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장동건, 허진호 감독과 “우리 대표작 바꿀 때 됐다”

[쿠키人터뷰] 장동건, 허진호 감독과 “우리 대표작 바꿀 때 됐다”

기사승인 2012-10-04 12:36:01

[인터뷰] 연기보다 잘생긴 외모가 먼저 보여 되레 해가 된다던 장동건이 오롯이 연기력으로 스스로를 빛내며 ‘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한 영화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감독 김성수)였다. 불과 2년 뒤 유오성과 짝을 이룬 ‘친구’(2001·감독 곽경택)로 당시로서는 최고 기록인 전국 추산 818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고, 다시 2년 뒤 원빈과 형제로 등장한 ‘태극기 휘날리며’(2003·감독 강제규 감독)로 1174만 명의 선택 속에 다시 한 번 역대 최고 흥행작의 주인공이 됐다.

“언제 적 ‘친구’ ‘태극기…’인가요”

어느덧 그게 9년 전이다. 관객 수로 배우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배우였던 장동건이기에 그 뒤 이렇다할 흥행대작이 없다는 사실이나 지난해 강제규 감독과 다시 만나 숱한 땀을 쏟은 ‘마이 웨이’가 거둔 214만 관객이라는 수치는 아쉽다.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배우 장동건에게 신작 ‘위험한 관계’(감독 허진호)에 대해 거는 기대를 물었다. 새로운 대표작이 되기를 바라냐는 질문과 함께. 다소 아픈 질문일 수 있는데, 사람 좋기로 정평이 난 장동건은 웃음과 함께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안 그래도 허진호 감독님이랑 ‘우리가 대표작 바꿀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서로 언제 적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이냐,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 지겹지도 않느냐 하면서요. 당연히 새로운 대표작이 되기를 바라죠. 또 새로운 각오와 변화의 의미를 담아 선택한 작품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선 굵은 블록버스터 하다가 놓친 것들

변. 화. 라는 단어가 귀에 쏙 들어온다. “스스로 선이 굵고 거친 연기나 캐릭터를 원해 왔어요. 예 전에 찍은 ‘패자부활전’이나 ‘연풍연가’ 같은 영화가 TV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는 것들이었기에 보다 ‘영화적’인 것을 원했다고 할까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친구’나 ‘해안선’, ‘태극기 휘날리며’나 ‘태풍’이 다 그런 고민 속에서 선택했던 작품들이었어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나 ‘워리워스 웨이’도 같은 맥락이되 그동안 보여 드리지 않았던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택했던 거고요.”

짧지 않은 시간에 이뤄진, 적지 않은 수의 영화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철저하게 다듬어가는 배우 장동건이 보였다. 깊은 고민 속에서 택한 결론이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전략의 재정비가 필요해진 상황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선이 굵은 것들을 좇다 보니 자연스레 블록버스터에 출연하게 됐어요.” 그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한국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기획·제작하며 누가 장동건을 원하지 않았으랴. “그런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고 손익분기점이 높은 영화의 주인공을 맡고 보면,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흥행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되더라고요. 촬영할 당시에는 저도 몰랐어요. 제 연기만, 영화만 생각하며 임했다고 여겼는데 돌아보면 부담감이 있었고 그래서 보다 많은 관객이 납득할 만한 평균적 감정으로 연기를 했더라는 거죠.”

“관객 적더라도 섬세한 감성연기 하고파”

이야기는 점차 그가 새로이 중심을 잡은 ‘변화의 방향’으로 옮아갔다.

“적은 수의 관객이 보는 영화가 되더라도, 좀 더 깊고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전에는 배우로서, 남자로서 자신감이 없어 ‘할 수 있는 걸’ 했다면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거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안 될 것 같은 게 많았는데 마음에서 많은 걸 내려놓으니 ‘끌리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네요. 여타의 것들을 내려놓고 나에게 집중하자 마음먹으니 좋아요. 제게서 처음 보시는 모습들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고민과 다짐 속에 택한 것이 영화 ‘위험한 관계’였고,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었다. ‘위험한 관계’에서 장동건은 세상 여자는 누구라도 자신의 매력에 빠뜨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플레이보이 셰이판 역을 맡아 조각 같은 얼굴과 서양문물이 밀려들기 시작한 1930년대 상하이의 멋쟁이 신사 패션을 자랑한다. 콧대 높던 카사노바가 예상치 못한 여인에 빠져 허우적대다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내면의 연기도 일품이다.

“결과적으로 ‘신사의 품격’보다 나중 보시게 됐지만, ‘위험한 관계’를 하고 다시 한 번 플레이보이 김도진 역을 맡았던 건 국내 분들께는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2000) 이후 멜로 연기를 보여 드린 적이 없었다 싶어서였어요. 또 셰이판에게 유머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극적 멜로의 주인공이잖아요. 김도진은 까칠한 듯해도 따뜻한 인물이고 드라마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가볍고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서 ‘역시 잘했다’ 생각하고 있고요.”

방향을 바꾸니 흥행이 온다

영화 ‘위험한 관계’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먼저 중국에서 흥행의 시동을 걸었다. 개봉 일, 배우 양가휘가 감독으로 나선 블록버스터 ‘태극’, 국내에는 ‘조조-황제의 반란’으로 소개될 주윤발 주연의 ‘동작대’를 제치고 박스 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대작들이 있어 상영관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거둔 성적이라 더 뜻 깊게 느껴집니다. 저도 아직 현지 관객 분들의 반응이나 분위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지만요. 국내에서도 많이들 좋아해 주시면 기쁘겠네요.”

중국 영화와 한국 드라마에서의 연이은 플레이보이 변신. 일단 배우 장동건이 보여 줄 새로운 변화의 모습은 그동안 짙은 분장과 거친 말투 속에 감춰둔 미모와 부드러움을 십분 살려 감성 멜로의 화신이 되는 것일까.

“홍상수 감독과 영화하고 싶다”

“멜로 좋아요. 그렇지만 어떤 제한을 두는 건 아니에요. 이번에 허진호 감독님과의 작업이 그러했듯 캐릭터에 대해 영화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며 디테일한 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 생각해 왔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배우 의견을 물어 주고 들어 주는 작업 현장도 참 좋더라고요. 배우로서 의견을 개진한다는 게 감독의 영화인 것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할까요. 다른 의미에서,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도 욕심이 나요. 저의 새로운 면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홍 감독님 그동안 해 오신 것을 볼 때, 기대가 됩니다.”

적은 관객이 보더라도 섬세한 감성을 연기하고 싶다는 열망,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는 욕구. 홍상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게 꽤나 유효할 듯싶은데, 그 길이 열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토록 변화를 꿈꾸고 준비하고 실천 중임에도 장동건은 인터뷰 말미 영화 ‘위험한 관계’에 대해 “허진호의 변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자신으로서는 변화의 시작점이었지만, 뭇 여성의 마음을 훔치는 장동건 식 옴므 파탈 연기를 국내 관객들로서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통해 살짝 맛봤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비쳤다.

감독 허진호의 변신 ‘위험한 관계’

“저도 저지만 허 감독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시게 될 거예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보여 준 허진호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보다 농익어진 심리와 관계에 대한 표현이 신선함을 선사합니다. 허진호 감독의 새로운 대표작이 되리라 믿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 dunastar@kmib.co.kr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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