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정부세종청사가 공식 개청하고 입주식을 한 지 지난 20일로 꼭 석 달이 됐다. 총리실과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6개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모두 내려와 근무를 하고 있지만 세종청사에는 기자들을 찾기 힘들다.
6개 부처 東에 번쩍 西에 번쩍
세종청사의 6개 부처는 모두 기자실을 운영하고 있다. 부처의 규모 등에 따라 규모와 등록기자의 숫자에는 차이가 있다. 150여명의 기자가 등록한 기획재정부 기자실에는 40여명의 기자들이 거의 매일 출근을 한다. 과천청사에 기재부가 있을 때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세종청사에서 그나마 항상 기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기재부 이외의 다른 부처에선 기자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부처의 공보담당 공무원은 22일 “과천청사에 있을 때는 (기자 상대 업무 대응이) 귀찮을 정도였는데 세종청사 온 후에는 내가 궁금해서 먼저 기자들에게 연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분서주 움직이는 기자들
44개 언론사 50명의 기자가 등록된 국무총리실에는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기자가 1∼2명에 불과하고, 36개 언론사가 등록한 환경부에도 비슷한 숫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7명의 기자가 등록된 국토해양부에는 상주 기자가 7∼8명 정도다. 83개 언론사 139명이 등록한 공정위 기자실에는 4∼5명 정도밖에 얼굴을 보기 힘들고, 70명의 등록기자가 있는 농림부 역시 10명 남짓한 기자들이 얼굴을 비친다.
이 숫자조차도 중복된 통계다. 기재부를 출입하는 기자가 하루는 공정위에, 또 하루는 농림부 기자실에 간다. 총리실을 출입하는 기자가 하루는 환경부에, 하루는 국토부에 가 앉아 있는 식이다.
기자들 사이에선 “부처 출입기자가 아니라 세종청사 출입기자”라는 푸념도 나온다. 기재부 출입기자라 해도 총리실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면 지시를 받고 가야 한다. 보존과 개발이라는 서로 다른 논리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환경부와 국토부를 동시에 출입하는 기자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라고 강조했는데 세종청사의 기자들은 이미 부처 간 칸막이를 뛰어넘어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조직 간 이해와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이슈가 많아지는 만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기자가 특정 부처의 논리에 매몰돼 특정 부처 입장을 대변하는 폐해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정책을 취재하면서 나무만 보지 않고 전체 숲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반면 어려움이 적지 않다. 여러 부처를 한꺼번에 담당하다 보니 기자들로선 업무가 가중되고, 겉핥기식 기사를 양산할 위험이 커졌다. 보도자료 발표 내용만 보고 쓰거나 배경과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기사를 쓰게 될 확률도 늘어난 것이다.
세종청사 기자들은 주초에만 바쁘다?
상주 기자들이 많지 않다 보니 각 부처는 대부분 특정 요일에 몰아서 브리핑을 한다. 기재부와 공정위는 월요일이, 환경부와 농림부는 화요일이 각각 정례 브리핑 날이다. 국토부는 주요 브리핑을 화요일과 목요일에 한다. 총리실은 정례 브리핑이 없지만 일반적으로 대개 국무회의가 열리는 화요일이나 차관회의가 열리는 목요일에 브리핑을 하는 경우가 잦다. 월요일은 매주 2개 부처가 브리핑을 하고, 화요일엔 경우에 따라 최대 4개 부처가 한꺼번에 브리핑을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설명의 자리다 보니 서울에서 근무하는 기자들도 이때만큼은 세종청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주초에 그나마 세종청사 기자실이 제법 북적거리는 이유다. 하지만 목요일 오후가 되면 세종청사의 기자들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금요일 오전이 지나면 기자들 찾기가 힘들어진다. 세종청사에서 상주하는 기자들 중에도 세종시에 가족이 함께 내려온 경우는 많지 않아 주말이면 수도권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세종청사에서 상주하는 한 기자는 “주초에는 그나마 사람이 사는 곳 같은데 수요일만 지나면 외딴 섬에 와 있는 것 같다”고 상주 3개월의 소감을 털어놨다.
“과거보다 2∼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종청사에서 상주하면 공무원들과 접촉할 기회가 늘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취재가 쉬워지는 건 아니다. 주요 정책 결정을 하는 장·차관과 고위 공무원들이 서울청사에서 주요 회의가 열리거나 대국회 활동 등을 위해 서울로 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다른 부처나 국회 관계자들과 만나 외곽 취재를 할 수가 없어 취재의 폭이 좁아진 것도 어려운 점이다. 본사와의 소통이나 다른 부서 기자들과의 정보 교류 기회도 줄었다.
여러 가지 여건 상 세종청사가 아닌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기자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정례 브리핑 때마다 출장 신청을 해야 하고, 출장 온 후에도 기사화할 만한 얘깃거리가 없으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한다. 지난 19일 윤성규 환경부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환경부 출입기자들은 “최소한 화요일만큼은 기사가 될 만한 거리를 풀어놓아야 한다”며 읍소 아닌 읍소를 했다.
향후 긴급하게 브리핑 일정이 잡힐 경우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를 세종청사에 내려와 근무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서울에 근무하는 날 마감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이 잡히거나 하면 속수무책”이라며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정책을 알려야 하는 정부의 공보 담당자들도 애로가 많다. 지난 15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관훈클럽 주최의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섰던 임충연 총리실 공보기획비서관은 “공보담당자들은 정책 설명을 위해 서울에 있을 때보다 2∼3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았던 기자가 보도자료만 갖고 기사를 쓰다보니 전혀 엉뚱한 기사가 보도되는 사례가 각 부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브리핑 외에도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가 제공되거나 이로 인해 정책 혼란이 생길 경우엔 국가적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인터넷을 통한 ‘e브리핑’이나 전화 콘퍼런스 형태의 취재지원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의 정보접근권 강화 차원에서 추진됐던 것이지만 세종청사 취재 환경의 특성상 활성화될 여지가 커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종청사 체제의 안착이란 게 공통된 인식이다. 실질적으로 세종청사에서 주요 정책이 결정되고 매일이다시피 의미 있는 발표가 진행된다면 세종시로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서 취재하겠다는 언론은 저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종=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