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리뷰] ‘도둑들’, 잊을 수 없는 김윤석의 ‘눈빛 수다’

[쿠키 리뷰] ‘도둑들’, 잊을 수 없는 김윤석의 ‘눈빛 수다’

기사승인 2012-08-20 12:38:01

[쿠키 영화] 영화 ‘도둑들’이 19일까지 1112만 7705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상망 기준)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실미도’(1108만 1000명)를 넘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5위에 이름을 올리게 한 관객 수로, 4위 ‘해운대’(1145만 3338명)와 3위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 6135명)의 자리도 머지않아 보인다.

‘아바타’ 도둑들?

개봉 4주차를 맞이한 지난 주말(8월 17~19일)에만 83만 5299명 관객의 선택을 받으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고수했고, 시장점유율도 1/4이 넘어서는 26.8%에 달했다. 흥행 기세가 이쯤 되니 욕심이 발한다. 관객 1301만 9740명의 ‘괴물’을 제치고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작에 오르는 정도를 넘어, 한국에서 개봉한 역대 영화 1위의 자리를 2009년 이래 3년째 지키고 있는 미국영화 ‘아바타’(1362만 4328명)에게서 찾아오고 싶다. 가능성이 현실로서의 미래가 될 것인가는 관객의 손에 달려 있다.

지난 주말 ‘도둑들’을 관람했다. 세 번째 관람이었지만 거짓말처럼, ‘앤드류’ 오달수의 농익은 코미디연기에 큰 웃음을 연이어 터뜨리고, ‘예니콜’ 전지현의 폼 나는 와이어 액션과 한층 자유로워진 발화를 구경하고, 사내 같은 정장을 입어도 감춰지지 않는 ‘팹시’ 김혜수의 섹시함과 자신을 뽐내기보다 작품에 대한 기여도를 생각한 탄탄한 연기에 눈을 맞추고, ‘뽀빠이’의 걸음걸이처럼 리듬감 있는 이정재의 연기와 초콜릿 복근 ‘잠파노’ 김수현의 어여쁜 질투와 도톰한 입술을 탐하고, 꿈 한 번 잘못 샀다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최고의 비극을 맞는 ‘씹던 껌’ 김해숙과 ‘첸’ 임달화의 은빛 사랑에 함께 가슴 아파했다.



역시 최고인 건 ‘마카오 박’ 김윤석이다. 힘을 쫙 뺀 듯 건조하게 던지는 말들, 한국과 중국의 아홉 도둑에게 각자의 미션을 지시하고 ‘도둑질’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진행을 맡았음에도 최대한 절제된 말수, 강약과 완급이 조절된 몸짓이 관객의 눈과 귀, 오감을 긴장케 한다. ‘마카오 박’에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부여하고, 절도사건 그 이상의 프로젝트를 꿈꾸는 ‘메타적 설계자’로서의 주도면밀함을 신뢰케 한다. 세상에 김윤석이 프리러닝 와이어 액션이라니,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들도 영화 말미 관객의 쾌감을 고조시킨다.

김윤석의 ‘눈빛 수다’, 눈여겨봐야 할 명연기

그리고 그보다 한 차원 위에, 김윤석의 ‘눈빛 수다’가 있다. 수다스러운 눈빛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눈빛 연기라 부르기에는 그 표현이 부족한 인상적 눈빛들, 절제한 말수와 감정을 아낀 건조한 말투에 담아내지 않은 ‘진짜’ 마음과 이야기들을 눈빛에 쏟아낸다. 어찌나 강렬한지 동공에 광채가 감돈다.

‘도둑들’에 김윤석이 남긴 잊을 수 없는, 강한 눈빛들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찰나와 찰나, 감정과 감정, 사건과 사건 사이에 놓여 있지만 몇 가지만 되짚어 볼까.

