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지난 4월 18일 오후 3시40분. 최이선(가명·17)양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었다. 책가방을 침대에 던지고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었다. 오후 3시55분. 집에서 나와 다시 1㎞쯤 떨어진 보쌈집으로 뛰어갔다. 힘겹게 구한 ‘알바(아르바이트)’에 늦지 않으려면 뛰어야 한다. 최양은 알바를 구하려고 학기 초부터 백방으로 알아봤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고도 못 찾았었다. 그러다 동네에 새로 생긴 보쌈집에서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찾아가 겨우 일을 시작했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최양은 지난 3월 중순부터 매주 화·목·토요일 이 보쌈집에서 서빙 알바를 하고 있다.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 5시간. 4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최양과 다른 친구 둘이 서빙을 도맡았다. 손님이 많을 땐 오후 10시까지 일해야 한다.
시급은 4500원. 이마저도 일을 시작하고 한 주 뒤에야 오른 금액이다. 일을 시작한 첫 주에는 고작 4300원을 받았다.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인 4860원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처음에는 최저임금을 받을 줄로만 알았다. 설마 여고생에게 돈도 제대로 안 줄까 싶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보쌈집 사장은 알바 면접 당시 “시급은 4300원. 한 주 일하면 4500원으로 올려줄게. 싫으면 말고”라고 말했다. 돈은 궁했고, 다른 알바 자리는 없어 결국 받아들였다. 혹시나 몰라 준비해 간 부모동의서는 꺼내지도 않았다. 알바 계약서는 당연히 구경도 못했다.
일하는 동안에는 사장의 횡포가 이어졌다. 그는 수시로 호통을 쳤다. 친구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려고 조금이라도 딴청을 부리면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접시를 떨어트렸을 땐 곧바로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했다. 알바를 하면서 처음으로 얻어맞았던 날 최양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고 털어놨다. 최양은 “여고생이라고 너무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는 게 매일 느껴졌다”며 “한 달만 버티자는 생각에 참았다”고 말했다.
일도 너무 힘들었다. 신장개업한 보쌈집에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일하기로 한 시간은 오후 9시까지였지만 오후 10시가 넘도록 일한 날도 잦았다. 두 번째 주부터는 발바닥이 아렸다. 맨발로 서빙을 해야 하는 식당 구조 때문이었다. 발뿐 아니라 팔도 수시로 저렸다. 보쌈을 먹는 손님들은 대부분 술을 시켰다. 술에 취한 손님들 중에는 반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막말을 하고 술을 따르라는 손님까지 있었다.
5시간 넘게 일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면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학교에선 수업시간마다 졸기 일쑤였다. ‘차라리 알바를 하지 말 걸’ 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다. 사실 처음부터 알바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친구들과 강원도 펜션에 놀러가기로 했던 약속이 빌미가 됐다. 여행 경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친한 친구가 알바를 같이 하자고 말해 엉겁결에 시작한 알바였다.
평소 용돈도 모자랐다. 부모로부터 받는 한 달 용돈은 고작 7만원. 교통비가 포함된 금액이다. 이 정도 용돈으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 입고 싶은 옷을 사고 싶은 욕망도 알바를 시작한 계기다. 부모가 사주는 옷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왜 매일 똑같은 옷만 입느냐”는 소리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화장품도 필요했지만 어머니는 “학생이 무슨 화장이냐”며 통박만 했다. 화장을 안 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기초화장’까지만 허용했지만, 반 친구들은 대부분 기초화장은 물론 눈 색조화장까지 할 정도였다. 최양은 이런 상황에서 알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했다.
이틀 후인 20일 최양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급 26만7000원을 받고 알바를 그만뒀다. 사고 싶었던 옷 한 벌과 립글로스 등 화장품을 사고 나니 호주머니에는 10만원도 채 안 남았다. 사장의 횡포와 못된 손님들의 행패 때문에 첫 알바를 그만둔 최양은 또 다른 알바를 찾아 나섰다. 최양은 “솔직히 공부도 중요하지만 지금 나는 공부보다 돈 걱정을 더 많이 한다”면서 “돈을 벌려면 반드시 알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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