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리뷰] ‘헝거게임’, 재미있다고? 아니 슬프고 화나

[쿠키 리뷰] ‘헝거게임’, 재미있다고? 아니 슬프고 화나

기사승인 2012-04-03 07:59:01

[쿠키 영화] 서바이벌 쇼와 액션, 로맨스, 우정 등을 잘 버무렸지만, 실상은 너무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화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하 ‘헝거게임’)이 미국에서 2억 5103만 3000달러를 쓸어 담으며 2주 연속 흥행 성적 1위를 달린다는 소식은 꽤 흥미롭다.

‘헝거게임’속 판타지 세계는 현재 세계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엉터리 구조’와 비슷하다. 강대국과 약소국, 한 국가 내에서 나뉘는 계급 생성과 갈등 그리고 미디어가 정치와 결합됐을 때, 어떤 폐해가 일어나는지에 대해 은근히 내포해 보인다. 앞서 북미 지역에서 이 영화가 흥행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흥미롭다고 표현한 것이 이 때문이다. 이 같은 폐해가 사실상 내외부로 일어나는 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국가 판엠의 모습에 고스란히 미국을 투영시켜도 일면 고개가 끄덕일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 관객들이 이 영화에 환호하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12개 구역으로 이뤄진 독재국가 판엠은 체재를 유지하게 위해 ‘헝거게임’이라는 것을 만든다. 이는 과거 자신들에게 반발한 12개 구역을 통치하기 위함으로, 각 구역서 추첨으로 뽑힌 남녀 2명, 총 24명은 1년에 한번씩 이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이 게임의 우승자는 오로지 한명.

12개 구역의 모든 사람들은 생중계되는 이 게임을 의무적으로 시청해야만 한다. 판엠은 이를 통해 12개 구역 시민들에게 다시는 반란의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단단한 댐도 조그마한 구멍에서 무너지는 법. 광업이 주 산업인 12구역에서 어린 동생을 대신해 참가를 자원한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게임에 참여하면서 판엠 지배자들이 만든 시스템을 바꿔나간다. 급기야 캣니스 자체가 또한번 반란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지배자들이 느끼게 된다.

영화는 철저하게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보여준다. 판엠의 수도 캐피톨에 사는 지배층들은 단순히 화려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외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그냥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조니뎁이 연기한 모자장수 같은 느낌의 사람들이 좀더 화려하게 대거 등장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피지배층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 정도다. 지배층이 화려한 색상을 자랑했다면, 피지배층은 로빈후드에서 나올법한 옷차림에 회색 등 무채색으로 일관했다. 그 위에 우주선 비슷한 비행체가 날아다니는 것이 희한할 정도다.

여기에 이 피지배계층의 아이들이 펼치는 죽음의 게임이 지배계층에게는 일종의 방송용 오락 쇼로 비춰지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미디어를 통해 관음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트루먼쇼’를, 아이들이 생존을 위해 싸운다는 점에서는 ‘배틀 로얄’이 연상된다는 이들도 있지만, 여기에 이 아이들이 ‘살아있는’ 오락용 캐릭터로 인식된다는 점이 추가되는 순간 더 오싹함이 전해진다.

게임에 참가한 24명의 아이들은 곧 자신들의 지배계층의 쇼프로용 캐릭터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송에 나와서는 화려함을 뽐낸다. 이유는 단 하나. 화려하게 보이고 눈에 띄어야 스폰서가 붙고, 이들을 통해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살기 위해서 웃고 멋진 캐릭터로 분장까지 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보여주는 셈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로마시대의 검투사를 떠올리게 한다. 지배계층인 로마 시민들의 오락용으로 치부된 노예 검투사들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로만 시민들의 즐거움을 위해, 그것을 마치 명예인양 생각하고 싸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현대로 끌고 와서는 방송, 즉 미디어를 통해 권력층이 대중들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까지 보여준다. ‘헝거게임’은 캐피톨에 사는 이들에게는 즐거움이고 오락이지만, 동시에 이들이 타 구역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반면에 자신들의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피지배 구역의 사는 이들에게는 공포와 좌절, 무력함을 안겨준다.

물론 게임의 룰을 바꿔나가는 캣니스의 모습은 자신 위에 어떤 식으로든 지배계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희열을 안겨주면서 영화가 갖는 극적인 영웅 캐릭터를 완성해 나간다. 캣니스는 지배계층이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고, 도리어 공포와 좌절, 무력감을 안기기 위해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피지배계층을 선동하기까지 이르며, 지배계층에게 위협을 안겨준다.

많은 이들의 원작 소설에 대해 극찬한 이유가 어쩌면 판타지적인 요소보다는 이 같은 정치적이면서도 현실과 부합되는 사안들이 겹치기 때문이 아닐까 본다. 이런 ‘헝거게임’을 한국 팬들은 과연 어떻게 볼 것인지도 궁금하다.

총 4부작으로 구성된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오는 5일 개봉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트위터 @neocross96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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