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쿠키 영화] 문득 들려오는 노랫소리 혹은 사진 한 장에 ‘반짝’하며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돌게 하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서툴고 순수해서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첫사랑을 담은 영화가 탄생했다.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제작 명필름)이다.

영화는 애틋한 기억으로 연결돼 있는 승민과 서연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풋풋한 대학교 시절 건축학개론 수업을 함께 들었던 두 사람. 건축학도 승민은 먼 미래에 서연을 위한 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서연은 15년이 지난 후 승민 앞에 불쑥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승민은 자신의 이름을 건 첫 건축물로 서연을 위한 집을 설계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벽돌을 하나씩 올리듯 옛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나간다.

영화는 스무 살 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구조로, 2인 1역 캐스팅 조합을 선보인다. 사랑에 서툰 스무 살 승민은 이제훈이, 현재의 승민은 엄태웅이 연기한다. 승민의 첫사랑 서연은 수지와 한가인이 맡아 풋풋한 설렘과 아련함으로 각기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오가며 진행되는 장면들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을뿐더러, 연결고리가 탄탄해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관객들을 이끈다. 또 끊임없이 거론되는 추억의 물건(삐삐, 헤어무스, 하드 1기가의 위용 등)들과 주조연들의 재치 있는 입담은 추억과 더불어 즐거움도 안겨준다.

큰 갈등 없이 과거의 기억들을 되짚어가지만 그 안에서 묘한 떨림과 설렘을 발견할 수 있다. 감정표현이 서툴러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힘겨워하는 모습, 팔목 때리기 놀이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해하는 장면. 또 작은 오해로 멀어져야만 했던 진통의 순간 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인물들의 감정을 쌓아가는 섬세한 감정묘사가 뛰어나,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승민과 서연에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주목할 것은 승민과 서연의 15년 전 첫사랑의 추억을 관객들에게 아련하게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90년대 중반 유행했던, 사랑을 테마로 한 음악들이 주효하게 울려 퍼진다는 점이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015B의 ‘신인류의 사랑’은 시대적 배경을 설명함과 동시에 이들의 심정 변화를 전체 혹은 일부 대변해주기도 한다. 특히 영화 엔딩 장면에도 등장하는 ‘기억의 습작’은 영화의 여운을 더 강하게 각인시킨다.

“누군가의 기억을 뜨겁게 관통하는 감성적 영화가 될 것”이라는 이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가슴 깊은 곳에 고이 접어둔 기억을 꺼내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영화를 즐기는 두 가지 팁을 거론한다면, 첫째로 승민의 친구로 등장하는 조정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시작 얼마 후, 그의 등장만으로도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미 뮤지컬계에서는 스타로 자리 잡은 조정석은 첫 스크린 데뷔작인 ‘건축학개론’을 통해 충무로 블루칩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둘째로는 ‘기억의 습작’이 흐르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자리를 뜨지 마라.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 자리를 뜨기 쉽지 않지만 극장 안 웅장한 스피커로 울려퍼지는 ‘기억의 습작’을 추억 에 잠겨 들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니면서 이 노래를 불러봤을 세대라면 영화의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힘들고 지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첫사랑의 기억으로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영화 ‘건축학개론’은 오는 22일 개봉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