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증 위험 높은 산부인과 수술…현행 포괄수가제로는 진료 포기하는 의사만 늘어날 뿐”
포괄수가제(DRG) 시행에 따른 의료계 반발이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그 중 단연 뜨거운 감자는 산부인과다. 환자 입장에서는 어느 병원은 가든, 진료 횟수에 상관없이 미리 책정된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는 포괄 수가 제도가 반갑지만 어째 의사는 환자 마음 같지가 않다. 돈 밝히는 의사者이란 환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포괄수가제의 고충을 토로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박노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만나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산부인과 수술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가 많고 합병증 위험이 높은 수술입니다. 현 수가로는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수술하기가 어려워요. 혹여 산모 건강을 생각해 수술을 강행하더라도 의사들은 수익보존을 위해 값싼 약재와 치료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의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최선의 치료를 하는 것이죠. 병원은 의료봉사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병원도 우리의 일터임을 알아주세요.”
근심 가득한 표정의 박노준 산부인과의사회장은 산부인과 진료에 적용된 현행 포괄수가제(DRG)에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고위험·고난이도 수술이 많은 산부인과 수술의 특성상 의사의 행위량의 상관없이 수술 장기에 따라 수가를 매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박노준 회장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 다른 진료과는 맹장, 탈장, 백내장 등 질병에 따른 수술별로 분류가 돼있지만 오직 산부인과만 ‘자궁 및 자궁부속기’라는 하나의 장기로 묶어 적용했다”며 “자궁·난소 등은 환자에 따라 차이가 커서 수술이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임신중독증, 전치태반, 쌍태아임신 등 고위험 임산부의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현 수가대로는 최상의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의료사고의 부담 때문에 분만과 수술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고 복잡하고 합병증 우려가 있는 환자들을 2차 혹은 3차 병원으로 전원 조치하는 경향이 짙어질 거에요.”
박노준 회장은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불가피하다며 “그동안 산부인과 수술비가 높았던 것은 자궁근종 절제술이나 자궁내막증 수술 같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 많아 신 의료기술과 장비들이 자주 도입됐기 때문”이라며 “포괄수가제로 묶이면 새로운 의료장비를 도입하는데 주저하는 병원들이 많아질 것이고 산부인과 의료기술 발전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노준 회장은 정부에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포괄수가제를 재검토할 것을 부탁했다. 박 회장은 “포괄수가제 시행으로 당장 피해를 보는 곳은 병원이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며 “의사의 양심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착방지제나 영양제만 하더라도 한번 사용하나 두세 번 사용하나 받는 돈은 똑같다면 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지 않는 한 병원 경영도 생각해야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진료가 어렵다”며 “포괄수가제가 의사의 과잉진료를 막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불필요한 진료가 아니라 해야 하는 진료를 못하게 하는 제도도 변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노준 회장은 “후배들의 산부인과 기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며 “이대로 가다보면 언젠가 우리도 동남아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을 모셔 와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심평원이 지난해 상급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원자가 전무한 곳이 10곳을 넘어섰다. 수련 과정이 힘들고 비전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산부인과 전공의 미달 현상은 심각한 인력 수급 문제로 이어진다”며 “포괄수가제 재검토는 산부인과의 불안정한 의료 환경을 개선시키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