뽀빠이가 와이어를 잡고, 마카오 박과 팹시가 68kg의 금괴를 훔쳤다. 와이어를 타고 탈출하기 직전, 검은 모자 속 마카오 박의 눈빛이 빛난다. 키스를 예고하는 눈빛, 팹시는 눈빛만 받았을 뿐인데 마음을 열고 입술을 허락한다. 키스가 끝난 뒤 ‘책임질 거야?’ 묻는 팹시에게, ‘마음은 흔들린 사람이 잡아야지’ 말하며 태연하게 줄을 잡는 마카오 박의 눈은 야박한 말과는 달리 따뜻하게 빛난다. 긴 추락을 깊게 느끼게 하는, 팹시와 관객의 마음을 한없이 공중으로 띄워 올리는 눈빛이다.

5단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순간순간, 무섭도록 다른 눈빛을 보이는 장면도 있다. 마카오 박의 주재 아래 중국과 한국의 도둑들이 한자리에 모인 중국음식점. 서로를 인사시키는 그때, 뽀빠이가 따로 모신 두 분의 인사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마카오 박의 눈빛이 냉정하게 굳는다. 별실의 문이 열리고 씹던 껌을 바라보는 박의 눈빛에는 연장자에 대한 예의와 실력에 대한 우려 등이 교차한다, ‘술은 끊으셨고?’. 이어 고개를 내미는 팹시, 박의 눈빛은 요청한 멤버 외의 인사를 멋대로 데려온 뽀빠이를 향할 때보다 더욱 차가워지더니 이내 흔들린다. 마카오 박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여자 팹시, 다시 냉정함을 찾고 무섭게 굳어지는 눈빛, 뽀빠이에게 ‘얘기 좀 할까’.

자신을 죽이려는 중국 장물아비 웨이홍 일당의 끈질긴 추적을 물리치고 구사일생 부산항에 들어선 마카오 박. 성큼성큼 대합실을 걸어가는 그의 옆모습, 누군가를 본 것 같다는 의구심이 옆얼굴로 살짝 보이는 눈빛으로도 느껴진다. 이내 고개를 돌리는 박,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의 눈빛은 팹시로 인해서다. 기대보다 아니 계획보다 조금 빨리 만나긴 했지만, 난감함보다는 수용의 뜻을 눈빛에 담으며 그녀에게 다가서는 박. 그런데 팹시 뒤에 웨이홍이 있다. 주변의 기물을 이용해 급히 모습을 감추는데, 어느새 홍콩 형사 쥴리(이신제)가 팹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내 코가 석자인 상황, 잠시 갈등하던 마카오박의 눈빛은 단호함을 띄고 쥴리가 들으라는 듯, 잔챙이보다는 대어를 낚으라는 듯 크게 외친다. ‘웨이홍~!’.

김윤석의 멋진 ‘더블 플레이’…마카오 박 안에 박도현이 보인다

김윤석은 영화 ‘도둑들’에서 ‘더블 플레이’를 펼친다. 마카오 도박장에서 80만 원으로 3일 만에 80억 원을 따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80억 원을 날리고도 눈 하나 까딱 않는 희대의 도박꾼 ‘마카오 박’이자, 사람으로서의 순정한 마음을 잃지 않고 인생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 ‘박도현’이다. 그리고 때로는 마카오 박답게, 때로는 박도현이고자 소더비 경매 평가액 350억 원에 달하는 ‘황금의 눈물’ 탈취 대작전을 펼친다.

영화 속에서 마카오 박이 거울 앞에 앉는 순간이 있다. 마치 연극이 끝난 뒤 짙은 분장을 지우는 배우처럼 그렇게 거울을 마주한다. 그 때 김윤석이 본 것은 누구일까.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온 마카오 박일까? 목적을 잊지 않으려 의지를 다지는 본연의 박도현일까? 연기를 하는 하고 있는 자신, 배우 김윤석일까?

지워지지 않는 물음처럼, 영화의 대미 또한 잊을 수 없는 김윤석의 눈빛으로 빛난다. 어둑한 복도, 방문을 열자 옅은 빛이 새어 나온다. 방안으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보는 남자, 그 남자의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수십 수백 가지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면서도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한 눈빛. 영화 ‘남쪽으로 튀어’ 촬영이 한창이라는 남쪽 끝 먼 바다 위의 섬으로 그를 찾아가고 싶은 이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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