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배우 김보정 “‘에쿠우스’ 노출 연기때 고민…눈물 흘려”

[쿠키人터뷰] 배우 김보정 “‘에쿠우스’ 노출 연기때 고민…눈물 흘려”

기사승인 2012-05-29 18:12:01

[인터뷰]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열전4’ 두 번째 작품인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인 이 연극은 1986년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법정에 선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고, 이탈리아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했다.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고 알려졌을 때, ‘연극열전’ 팬들의 관심을 우선 받은 이는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 역을 맡은 김영민과 여장남자 송 역을 맡은 김다현과 정동화였다. 극 중 내용이 한 남자와 여장남자의 사랑 그리고 그 안에서 동서양이 가지고 있는 이질감의 충돌과 혼란스러움이었기 때문에 김영민, 김다현, 정동화에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특히 여장남자를 연기해야 하는 김다현과 정동화의 변신은 포스터가 공개되면서부터 관심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연극은 이들 세 주연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분산됐다. 그 중 몸짓과 대사로 관객들에게 단연 임팩트(impact)있게 다가간 것은 르네와 소녀 역을 맡은 배우 김보정이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 중 막내지만, 비중은 남달랐다. 다른 배우들은 세 주연 배우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호흡을 맞추며 관객들에게 자신을 어필했다면, 김보정은 단 두 번의 등장에, 홀로 툭 떨어진 위치에서 홀로 대사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연습할 때 너무 힘들었죠.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의 선배들이 즐비하고 전 아직 25살 막내라는 것도 처음에는 부담이었는데, 다른 주변 인물들에 비해서 저만 독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었어요. 다른 분들은 두세 번 등장해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지만, 저는 한번에 확 끝내고 들어가야 하잖아요. 외도 상대로 등장할 때는 긴 독백까지 있는데, 연습 때 다 저만 보고 있으니까, 너무 부담되는 거에요. 제 역할이 등장하자마자 확 밀어부치고 들어가는데, 차라리 상대와 대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김보정은 극 중 두 개의 역할을 맡았다. 소녀로 등장해서는 르네의 판타지 여성을 표현했고, 르네 갈리마르의 외도의 대상인 르네로 등장해 성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짧고 굵은 역할이지만, 사실상 여장남자인 송과 대치되는 분위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성향이 다른 김다현과 정동화에 맞춰야 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공연날 누가 송 역할을 맡냐에 따라 김보정의 연기 스타일도 달라지는 셈이다.

“두 사람이 무대에 오르는 날 저를 비롯한 모든 배역들의 성향이 다 달라져요.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송이랑 다른 여자가 되어야 하죠. 다현 선배는 굉장히 조신하고 가만히 있는 편이니까, 제가 움직이기가 편해요. 제가 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여성을 보여주죠. 동화 선배는 조신하지 않아요. 경쾌한 느낌이 있고, 동작도 부드럽지 않아요. 동화 선배는 말이 빠른데, 다현 선배는 느려요. 그래서 다현 선배 할 때는 제가 빠르게, 동화 선배할 때는 제가 무용같이 부드럽게 가죠. 누가 나오냐에 따라 제 것을 다르게 가져가야 하죠.”

국민대학교 07학번인 김보정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다양한 무대 활동을 통해 연극계 사람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연극 ‘나처럼 해봐’로 대학로에 데뷔한 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연극 ‘산티아고 가는 길’ ‘꽃샘추위’ 등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그러나 김보정이 가장 강렬하게 연극 팬들에게 다가간 것은 2009년도 ‘연극열전’ 시리즈인 ‘에쿠우스’를 통해서였다. 당시 배우 박서연과 함께 여주인공 질 메이슨 역을 맡은 김보정은 파격적인 전라 연기를 선보였다. ‘에쿠우스’가 노출이 주(主)가 아닌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출연 배우들의 노출은 관심을 받았고, 그 중에서도 아직 대학생의 어린 나이였던 김보정의 연기는 눈길을 끌었다.

