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응사 열풍’ 우리 하숙집엔 예쁜 딸이 없었다

[친절한 쿡기자] ‘응사 열풍’ 우리 하숙집엔 예쁜 딸이 없었다

기사승인 2013-12-08 19:23:00


[친절한 쿡기자] 015B의 ‘신인류의 사랑’이 한때 내게 청소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대학교 4학년이던 1993년 8월 입대했던 난 이등병 시절 내무반을 청소할 때마다 ‘신인류의 사랑’을 들었다. 당시 견장을 달고 있던 고참 병장은 무슨 사연이 있는지 청소시간만 되면 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침상 위에서 빛바랜 주황색 러닝복을 입고 춤을 췄다.



그다지 즐겁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건 드라마 ‘응답하라 1994’였다. 하숙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당시를 살았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하숙집이란 공간은 지방 출신들에겐 내밀한 무언가가 있다.



시골 출신이어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하숙집 생활을 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드라마 속 신촌 하숙이란 곳은 퍽 이상적인 공간이다. 고교 시절 첫 하숙을 했던 곳의 집 주인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를 빼면 돌멩이라도 삼킬 듯했던 우리의 식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메뉴만 내놨다.



첫 하숙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주인집 내외보다는 고등학생들의 하숙방 옆으로 이어진 조그마한 단칸방에서 지내던 젊은 부부와 공장에 다니던 누나들이었다. 하숙생들과 별다른 왕래가 없었던 젊은 부부는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부모님으로부터 하숙비 받아 아무 걱정 없이 지내던 고등학생이 현실의 무게를 처음 느낀 건 그들을 보면서였는지도 모른다.



공장에 다니던 누나들은 늦은 밤 일 마치고 오면서 찐빵이나 군고구마를 사올 때면 동생 같아 보여 안쓰러웠는지 항상 우리를 불러 나눠 먹었다. 새벽 시간에 진행됐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 경기를 본 것도 누나들 방이었다. 피곤한 몸을 쉬게 해줘야 할 시간이었음에도 누나들은 기꺼이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을 위해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숙면을 포기했다. 한국이 예선 탈락한 게 아마 누나들에겐 다행이었을 것이다.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2년여 신촌에서 하숙을 했다. 드라마 속과 같은 신촌이지만 잔디가 깔려 있는 마당은커녕 작은 창 하나조차 없는 방도 있었고, 형태가 사각형이 아니었던 방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지냈던 하숙집에는 나정이 같은 예쁜 딸이 없었다.

그럼에도 하숙생활을 끝내고 자취를 시작하니 하숙하는 동안 퍽 행복했음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월 10만원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하숙비를 집에서 받아쓸 때는 솔직히 그게 얼마나 고마운 돈인지 몰랐다. 드라마 속 하숙생들을 보며 그 고마움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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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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