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칼럼-장미인애]④ ‘보고싶다’ 촬영하며 첫사랑 떠올린 이유는…

[스타 칼럼-장미인애]④ ‘보고싶다’ 촬영하며 첫사랑 떠올린 이유는…

기사승인 2012-12-13 14:48:00

<책을 내거나 전문적인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 친분이 있던 작가 원태연이 그의 글을 읽고 “이렇게 글을 잘 쓸 줄 몰랐다”며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데뷔 10년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배우 장미인애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 주.>

은주를 만나고 촬영에 들어갔다.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 모든 것이 친숙한 상황이다. 은주의 집과 같은 상황이기도 하다. 엄마 그리고 오빠 같은 정우 그리고 나 우리 셋은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가장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타인이다. 서로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가지고 그 기억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수연이(윤은혜 분)를 구하려다 돌아가셨다. 수연의 어머니는 잘 살기 위해 우리 집에 왔지만 딸을 잃었고 정우는 첫사랑을 잃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아픈 기억을 공유하는 세 사람이 그렇게 부대끼며 살고 있다. 나는 그 집의 주인이고 모두 나의 집에서 수연을 기억 해내고 있다. 그런데 집이 얼마나 훈훈한지 모른다. 그리고 아픈 사랑을 이야기 하는 드라마지만 촬영장은 그 어떤 곳 보다 따뜻하다. 함께 있어 너무 행복하다.

그렇게 첫 설렘 나의 첫사랑 같은 ‘보고 싶다’의 첫 촬영이 시작됐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극 중 은주처럼 첫눈에 보고 반한 첫사랑이 있지는 않지만 나에게도 설레는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데 그 증상은 다음과 같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배가 아프고 어떤 이는 속이 메슥거린다고 한다. 사실 커피로 인한 나의 첫사랑의 추억은 뇌에서 반응하기보다 위 사람들처럼 신체적 반작용처럼 반응하여 떠올려진다.

스물 셋. “커피 제대로 마실 줄 모르는 구나”라고 말을 건네주던 그가 내 맘에 제대로 들어왔던 그 시절 그는 정말 제대로 커피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바보 같은 떨림. 나답지 않은 사랑이긴 했지만 정우(박유천 분)의 “시작도 못해봤어…그래서 찾는거야” 라는 대사처럼 마음에 담아 두기 보다는 그냥 나 홀로 커피를 제대로 마실 줄 알게 되고 조건 반사로 그를 추억하는 데 그친 그 정도의 기억이었다.

누구나 그런 사랑이 있다. 그런 기억이 있다. 나를 설레게 하고 떨리게 하는 그런 향기가 있다. 그리고 그런 날씨가 있다.

첫눈이 내린다. 이런 날씨야 말로 첫사랑을 생각하기에 가장 적당한 날씨다. 나는 나의 첫사랑 대신 드라마의 은주를 생각하며 촬영장에 나섰다. 극 중 은주는 아직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낼 시간이 없었지만 나는 대본 너머로 보이는 작가님이 말하고자 하는 은주가 마냥 아프고 또 예쁘다.

은주는 술꾼이다. 수연 엄마는 대사를 통해 은주가 지독한 술꾼임을 알린 바 있다. 그리고 나의 첫 등장 또한 술이 떡이 된 모습이었다. 사실 술기운이 없다면 그 모든 상황을 버텨내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다. 밝고 명랑한 은주지만 은주에게는 산 같은 아빠였다. 아빠가 없다는 걸 은주는 술과 함께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촬영은 시작 됐고, 정우와 엄마는 나를 보며 ‘이 골칫덩이를 어찌하나’하는 표정이고 카메라 렌즈 밖 감독님도 웃고는 계시지만 “아, 이 녀석 할리우드 배우 저리 가라로 온 몸을 던지는구나”라고 말씀 하신다. 은주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다 나타나는 상황이 언제나 극적이다 보니 은주의 신은 언제나 처절하고 가끔은 어색하다. 그러면 감독님의 핀잔이 오는데 은주처럼 나는 그것 또한 마냥 감사하다.

이렇게 내가 내 삶으로 받아들인 엄마, 정우인데 둘 다 요즘 너무 슬퍼 보여서 은주도 나도 슬프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겨울비가 내렸고 나 또한 긴장감으로 가득 했던 촬영장을 뒤로 한 채 내일은 더 열심히 연기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자동차 도로에는 겨울비로 쓸쓸한 마음이 가득 이더니 시내로 들어오니 크리스마스 불빛들로 가득하다. 은주처럼 나는 꽤나 외로운 연말을 보낼 것 같은데 행복한 크리스마스로 온 세상이 들떠 있다. 생각해도 울컥한 외로운 하루를 마감하는 것 같다. 나도 은주처럼 오늘 와인 한잔 따라 마시며 울적한 마음 달래야겠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이 있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난 정말 유죄구나, 하는 생각에 젖었다. 아빠, 얼른 다시 일어나 나 좀 잡아가세요…나 유죄야,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⑤부에서 이어집니다.

글=장미인애

정리=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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