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2012년의 예능은 흑역사에 가깝다. 방송사 노조의 파업 영향이다. MBC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주장하며 사상 최장인 170일간 총파업했고, KBS는 김인규 전 사장 퇴진과 공정 보도를 요구하며 94일 동안 파업을 이어갔다.
방송사가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맞은 곳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드라마나 교양과 달리, 예능 프로그램은 기존 인력이 대거 이탈할 경우 전반적인 제작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예능 프로그램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편집을 해당 PD만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 인력 투입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MBC와 KBS의 많은 예능 PD들이 파업에 동참했고 이는 곧 프로그램의 파행으로 이어졌다. MBC 인기 프로인 ‘무한도전’이 24주간 결방됐고, KBS ‘1박2일’ 등도 한동안 시청자를 만나지 못했다.
반면, SBS는 ‘런닝맨’과 ‘정글의 법칙’,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 캠프’) 등으로 MBC와 KBS가 파업으로 생긴 공백기 동안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데 성공했다.
또한 낮은 시청률로 인한 잇따른 예능 프로그램의 폐지와, 정상에 군림하던 강호동의 공백과 컴백이 공존하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냈다.
◇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이 하나 둘 사라졌다. MBC는 올해 파업으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으며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없앴다. ‘실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가 대표적이다. 한 해 동안 ‘룰루랄라’와 ‘꿈엔들’ ‘남심여심’ ‘무한걸스’ ‘승부의 신’ 등의 코너가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 애국가 시청률과 맞먹는 1~3%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인 탓이 컸다.
MBC의 장수 버라이어티 토크쇼 ‘놀러와’도 이러한 ‘시청률 칼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지난 2004년 5월 출발한 ‘놀러와’는 유재석과 김원희 두 MC를 앞세워 한때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KBS ‘안녕하세요’와 SBS ‘힐링캠프’ 등의 경쟁 프로그램에 밀려 시청률이 한 자리대로 떨어지더니, 올해 들어 파업 등의 영향으로 5% 대에 머물렀다. 이를 타개하고자 ‘세시봉 4인방’ 특집 등으로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이끈 신정수 PD가 컴백해 ‘트루맨쇼’ 등의 새 코너를 신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2년 만인 지난해 12월 MBC ‘토크 콘서트’를 통해 야심차게 컴백한 주병진은 5개월 만에 자취를 감췄다. ‘토크 콘서트’는 기존의 버라이어티 토크쇼와는 다른 정통 토크쇼를 지향했지만,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평을 들으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주병진은 낮은 시청률로 인해 자진하차해야 했다.
‘주병진의 토크콘서트’의 후속 프로그램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정보석의 주얼리하우스’와 ‘정글러브’, ‘신동엽의 게스트하우스’ 등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MBC뿐 아니라 KBS ‘청춘불패2’는 이영자를 MC로 투입하고 포맷이나 구성 등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결국 폐지 수순을 밟게 됐고, 고현정의 이름을 내건 SBS ‘고쇼(GO Show)’는 차별화된 점을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부진의 원인으로 꼽혀 12월 막을 내리게 됐다.
◇ 한계 보여준 시즌제…참신한 아이디어 없나
예능 프로그램의 시즌제로 인한 반복은 피로감을 안겨줬다. SBS ‘K팝스타2’와 MBC ‘위대한 탄생3’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 MBC ‘나는 가수다’와 KBS ‘1박2일’도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지난해 3월, 실력파 가수들의 서바이벌 무대라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첫 선을 보인 ‘나가수’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를 몰고 왔다. 가창력 있는 가수들의 재조명과 추억의 명곡들의 연이은 리메이크 열풍을 주도하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 속에 가요계와 음반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김범수와 김연우, 임재범, 정엽 등의 가수들이 대중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했었다.
