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환하고 밝은 미소. 발랄한 성격에 주변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배우. 바로 한효주다. 시트콤 ‘논스톱’ 드라마 ‘찬란한 유산’ ‘동이’ 등의 작품을 통해 밝고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줬다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우아하지만 슬픔을 간직한 중전을 맡아 깊은 내면 연기를 펼친다.
실제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그는 스스로를 ‘하얀색’에 비유했다. 빨간 작품을 만나면 빨갛게 되고 파란 작품을 만나면 파랗게 변하는. 그러나 사람으로 치면 ‘다중인격’이라며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 홍보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효주를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던 늦은 오후 인터뷰 장소에는 까만 초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제가 직접 산 초예요. 비도 오고 흐린 날에는 이런 게 필요하죠”라며 작은 초 하나에도 행복해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잘 될 것이라는 확신 있었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일기 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이르라’는 한 줄의 글귀에서 시작된다. 광해군 재위 시절 사라진 15일간의 기록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
이병헌은 첫 사극이자, 왕 광해와 천민 하선을 오가는 1인 2역 연기로 주목받았고 개봉 20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효주는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두 명의 왕이 사랑한 여자 중전으로 분해 화사함과 연민이 동시에 느껴지는 인물을 연기했다.
“원래 시나리오에도 출연 신이 적었어요. 그런데 작품이 정말 좋았고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꼭 출연하고 싶었죠. 메이크업도 안하고 의상도 간소한 새로운 모습의 중전이에요. 가장 담백하지만 위엄과 우아함을 간직한 캐릭터기에 정말 욕심났습니다.”
환한 미소가 누구보다 매력적인 한효주이지만 영화에서는 좀처럼 웃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그를 웃게 하기 위해 하선은 치아에 김을 붙이는 등 온갖 노력을 한다. 실제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제가 맡은 캐릭터가 중전이어서 그랬는지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더라고요(웃음). 저도 중전처럼 조용히 현장을 지켰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만든 거죠.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코믹한 신을 찍을 때면 서로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난리도 아니었어요. 저 역시 웃음을 참다 보니 목소리가 떨려서 NG를 많이 냈고요. 다시 생각해도 정말 즐거운 촬영이었어요.”
“다작이요? 퍼즐 맞추기 같아 즐거운 걸요”
올해 유난히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와 함께 영화 ‘반창꼬’를 촬영했고, 곧 영화 ‘감시’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지칠 법도 한데,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좋단다.
“지금은 무언가에 몰두해서 하나씩 쌓아 것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매번 똑같은 캐릭터를 맡는 게 아니라 늘 다른 인물을 연기하니까 그 안에서 또 다른 저를 발견하는 것도 신기하고요.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도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지니까 짐이 무겁긴 한데요, 아직까지는 힘든 것보다 재밌는 게 더 커요.”
한효주는 배우로서의 삶을 퍼즐에 비유했다. 큰 그림은 알고 있지만 하나하나의 조각을 찾아 끼워 맞추고 그런 과정이 진행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그림을 얻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새로운 캐릭터를 맡고 그에 맞는 제 모습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에요. 하지만 해내고 났을 때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죠. 요즘 드는 생각은 마치 퍼즐 맞추기 같다는 거예요. 작품들을 하나씩 모아 퍼즐을 맞춰가는 거죠. 힘든 점도 많겠지만 완성됐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얼마나 클까요(웃음).”
“배우로서 성장통 겪는 중…”
지난 2003년 16세에 미스빙그레 선발대회를 통해 얼굴을 알린 그는 어느덧 10년째 연예계에 몸담고 있다. 성격도 워낙 여리고 어린 나이에 데뷔하다 보니 잔 상처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점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진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양면성이 있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연스러워져야 하는데 저는 점점 더 숨고 싶어져요. 제 의도와 다르게 사람들이 해석하고 오해하는 것들이 익숙해지지 않아요. 더 두려워지고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성장통을 겪는 중이에요.”
밝고 붙임성 있어 보이지만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란다. 밝고 유쾌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 숨겨진 고독함을 갖고 있었다.
“성격이 수시로 변해요. 모두 그렇겠지만 그 폭이 조금 큰 것 같아요. 분위기 영향도 많이 받고요. 제 주장을 강하게 하는 편은 아니고, 늘 열어두는 편이에요. 작품을 안 할 때는 무(無)에 가까운 편이죠. 그런데 가끔씩 아주 강한 우울함이 마음을 강타하곤 해요. 그럴 때면 모든 것을 멈추고 일단 잠을 자요. 자고 난 뒤 다시 생각하죠.”
연기 외에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묻자 “잠잘 때 꿈꾸는 것”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꿈꾸는 것을 좋아하고 기분 좋은 꿈은 기록해 둔다고.
“잠을 오래 자다 보면 다이나믹한 꿈을 꾸잖아요. 저는 그게 정말 좋아요. 재밌는 꿈을 꾸면 꼭 기록해두고요. 전 꿈을 영화처럼 꾸거든요. 꿈을 꾸면서도 ‘이건 영화화해야 돼’라는 생각을 해요.”
꿈 이야기가 나오자 똘망똘망한 눈을 크게 뜨며 아이처럼 행복해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이 무엇인지 묻자 부끄러워하며 이야기를 풀어놨다.
“일본배우 아오이 유우와 우에노주리가 나왔어요.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사고로 아오이 유우가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 후에 둘 사이에 미묘한 우정이 생기는 내용인데요. 캐스팅이 참 화려하죠? 그래도 꿈속에서는 뭐든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웃음).”
마지막으로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지 묻자 ‘어마어마한 XX같아’라며 영화 ‘도둑들’의 전지현을 흉내 내보였다.
“‘도둑들’에서 전지현 씨가 맡은 예니콜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반창꼬’에서도 욕을 하긴 하는데요… 아직 못 해본 캐릭터가 많기에 여러 가지 인물을 연기하고 싶습니다. ‘한효주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어?’라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배우 한효주의 성장해가는 모습 기대해주세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