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국가기록 봉인 열어 '대통령이 며느리 겁탈 ' 조작문 끼워넣어

[전정희의 시사소설] 국가기록 봉인 열어 '대통령이 며느리 겁탈 ' 조작문 끼워넣어

기사승인 2013-07-04 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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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연산군 10년. 훈구대신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의금부 제조(提調·요즘 국정원장격) 원국정이 밀봉한 세조 임금의 사초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세조 임금은 재임 시절 며느리를 범하려한 패륜의 임금이니 이는 하늘이 노할 일이다. 세조 임금은 어느 날 며느리 귀인 권씨를 침방으로 불러 이것저것 묻더니 “내 자식이 죽었다고 너무 슬퍼만 말고 네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거라”고 위로 하였다.

그러면서 며느리의 미색 적의 앞섶이 열린 것을 보더니 다가가 적의 소매를 잡더니 “여기에 수를 놓으면 좋겠구나”하였다. 귀인 권씨가 움쩍 몸을 빼자 적의 안 너른바지와 단속곳 사이로 손을 쑥 넣어 한다는 말이 “참으로 부드럽구나”하였다. 세조의 불쑥한 동태에 놀란 귀인 권씨는 얼굴이 하얘지고 정신이 혼미하여 돌처럼 굳어져 있을 때 세조가 “용서하거라”하고 나지막이 말하더니 단속곳 사이로 머리를 들이 밀었다.’

세조, 며느리 겁탈 소문을 사초로 끼워 넣은 사관

훈구대신들은 이같은 사초에 멍해지더니 곧바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이때 제조 원국정이 말했다.

“저도 이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세조의 옹립을 도운 자들과 반(反) 연산군 사림들이 이제는 훈구 대감들의 목에 칼을 겨누고 들어오는 판에 그들의 공세를 물리칠 계책이 필요로 했습니다. 세조 임금이 며느리를 범하려 했던 소문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러나 물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초 김일손이란 자가 춘추관 또는 전주사고(全州史庫) 어디에 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초초(初抄)가 있을 거라 하였습니다. 제가 춘추관 영사(領事) 몰래 빼내 우선 요약본을 보여드리는 겁니다.”

원국정은 공신들에게 보고를 마친 후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원국정은 앞서 의금부 진무(鎭撫)를 시켜 춘추관 수찬관과 편수관에 필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군사가 춘추관 전주사고를 뒤지려 하자 사고 기사관(記事官)들은 빗장을 걸고 완강히 저항했다. ‘조선왕조실록’ 사초가 작성되기 시작된 이래 봉인된 사초가 사직과 국법을 위협 하기는 처음이었다.

이를 보고 받은 원국정은 기사관들을 역모로 다스리겠다며 밀쳐 낸 후 초초를 확보했다. 원국정이 이처럼 고려·조선 개국 이래 한번도 봉인이 풀린 적이 없는 사초를 건드린 것은 전국 각지 사림의 연산군에 대한 탄핵 요구가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국정(元國政), 집권당에 조작 요약 문건 들고 정국 반전 요구

사림들은 연산군이 인수대비 침전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인수대비를 받들던 엄숙의와 정소용을 칼로 쳐 죽이고 그 시신을 찢어 젓을 담근 후 산과 들에 뿌리게 한 패악이 원국정의 ‘폐비 윤씨’에 관한 허위보고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임금께 원국정의 파직과 유배를 요구했다. 폐비 윤씨는 연산군의 모친이었다. 원국정은 까딱 잘못했다간 좌익공신의 세에 밀려 의금부 30년 세도를 잃을 판이었다.

원국정의 천신만고 끝에 초초를 확보했다. 한데도
훈구파 대신들은 믿으려 들지 않았다. 워낙 사안이 훼괴했기 때문이다. 집권 훈구파들로선 ‘세조의 며느리 겁탈’이 백번 진실이라 하더라도 성리학에 기초한 조선에 치명적 화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이때 춘추관장을 역임한 훈구파 우의정 대감이 원국정을 불렀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세조의 며느리 겁탈’ 초초는 김일손이가 작성한 허위가 분명하오. 김일손이라 자가 상관인 춘추관 당상관 이극돈에 밉보여 승진이 안 되자 이에 원한을 품고 ‘세조의 며느리 겁탈’ 소문을 사실로 못 박아 사초에 끼워 놓은 것이오. 그렇게 되면 그 모든 잘못을 이극돈이 뒤집어쓰기 때문이오. 그런데도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아는 제조께서 원본도 아닌 요약본을 가져와 훈구대신들을 농락하려 드는 건 무엇 때문이오?”

우의정, “조작이 설령 백번 진실이라 하더라도 공개는 조선에 치명적 화가 될것”

원국정은 흠칫 놀라면서도, 우의정이 먹물만 잔뜩 들었다고 생각했다. 임금 연산군에 대한 정통성 시비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의정이란 자가 제 생색만 내려 한다. 원국정은 한 달 전 정세를 이끌어 가지 못하는 이 자에 대한 비문(秘文)을 연산군에 올려 제거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김일손의 세조에 대한 모략 초초는 정본이 아니었다. 세조의 정사(正史) 기록인 정초(正草) 4부는 춘추관과 전주, 충주, 성주 사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원국정은 초초의 요약본을 훈구대신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훈구대신들은 초초 원본을 요구했으나 연산군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핑계로 빠져 나갔다.

원국정은 요약본 공개에 앞서 연산군과 독대했다. 봉인 기록 공개는 초초가 됐건, 중초가 됐던 역사에 죄짓는 일이어서 원국정으로서도 부담이 많았다. 사림에 밀리면 참수 당할 판이었다.

그런데 ‘폐비 윤씨’ 문제로 살인과 패륜 등을 일삼으며 이미 광기에 접어든 연산군은 초초를 머리맡에 두고 엎드린 원국정에게 바싹 다가와 물었다.

임금, “전임 통치자는 죽었고 글(文)은 살아 있다. 알아 듣겠느냐?”

“한 가지만 묻겠다. 이것이 글이냐 아니냐?”

“전하, 글이옵긴 하온데 실은 김일손이란 자가 허위로…”

“네 이놈, 네가 가지처럼 매끈하게 답하려 하는 구나. 묻는 말에만 답하거라. 이 초초가 글이냐 아니냐?”

“글…글이 옵니다.”

“글은 남이 보라고 있는거 맞느냐 틀리느냐?”

“맞사옵니다. 남이 보라고 있는 것이 옵니다.”

“야 이놈아, 국사범이 횡행하는 마당에 의금부 제조라는 자가 글도 못 읽느냐? 글대로 믿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세조를 모신 자들과 그 공신들이 아직 살아 있다. 사림이란 자들도 글 읽는 자들이다. 글이 진실 아니더냐. 세조를 모신 공신과 그 공신을 따르는 사림은 죄인이더냐, 아니더냐?”

“중죄인이라 사료됩니다.”

“됐다. 나가보거라. 세조는 죽었고, 글은 살아 있다. 미련한 놈 쯧.”

원국정은 번뜩, 하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내가 무엇이 두려우랴. 칼 두렵지 않은 자들이 어딨겠는가." 원국정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어전을 뒷걸음질치며 물러 나왔다. 전정희 시사소설 작가 jhjeon2@dau.net



전정희 기자
jhjeon2@dau.net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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