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박진영은 국내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1994년 ‘날 떠나지마’로 혜성 같이 데뷔해 발표하는 앨범 마다 가요계 정상을 차지한 인기 가수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대형 연예기획사 JYP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으로 그룹 원더걸스와 2PM 등 수많은 아이돌 가수를 만든 마이더스의 손이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과 YG 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이 프로듀서 역할에 만족하는 것과는 달리 박진영은 지난해에도 미니 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현직 가수에 대한 왕성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KBS 2TV ‘드림 하이’와 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에서 배우로 변신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금의 박진영을 만들어 준 일등공신은 노력하는 싱어 송 라이터(Singer Song-writer) 이미지다. 애초 그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도, 작곡가도 아닌 댄서에 가까운 댄스 가수였다. 뮤지션 박진영의 탄생은 2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데뷔 앨범의 ‘날 떠나지마(편곡)’와 ‘너의 뒤에서(작곡 및 편곡)’는 국내 유명 작곡가인 김형석의 작품이다. 박진영은 김형석을 음악적인 스승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훗날 그는 김형석과 김현철 등의 영향으로 신시사이저(Synthesizer)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작곡을 공부했다고 회고한다.
박진영은 2집으로 댄스 가수에서 싱어 송 라이터로 일생일대의 전환을 이룬다. 당시 많은 가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의 벽을 뚫지 못하고 좌절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직접 작사, 작곡한 ‘청혼가’로 대박을 터뜨렸다. 톡톡 튀는 가사와 빼어난 안무 실력이 이미 검증받은 상태에서 뮤지션 이미지까지 갖게 된 박진영은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지금은 사라진 삼성뮤직이 일찌감치 그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거액으로 앨범 계약을 맺을 정도였다. 그렇게 발표한 3집의 ‘그녀는 예뻤다’와 4집의 ‘허니’(Honey) 등은 복고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박진영을 돈방석에 앉게 만들었다. 5집과 6집이 다소 부진했지만 JYP를 창업하고 프로듀서로 변신해 아이돌 그룹을 성공시켰기에 충분히 상쇄가 가능했다. 그가 작곡한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는 국민 가요 반열에 올랐다.
박진영은 1996년 본격 미국 진출을 선언하며 발표한 영어 앨범의 부진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실패를 겪지 않았다. 남녀 관계에 대한 솔직하고 대담한 발언, 개인적인 스캔들 정도로 구설수에 오른 정도다. 미국을 비롯한 최신 월드 팝 시장의 흐름을 발빠르게 파착하는 그의 작곡 능력은 특유의 감각적인 작사 실력과 만나 싱어 송 라이터 입지를 공고하게 해 준다. 솔직한 대화체 형식을 지향하는 가사는 단순하지만 귓가를 잡아끄는 멜로디 라인과 만나 빛을 발한다. 그가 특출한 보컬 능력이 없이도 가요계 정상으로 군림했던 결정적인 이유다. 이밖에도 수많은 사회적인 발언과 화려한 달변, 무대에서 연출하는 도발적인 안무 등도 그를 만능 엔터테이너로 만든 중요한 요소다.
댄서에서 가수, 싱어 송 라이터, 만능 엔터테이너, 성공한 제작자 등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박진영에게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표절 논란이다. 그는 데뷔 17년 동안 끊임없이 표절, 샘플링 논란에 시달려왔다. 표절 시비로 얼룩진 곡만 해도 10여곡에 달한다. 자신이 직접 제작 일선에 나서 진두지휘한 지오디(god)의 ‘어머님께’는 당초 박진영 작사, 작곡으로 알려졌지만 이 곡의 지분이 미국 힙합가수 투팩(2Pac)의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에게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져 앨범 판매수익 전액이 BMG에 귀속됐다. 당시 박진영 측은 “소속사가 샘플링 관련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박진영 솔로 앨범의 ‘엘리베이터’, ‘허니’, ‘왜 왜’, ‘니가 사는 그 집’, 엄정화의 ‘초대’, 박지윤의 ‘할줄 알어?’, 지오디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길’, ‘편지’,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 원더걸스의 ‘미안한 마음’ 등도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표절 논란은 일종의 더티 밤(Dirty Bomb)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제기되는 순간 직격탄을 맞는다. 그동안 표절 논란이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과는 달리 박진영은 ‘드림하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수록곡인 아이유의 ‘썸데이’(Someday) 표절 논란으로 시한폭탄을 떠안고 있다. 2011년 7월 작곡가 김신일은 자신이 2005년 작곡한 가수 애쉬의 ‘내 남자에게’를 표절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년을 넘긴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이달 2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4부(부장판사 이기택)는 “5693만710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며 박진영에게 1심에 이어 항소심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박진영은 항소심 패소 직후 자신의 미투데이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을 표절했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답답하다. 다시 한 번 다퉈봐야겠다”며 대법원 상고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문제는 대법원 상고가 기각됐을 경우다. 곧바로 박진영에게는 이제까지 한 번도 겪지 않은 재앙이 닥친다. 그동안 뮤지션으로 쌓아온 성과는 표절 작곡가 확정으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JYP 엔터테인먼트도 졸지에 표절 작곡가가 수장으로 있는 연예기획사로 매도 당할 수 있다. JYP 소속으로 모든 앨범 타이틀 곡을 박진영에게 의존해왔던 원더걸스, 2PM에게는 치명타다.
하지만 박진영은 사안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하다. 표절 재판 항소심까지 패했지만 여전히 SBS ‘K팝 스타’ 시즌 2 출연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도 심사위원 자격이다. 가수를 꿈꾸는 일반인 참가자들에게 표절 재판에 연루된 심사위원이 평가를 하고 있다. 박진영이 ‘K팝 스타’ 성격이 오디션 프로그램인 것을 감안했다면 1심이 패소한 직후부터 하차하는 편이 나았다. 표절 재판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나서 출연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SM, YG, JYP 3대 대형 연예기획사 비중을 맞추기 위해 이를 권고하지 않는 SBS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당장 시청자들이 ‘뻔뻔하다’, ‘박진영은 양심도 없나’, ‘자진 하차가 답’ 등의 의견을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리고 있다.
박진영이 정작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박진영은 자신을 표절 재판에까지 이르게 한 문제의 곡을 아예 들어본 적 조차 없다고 했다. 작곡가가 곡이 완성된 후 사전 리서치를 게을리 하면 얼마든지 고의적인 표절로 의심받을 수 있는 현재 표절 재판 체계에 관한 문제제기를 얼마든지 꺼낼 수 있다. 표절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와신상담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박진영은 대중에게 ‘빛 좋은 개살구’ 식으로 비칠 수 있는 ‘K팝 스타’ 심사위원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대중은 연예인들이 음주운전 입건이라도 되면 법적 절차가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지상파 하차, 방송 출연 자제, 무기한 자숙기간 등을 강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표절 재판 항소심까지 패소한 박진영에게는 심사위원 자격을 계속 주면서 한없이 관대하다. 박진영과 SBS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마음 놓고 전횡을 일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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