상부하게 영화 관객 곁으로 돌아온 ‘나쁜놈들’의 출연, 소름끼칠 정도로 리얼한 캐릭터 최익현의 탄생, 그 배후에는 배우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셈이다.

최민식 “하정우가 여자라면, 연애 한 번 걸어 보고파”

하정우에게 그토록 원했고, 어렵사리 한 배를 타게 된 최민식의 연기를 곁에서 보니 어땠느냐고 물었다. 후배는 “감히 어떻게 선배의 연기를 얘기하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하루 앞서 만난 최민식에게서 들은 하정우에 대한 평가를 전했다.

당시 최민식은 “연기를 취미로 하느냐 밥벌이로 하느냐에 그 연기의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밥벌이라는 게 뭐냐, 관객은 표 값만 내고 오는 게 아니라 귀한 시간을 내서 오는 것인 만큼 그 투자가 아깝지 않게 ‘대 관객 서비스’를 충분히 해야 하는 게 배우의 몫이다. 정우는 그걸 안다. 게다가 그런 큰 그림뿐 아니라 장면, 장면 여우같은 계산으로 연기할 줄 아는 테크닉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정우가 여자였다면 내가 한 번 연애를 걸어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배우다”라고 칭찬했다.

선배의 평가를 전해들은 하정우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며 흡족해 했다.

“사실 제가 최민식 선배님과 함께 연기해 보고 싶었던 것, ‘나쁜놈들’ 출연이 성사되도록 그토록 바랐던 것은 다른 게 없어요. 선배님께 인정받고 귀여움 받고 싶었습니다.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면 된 겁니다. (윤 감독을 보고 미소 지으며) 윤 감독, 나 이 영화 하길 정말 잘했지?”



하정우 “언제든 불러달라는 최민식 선배 말에 감동”

윤 감독 역시 활짝 핀 웃음으로 화답했다. 제3자가 보기에는. 최민식이라는 대배우의 가치를 알고 시나리오 집필 이전 단계부터 마음을 모아 애써 왔다며, ‘올드 보이’ ‘파이란’ ‘친절한 금자씨’에서처럼 다시 한 번 펄펄 살아 움직이는 최민식의 연기를 보게 된 데에는 우리의 공도 있다며 생색을 내봄직도 한 두 사람이 소년처럼 좋아할 뿐이다.

선배의 칭찬이 그렇게 좋냐고, 최민식 본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지만 끝까지 기다려 준 두 사람에게 오히려 최민식이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괜스레 심통 맞은 질문을 건넸다. 사실은 전날 두 사람을 향한 고마움을 최민식에게서 들어놓고도 말이다. 툭 찔렀을 뿐인데 하정우가 긴장한다. “아니다, 선배님께 이미 너무나도 고마운 말씀을 들었다”며 하루 전 최민식이 들려준 것과 똑같은 일화를 꺼낸다. 지난달 26일 열린 ‘나쁜놈들’의 VIP 시사회 후에 있었던 얘기다.

“VIP 시사회가 끝나고 다함께 소주를 하러 갔어요. ‘정말 우리가 이렇게 잘했나?’ 어리둥절할 정도로 관객 분들이 너무 좋은 반응을 주셔서 모두가 기분이 좋은 상태였습니다. 그때 최민식 선배님이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정우야, 형이 취하기 전에 얘기할게. 이번에 너한테 정말 고맙다. 다음에 언제라도, 형이 필요한 역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 내가 무조건 할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데, (손을 심장 부근에 대며) 진짜 감동이 화악 오더라고요.”

최민식은 같은 얘기를 전하던 당시 “요즘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가장 방귀 좀 뀐다 하는(잘나가는) 하정우가 함께해 줘서 너무 고맙다. ‘나쁜놈들’에 나온 모든 배우들이 다 연기를 잘하고 다 고맙지만 정우에게 가장 큰 빚을 졌다. 다음에 꼭 빚을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쁜놈들’의 훈훈한 정, 영화에 고스란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남성적 쾌감이 넘치는 영화다. ‘써니’가 칠공주파라는 여고생들의 모임을 통해 1990년대를 회상한 영화라면, ‘나쁜놈들’은 척박한 세상을 각자의 방식대로 정면 돌파하며 살아가는 거친 사내들을 통해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을 돌아본다.

1990년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을 축에 두고 공안정국의 태동 배경을 정치권력과 조직폭력배, 검찰과 경찰의 부당거래를 조망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정권과 조폭의 사이에서 그들의 거간꾼 노릇을 했던, 깡패도 일반인도 아닌 ‘반달’ 최익현이다. 집에서는 권위 있는 가장이지만, 가족들과 먹고 살기 위해 밖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부치는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이나 주제를 보면 잿빛 무게감이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박장대소를 불러일으키는 유머가 살아 있는 작품이다. 몸통 전체가 최익현이 된 듯한 최민식의 신들린 연기, 영화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되 장면마다 톡톡 튀는 말투와 몸짓으로 캐릭터 연기의 묘미를 선사하는 하정우가 웃음의 강도를 높인다.

최익현을 연기한 최민식은 “배우들 간, 배우와 스태프 간에 궁합 좋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호흡이 척척 맞으면 관객들이 기막히게 알아보시고 사랑해 주셔서 흥행작품이 된다. ‘나쁜놈들’이 기대되는 이유다”라고 밝혔다. 그의 예감이 현실이 되어, 2월과 3월의 극장가가 오래도록 ‘나쁜놈들의 전성시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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