그러나 올해 방송된 시즌2는 시청률의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할 만큼 지난해 예능프로그램의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나가수’지만 새로 투입된 가수들의 약진과 식상한 진행 방식으로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1박2일’은 알려지지 않은 국내 여행지로 떠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촬영지 마다 인기를 끌며 관광객들의 문의와 방문이 이어지는 등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 2월 시즌2는 기존의 이수근과 엄태웅, 김종민을 비롯 배우 김승우, 차태현, 주원, 가수 성시경이 의기투합하며 야심찬 시작을 알렸다.
처음에는 서먹하게 비춰지던 멤버들도 점차 각자 고유의 매력을 드러내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시청률 또한 20%에 육박하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기존의 포맷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에 좀 더 변화가 필요하다는 각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 진솔한 토크쇼…초호화 게스트도 눈길
폭로와 비방으로 얼룩지며 불명예를 얻었던 지상파 방송의 토크쇼는 지난해부터 정통 토크쇼에 초점을 맞추면 자체 정화를 시도하는 분위기다. 화제보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일반인들의 참여의 유도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앞세웠다.
‘무릎팍 도사’의 강호동이 자리를 비운 사이, ‘힐링 캠프’는 진솔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토크쇼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관록의 개그맨 이경규를 중심으로, 배우 한혜진의 상큼발랄한 매력 그리고 김제동의 입담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해냈다.
‘착한 방송’을 내세운 ‘힐링캠프’는 출연한 게스트들의 진솔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안겼다. 마치 MT가는 분위기를 형성해 편안함을 유도해내,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특히 초호화 게스트들의 출연은 ‘힐링캠프’만의 월등한 섭외력을 보여주고 있다. 양현석과 고소영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들과 정치인 문재인과 박근혜, 안철수 등도 출연해 ‘힐링캠프’를 빛냈다.
핫이슈의 게스트를 초대해 즐거움과 진솔함을 이끌어내는 KBS ‘승승장구’는 정통 토크 프로그램을 지향했고, 일반인의 사연을 받아 고민을 해결해주는 KBS ‘안녕하세요’ 또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큰 사랑을 받았다.
강호동의 컴백으로 MBC ‘무릎팍 도사’는 예년의 인기를 되찾겠다는 포부다. 강호동이 지난 9월 최근 불거진 세금 ‘과소납부’ 논란과 관련해 연예계 잠정 은퇴를 선언했고, 현재는 ‘무릎팍 도사’와 SBS ‘스타킹’에 다시 돌아온 상태다. 다시 막을 올린 ‘무릎팍 도사’의 첫 회 게스트는 정우성으로, 이지아와의 만남과 결별까지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놔 화제를 모았다.
◇ ‘개그콘서트’의 전성시대는 계속된다
최장수 개그 프로그램인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는 올해도 계속됐다. 장수 비결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빚어진 다양한 코너들이 속속 시청자들을 찾고, 대중과의 코드가 잘 통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올해도 큰 인기와 이슈를 가져오며 각종 유행어를 대거 양산했다.
‘사마귀 유치원’은 조지훈의 ‘이~뻐’라는 유행어를 만들었고,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김원효의 ‘안돼’와 김준현의 ‘고뤠’가 인기를 모았다. 김준현은 ‘네가지’ 코너에서 ‘마음만은 홀쭉하다’라는 유행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애정남’과 중독성이 있는 멜로디와 운율이 특징인 ‘감사합니다’가 사랑을 받은 것에 이어 ‘꺾기도’는 ‘감사합니다람쥐’ 혹은 ‘안녀하십니까불이’ 등 다소 유치한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유행어를 통해 어린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장수 코너 ‘불편한 진실’ 속 황현희의 ‘왜 이러는걸까요?’ 또한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고, 꽃거지가 등장하는 ‘거지의 품격’에서는 ‘궁금하면 500원’을, ‘멘붕스쿨’의 갸루상 박성호는 ‘∼가 아니무니다’라는 발언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또한 ‘정여사’에서는 ‘비싸도 너무 비싸’ ‘브라우니 물어’ 등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여느 해보다 아쉬움도 많았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처음을 PPL(간접광고)을 도입해 눈총을 사는가 하면, 지나친 게스트의 등장으로 ‘주객전도’라는 비판도 받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