“사실 그 당시에 고민을 많이 했었죠. 오디션 때만 해도 전라(全裸)라고 안했고, 상의 탈의라고만 했었고, 합격하고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공연 2주 전에 전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굉장히 당황했죠. 그때 (더블캐스팅이었던) 서연 언니는 공동제작이었던 실험극단 단원이었기에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제가 조재현 연출과 언쟁 아닌 언쟁을 했어요. ‘대본에 둘이 알몸으로 돌아다닌다는 말이 있는데, 질이 벗으면 알랜도 벗겨라’라고 말했죠.(웃음) 조재현 연출도 ‘맞다’며, 같이 남재 배우들(류덕환, 정태우)을 설득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합의를 본 것이 여배우는 실루엣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고 남자는 엉덩이까지 가자는 것이었죠. 그 당시 정말 말이 많았어요. 한번은 공연 시작 2주 정도 지나서 배우석을 오픈 했는데, 그날 공연 후에 집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속상하다기보다는 기분이 묘했어요. 엉엉 울었죠. 영화 ‘은교’에서 김고은이 영화 보고 집에 가서 울었다는데, 그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딸의 입장에서 아무리 연극배우지만 부모님에게 자신의 노출 연기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은 일. ‘에쿠우스’ 첫 공연을 본 여동생은 “부모님이 보면 안 될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이번 연극 ‘엠. 버터플라이’ 출연을 결정하는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엠. 버터플라이’에서 심한 노출은 아니지만, 극중 르네의 판타지 속 여인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에쿠우스’때는 아버지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죠. 어머니는 전주 지방 공연때 보셨어요. 안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원래 ‘엠. 버터플라이’가 아니라, 연극 ‘너와 함께라면’ 이번 시즌에 들어가려 했는데, 피디님이 어차피 그 연극은 ‘연극열전’ 레퍼토리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것은 한번만 하는 작품이라고 대본을 주셨어요. 내용은 좋은데, 저에게 주어진 역할에 알몸을 무서워하지 않는 여자라고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해서 다 괜찮은데, 노출이 있으면 안하겠다고 말했죠. ‘연극열전’을 통해 두 번이나 노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김광보 연출님이 노출을 좋아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김 연출님이 전에 연출했던 ‘에쿠우스’에서도 거의 노출이 없었고요. 그래서 결심하고 들어갔죠.”

짧지만 굵고 다양한 무대에 오른 김보정은 최근 ‘엠. 버터플라이’에서는 색다른 경험까지 하고 있다. 바로 예상하지 못한 관객들의 반응이다. 극중 송이 여장남자에서 비로서 자신의 모습을 찾은 후, 법정에서 증언하는 장면이나, 김보정이 야한 대사를 할 때 관객들의 반응은 애초 배우들을 당황케 했다.

“관객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에 대해 일부러 유발하기 위해 넣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데, 원래 대본에 있는 내용이에요. 사실 연습할 때 저희는 그 장면에서 안 웃었거든요. 진지하고 증언하는 장면이라 빠져들기에, 웃기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첫 공연 때 그 장면(증언 장면)에서 빵 터진 거예요. 그래서 이게 웃긴 건가 싶기도 하고, 저희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했죠. 연출님은 아시고 계셨지만, 말을 안하신거죠. 또 제가 독백하는 장면에서도 처음에는 웃으시더니, 제가 다르게 해석하고 들어가니까 안 웃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또 제가 뭘 잘못 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웃음) 정말 관객들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직 관객들의 반응에 신기해하고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해 어느 작품에서든 막내에서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고 무게감 있는 작품에 잇따라 출연하며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는 김보정은 자신의 활동 영역에 대한 제약을 굳이 두지 않았다. 무대를 좋아하지만,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의 경험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스크린에서의 욕심은 있어요. 단순히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가 아니라, 제 연기를 다른 매체를 통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대학 때 선배들이 찍은 단편 영화에 잠깐 출연하기는 했지만, 아직 제대로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한 적은 없어요. 그게 저에게 맡는 것인지 아닌지 우선 부딪쳐 보고 싶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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