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소아과와 정신과에 이어 산부인과가 최근 전문과목 명칭 변경을 공식 선언했다. 산부인과학회는 환자들의 진료 접근성을 높이고, 진료과목 저항감에 따른 진료 문턱을 낮추기 위해 ‘여성의학과’로의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일반 국민들이 산부인과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단어는 임신과 분만, 출산, 자궁, 여성암 등이며, 이러한 단어들이 여성들로부터 심리적 거리감을 줘 병원을 쉽게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산부인과학회 측은 명칭 변경 후에도 기존 분만업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명칭 변경은 임신과 분만 진료를 포함한 피부 관리, 비만, 여성 고혈압환자, 폐경기 여성 등의 내과 질환 등을 조금 더 합법적으로 진료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문과목 명칭 변경은 산부인과에 이어 가정의학과에서도 이슈가 됐다. 지난 9월말 대한가정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학회는 통합건강의학과, 가정건강의학과, 가족건강의학과 등의 명칭 변경을 놓고 설문을 실시했다. 가정의학회 역시 가정의학과 진료영역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 부족을 근거로 대국민 설문까지 실시해 명칭변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과목 명칭 바꾸고 환자 확대 노리는 의사들
하지만 국민을 위한 선택이라는 학회 입장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이번 명칭 변경 이면에는 현재 어려움에 처한 산부인과 진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산부인과라는 명칭을 지키는 의료기관은 손에 꼽는다. ‘여성의원’, ‘여성병원’, 혹은 ‘여성클리닉’이란 이름으로 진료를 하는 산부인과 병원과 의원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을 위해 진료과 명칭을 바꾼다기보다 저출산에 따른 어려운 산부인과의 진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진료 영역을 여성질환으로 좀 더 넓혀보자는 목적이 크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 다른 진료과 의사들이 ‘여성과 관련된 모든 질환을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진료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가 된다. 결국 대다수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성형, 비만, 피부에 관한 진료를 겸하는 상황에서 명칭 변경은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한 채 이러한 진료를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명칭 변경이 의료 위기 타파의 대안될 수 없어
명칭변경은 이전에도 있었다. 임상병리과는 진단검사의학과로, 진단방사선과는 영상의학과로, 정신과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소아과는 소아청소년과로, 산업의학과는 직업환경의학과 등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경은 나름의 이유와 국민적 합의가 존재한다.
산업의학과의 경우 기존 명칭이 산업 현장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었지만 직업환경의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직업에 따른 유해요인을 연구한다는 점의 차이라는 것이다. 정신과의 전문과목 명칭 변경은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바꾸고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 소아과의 경우도 영유아기만 진료한다는 인식을 뛰어넘어 성장기 청소년들도 전문 진료를 해야 한다는 진료영역 확대 주장이 국민들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영상의학과도 기존 방사선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고 질환을 진단하는 진료과로서 국민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지구 위해 명칭 변경이 이뤄졌다.
이러한 점에서 산부인과와 가정의학과 모두 진료과목 변경이 개원가의 어려운 현실을 타계하는 대안으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의구심부터 해소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료과목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해당 전문과의 진료 본질이 흐려질 수는 없다. 여전히 임신 진료와 분만은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몫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뇨기과, 가정의학과까지 명칭을 변경한다면 대한민국 전문 진료과목의 명칭이 환자 접근성 확대를 이유로 모두 변경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일부 의료계의 지적처럼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에서 국민들과 소통을 통해 전문과목 명칭 변경을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성지 기자 ohapp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