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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영화] 때로 집요한 질문이 만족스런 이해나 귀중한 답변을 얻어낼 때가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배우 최민식에게 던진 ‘악마’ 장경철과 ‘반달’ 최익현에 대한 질문이 그랬다. 둘 다 선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은 인물임에도 두 캐릭터를 바라보는 호감도에는 온도차가 있다며 “단순히 캐릭터의 차이가 아니라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서 온 결과는 아닌지” 묻고 또 물었다. 답을 주저하던 최민식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제가 ‘악마를 보았다’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나쁜놈들’)를 모두 기자가 아닌 관객과 봤는데요, 관객들이 ‘악마’ 장경철에게는 고개를 돌렸는데, ‘반달’ 최익현에게는 열광하더라고요. 이러한 반응의 차이가 단순히 캐릭터 차이에서만 올까, 한 사람은 희대의 연쇄살인마 다른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온갖 잔머리를 굴리는 로비꾼, 한 사람은 내가 되기에는 먼 거리에 있는 인물 다른 사람은 먹고 살자면 나도 해 봄직한 해 봤음직한 모사를 하는 사람인 것에서 오는 차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지운 감독과 윤종빈 감독의 연출 스타일 차이에서도 오는 결과일까요?
= 왜요, 장경철 좋다는 분들 많았는데? (웃음)
- 맞아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자기 생애 최고의 영화라고 하는 분들, 제 주변에도 있어요.
= 농담이고요. 불편해 하는 분들 많았지만, 또 그런 캐릭터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관객 개개인의 만족도가 아니라 대중적 호감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 반응들을 봐도요. 그러니까 윤종빈 감독은 최익현을 통해 최민식이라는 배우도 돋보이게 하고 영화도 살리고 일거양득을 보았다면, 김지운은 감독은 영화를 위해 최민식을 이용했다고 할까요?
= 이용이라는 표현은 지나친데요(웃음). 영화는 감독 예술이잖아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배우를 당연히 쓸 수 있지요.
- 활용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런 거예요. 관객 입장에서는 ‘악마를 보았다’를 보러 갈 때 김지운 감독 고유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지만,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도 기대를 안고 표를 사요. 다른 배우가 아니라 바로 최민식을 쓴 이유,입장에서는 연기한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장경철에서는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맛을 느끼기 힘들었고 오롯는 김지운의 색깔는 두드러졌다는 거죠. 김지운과 최민식을 보러 갔다가 김지운만 보고 온 느낌, 그 점을 아쉬워하는 거예요.
= 어이쿠, 여기 제 우군(友軍)이 오셨네요. 관객 분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배우인 저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말씀드렸듯 영화는 철저히 감독의 예술이에요. 감독과 배우가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견해가 다를 수 있고, 때로 상충되는 부분을 보완하기도 하고 감독이 배우의 생각과 표현을 인정해 주기도 하지만, 감독이 ‘꼭 이것을 원한다’ 그러면 그에 따라줘야 하는 게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싫으면 영화에서 하차하거나 스스로 감독을 해야겠지요.
- 장경철은 김지운 감독께서 고안한 캐릭터 그대로를 따른 결과라는 말씀인가요?
계속되는 질문이 곤란한지 배우 최민식은 뜸을 들이다 ‘나쁜놈들’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 얘기를 꺼냈다.
= 윤종빈 감독이 저를 그냥 놀게 해 주긴 했어요. 마치 모든 배우, 스태프와 함께 멍석을 깔아 주고 그 위에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춤추게 해 주었달까요. 제가 윤 감독에게 ‘아니,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제게도 요구와 지시를 줘요’라고 말했을 정도로요. 윤 감독은 그저 ‘선배님께서 하고자 하는 대로만 하시라’고 하더라고요. 감독이 그렇게 말해 주니 제가 얼마나 부담이 돼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했죠. 제 안에서 답이 나와야 하는 거니까, 고민 많이 하며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하루 뒤 같은 서울 삼청동, 또 다른 장소에서 만난 윤종빈 감독도 같은 얘기를 했다. 먼저 윤 감독은 드라마 ‘서울의 달’ 시절부터 팬이었고, 믿고 함께하는 배우 하정우의 추천이 있었기에 ‘악마를 보았다’에 출연하느라 ‘나쁜놈들’을 사양한 배우 최민식을 ‘악마를 보았다’가 끝나도록 기다렸다고 밝혔다. 그렇게 공들여 캐스팅한 배우의 연기에 만족했는지 묻자 “최고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제가 이번 영화에서 디렉팅을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배우 최민식이었어요. 사실 최민식 선배님께서 준비해 오신 최익현은 제가 생각했던 인물과 달랐어요. 하지만 연기하시는 걸 보니 공감이 되고 설득이 되더라고요.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게 답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처음에 그린 인물을 고집하고 디테일부터 하나하나 잡아 나갈 수도 있지요, 그렇게 무언가를 요구했으면 그대로 구현해 주셨을 거고요. 그런데 그게 꼭 맞는 걸까 싶었어요. 연기에 대해서는 최민식 선배께서 프로페셔널이고, 저보다 한참 오래 내공을 쌓아 오셨잖아요. 통으로 최익현이 되어 오신 최 선배가 자연스럽게 내뿜는 표정과 디테일한 몸짓을 그대로 살리는 게 영화에도 더 좋다고 생각했고요.”
