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조직기증, 떠나는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선물”

“인체조직기증, 떠나는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선물”

기사승인 2013-11-01 11:21:00

박창일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이사장

[쿠키 건강] “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가셨어요.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말뿐만이 아니었죠. 자신의 각막을 내놓으셨죠. 죽어가는 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나눔을 몸소 보여주신 겁니다.”

4년 전 고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곁은 떠나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이에게 자신의 ‘각막’을 기증했다. 그해 각막기증 희망서약자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인식도 함께 향상됐다. 하지만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의 박창일 이사장을 만나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각종 질병과 사고로 인해 신체적 결함을 갖게 되는 환자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기증자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지금도 절망과 고통 속에서 애타게 기증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9년 전인 2004년 인체조직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시피 할 때 박창일 이사장은 아내와 함께 인체조직기증에 희망서약을 했다. “이사장을 하기 전에는 인체조직기증을 잘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죠. 그때와 비교해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많이 부족합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필요한 인체조직 90%를 수입했어요. 현재 수입률이 75%로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박 이사장의 말처럼 인체조직기증을 알고 있는 국민은 극히 드물었다. 지난해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인체조직기증’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장기기증과 조혈모(골수)기증을 모르는 사람은 전체의 1%에 불과했다. 인체조직은 피부와 뼈, 근막, 연골, 각막, 심장판막 등을 말하며 사고로 인해 전신에 화상을 입은 경우, 뼈나 연골이 결손돼 절단이 불가피한 환자 등을 살리는데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기증으로 최대 100여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하루빨리 전국민이 인체조직기증을 아는 시대가 와야 한다는 박 이사장은 “뼈와 피부 같은 인체조직기증이 절실한 환자의 경우 대게 경제적 사정이 열악하고 집안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 아이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생계형 노동자에게서 화상환자나 골육종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박 이사장은 “인체조직기증은 곧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건 안전망으로 이어진다”며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죽어서 인체조직을 기증한다고 하면 섬뜩한 마음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화장을 생각해보세요.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내 몸을 태우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체조직은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생명이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숭고한 ‘생명나눔’입니다. 태워 없어질 내 육신이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놓을 것입니다.”

사망자가 생전에 기증의사를 밝혔다 하더라도 유가족이 반대하면 기증은 이뤄지지 않는다. 희망서약서만으로는 법적인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이 반대하는 이유는 시신훼손을 꺼리는 유교적 정서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인체조직 구득 후 시신 복원은 거의 완벽하게 이뤄진다. 뼈의 경우 대체물을 넣어 외관상의 변화가 없으며 피부의 경우도 모든 피부를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등피부의 상층부 3mm정도만 구득한다.

“장기와 달리 법적으로 수입이 가능한 인체조직에 대한 국내 저조한 기증률 문제는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식재 수입업체의 품질 안전성이 우려되는 대형 스캔들이 연이어 터진 바 있고 무엇보다 동일 인종의 인체조직을 받는 것이 안정성면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국내 기증은 대체 불가능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최근 국내 치매환자의 인체조직이 수천 명의 환자에게 이식되는 등 인체조직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묻자 박 이사장은 “인체조직관련법 법개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현행법으로는 환자가 사망한 시점에 다녔던 병원 외에 그 훨씬 이전에 다녔던 병원의 기록들을 보는 것은 불법”이라며 현행법의 맹점을 지적했다. 이어 “과거 환자의 상태는 어땠는지, 무슨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를 어땠는지에 대해 심평원의 눈과 입을 빌리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는데 열람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보니 묻는다하더라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없는 심평원은 본부의 요청에 적극적이 않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환자를 보호하는 조치로 만들어진 법일지라도 되레 환자를 위협하는 법이라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박 이사장의 생각이다. 박 이사장은 “법개정이 지연되고 이렇게 관련 문제점들이 지적될 때마다 인체조직기증을 믿지 못하고 등을 돌리는 국민들이 생긴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어쩌면 이 과정들은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본부는 개정안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보완되고 하루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 발의한 개정안에는 인체조직을 장기조직처럼 국가산하의 전문구득기관에서 관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인체조직 전문구득기관과 국립조직관리기관을 설치해 효율적으로 인체조직 구득업무를 수행하고 안전성을 강화한다면 기증률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봅니다. 사실 지금 쉽게 이뤄지는 헌혈도 정부가 관리하기 전에는 매혈이 성행했고 혈액이 필요한 환자들은 비싼 값을 주고 사야했습니다. 인체조직도 정부의 공적관리가 이뤄진다면 지금보다 저렴한 값에 수술 받을 수 있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낮아질 것입니다.”

끝으로 박 이사장은 자신처럼 노년기로 접어든 60대 부부들에게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죽음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고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풍요와 행복속에 사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은 나처럼 아쉽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사회를 위해 더 많이 기여하고 싶었지만 너무 바빠서 뜻대로 안됐죠. 인체조직을 기증하고 떠난다면 나중에 하나님을 뵐 때도 조금은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50~60대를 살고 있는 부부 여러분들, 두 손을 꼭 잡고 기증서약을 해보세요. 노년이 더 행복해질 겁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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