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윤의 뮤직에세이(8)] 정재형 '여름의 조각들', 누구나 다 외롭다

[한채윤의 뮤직에세이(8)] 정재형 '여름의 조각들', 누구나 다 외롭다

기사승인 2013-07-28 10:41:01

[한채윤의 뮤직에세이(8)] 정재형 '여름의 조각들', 누구나 다 외롭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니 반가운 것들과 반갑지 않은 것들이 도착해 있다. 반가운 것들 (새 명함, 그녀의 소설책 두 권, 그리고 그의 앨범) 만 열어보고 반갑지 않은 각종 고지서들은 구석에 쌓아둔다. 이렇게 한 달이 또 지났다.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아무리 좋은 곳에 있어도 혼자라면, 즐겁지가 않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확신이 든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고 심지어 즐기는 편임에도, 둘 혹은 여럿이 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혼자서도 잘 하면서, 역시나 함께인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외롭다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경쾌한 삶을 사는 사람을 알고 있다.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해 좀처럼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나와 극단적으로 다른 그를 만나서는 호기심이 발동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일단 피하고 보는데 그의 초대에는 몇 번이나 응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을 만큼 거절한 후였다.) 첫 만남 이후 나와는 참 다르다고 내내 생각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같아 어느 날 그를 내 방식으로 초대했다.

“야, 너 왜 그래. 무서워. 하하하.”

진지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 다운 반응이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이제와 솔직히 말하면 부정적인 의미의 가벼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가벼움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뿐더러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진지하게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목적 없이 여럿이 모이면 그간 오고가는 대화는 놀이에 가깝다.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로움과 밝음의 함수 관계

어른이 되고 상처를 받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점점 외로워지는 게 아닐까 싶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으나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은 그였다. 외로움은 살아온 시간과 비례하여 쌓여만 간다. 외롭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어느 날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만 이제 혼자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밝아 보이는 딱 그만큼의 외로움이 존재한다. 말이 많거나 지나치게 유쾌해 보이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실은 내가 점점 그렇게 변해간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주말 밤 혼자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SNS를 통해 사람들의 즐거운 한 때가 실시간으로 날아든다. 상대적 외로움. 안보면 될 텐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외로워서 안 되겠다고, 소심하게 한 줄을 적어 올린다. 댓글이 달리고 곧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혼자 있지 말고 나오라며. 고맙지만 모두 사양했다. 이런 기분이라면 아마도 더 외로워질 게 분명했다. 아직까지는 혼자서도 괜찮다.

만나고 싶은 이들을 떠올렸다. 함께라면 외롭지 않을 것 같은 보통의 친구 이상의 사람들, 사랑하는 그녀들과 가족 같은 그들을. 하지만 오늘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분주하다.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면 더 외로울 것 같은 사람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아마 우린 서로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내게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 같은 공간 다른 생각은 사람을 훨씬 더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가족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서. 사람을 믿기 위해서.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아무리 좋은 곳에 있어도 혼자라면 행복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혼자 밥을 먹을 때나 혼자 무언가를 할 때 가능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장소를 고르곤 한다. 그러면 아주 조금은 덜 외롭더라. 한여름이다.

한채윤 / 배우 & 싱어송라이터 서강대학교 영미어문 졸업. 오랫동안 잘 안 팔리는 배우로 지내면서 넘쳐나는 시간 동안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노래도 배우다가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어느 날부터인가 곡을 쓰기 시작. 지난 3월 자작곡 미니앨범 '한채윤 첫 번째_너무 흔한 이야기' 발매. 여러 편의 단편 영화와 작은 역할로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 대표작으로는 뮤지컬 '심야식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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