- 아, 그래서 최익현에는 배우 최민식의 색깔이 많이 묻어 있군요. 김지운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 으음…, 장경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일부분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영화는 거듭 말하지만 감독 예술이에요. 김 감독의 생각은 확고했고 그러면 배우가 따르는 게 맞지요. (장경철 표현은) 김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주연배우랍시고 자기를 내세우면 정말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현장이 어려워져요. 그 많은 사람을 이끄는 게 감독이고, 배우는 또 배우의 역할이 있고… 그런 기본이 지켜져야 작업이 즐겁고 작품이 잘 나옵니다.
- 배우 최민식이 생각한 장경철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 자라온 환경 탓에 사회성이 결여돼 있고 숫기가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요. 또 사이코 패스죠, 감정의 변화 그 격차가 1에서 100으로 금세 치닫는 인물이에요. 예를 들어 학원 미니버스를 모는 장경철이 룸미러로 자기 마음에 드는 이상형의 여자를 발견해요. 보통 사람 같으면 그 학원차 안에서부터 말을 걸 거고 점차 마음의 벽이 낮아지도록 서서히 다가갈 거예요. 하지만 장경철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요, 또 부끄럼이 많아서 학생들이 타고 내리는 차 안에서 말을 붙일 수 없죠. 그래서 아무도 오지 않는, 아무도 보지 않는 비닐하우스로 데려가는 거예요. 자기 딴에는 조심스럽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는데, 상대 여학생에게는 비닐하우스에 데려온 것부터 아주 폭력적 상황이죠, 당연히 싫어하죠. 하지만 장경철에게는 여학생의 거부가 ‘네가 뭔데, 나는 좋아하면 안 되냐?’는 역심을 발동시키고, 감정이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인물이니까 폭발해서는 마구 옷을 헤치고 그…거(성폭행을) 하고 목을 조르고… 하나의 의식과도 같이 행해요. 그런데 그때 누가 자기이름을 불러요, ‘장경철!’. 여기는 나밖에 모르는 장소여야 하는데,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치르는 죽음의 의식인데 누군가 이걸 본 거예요. 장경철은 순간 부끄럽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면서… 수치심은 의식을 망친 상대에 대한 분노로 치닫고 그렇게 그를 향해 돌진하게 되는 거죠.
- 와, 보고 싶어지는데요.
= 살인마를 또 하라고요, (손사래를 치며) 아우…. 기사에 그렇게 났잖아요, (하)정우와 저의 ‘나쁜놈들’ 공동 출연에 대해 ‘국민적 살인마의 만남’이라고요. 저야 ‘악마를 보았다’도 그렇지만 ‘올드 보이’도 셌고요, 정우도 ‘추격자’가 굉장했고요. 그래도 둘 다 다른 연기도 많이 했는데, 살인마 연기는 여운이 깊게 남나 봐요. 다시는 살인자 안 한다고는 못하지만, 작품이 좋으면 또 해야겠지만, 우선은 살인마 이미지를 지워야 할 것 같아요.
- 특별히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 멜로를 하고 싶어요. 젊은 배우들 로맨틱 코미디도 좋지만, 이 나이쯤 돼서 보여 줄 수 있는 골 깊은 멜로도 있잖아요. ‘파이란’도 하고 했지만, 지금에서야 가능한 멜로 연기가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관객 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네요.
‘나쁜놈들’의 또 다른 축, 부산 지역 넘버원 조직폭력배 보스 최형배를 연기한 하정우는 곧바로 오는 29일 개봉하는 ‘러브 픽션’을 통해 사랑에 목매는 쪼잔한 남자로 돌아온다. 보통 시민도 깡패도 아닌 ‘반달’ 최익현을 실감나게 연기한 배우 최민식이 차곡차곡 쌓아 온 시간의 켜를 고스란히 담아 전해 줄 사랑이야기를 기다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