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흑형 치킨이 뭐길래

[친절한 쿡기자] 흑형 치킨이 뭐길래

기사승인 2014-01-27 13:17:00

인터넷이 때아닌 ‘흑형’ 논쟁에 빠졌습니다. 흑형은 흑인 형을 줄인 신조어로 주로 건장한 흑인 남성을 지칭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번에 흑형이 문제가 된 것은 서울 이태원 한 주점에서 팔고 있는 ‘흑형 치킨’이라는 이름의 메뉴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19년째 살고 있다는 한 외국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할 말이 없다. 이 술집 주인이 제 정신인지 궁금하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현했습니다. 일반 치킨과는 달리 검은색 양념의 튀김 옷으로 주변의 명물이었던 흑형 치킨은 졸지에 인종 비하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흑형 치킨을 놓고 논쟁은 뜨겁습니다. 음식평론가 이용재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치킨은 ‘흑인은 까맣다’라는 공식을 가져다 붙인 셈인데 일단 이것만으로도 써서는 안 되는 표현”이라며 “Yellow(황인종), Red(미국 원주민) 등 피부색 지칭 표현은 인종차별 및 비하를 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작년 한 골프선수가 타이거 우즈에게 ‘프라이드치킨을 대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며 “치킨은 흑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기 때문에 흑인과 치킨을 연관시킨 것은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지난해 5월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의 해당 발언에 대해 우즈는 “가르시아의 발언은 멍청한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이라며 “그의 발언으로 인해 나는 상처받았고 분명히 어긋난 행동”이라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대다수 네티즌들도 이씨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입니다.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이태원에서 파는 메뉴라니 용기가 가상하다’ ‘정말 어이가 없다’ 등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흑형이라는 단어만으로 인종차별이라고 단정할 수 있나’ ‘흑인과 치킨과의 관계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오버하는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들도 눈에 띕니다. 문제의 주점 측은 “심각한 의미를 담아 붙인 이름이 아니다”라며 “흑인들도 와서 즐겨 주문해 먹고 있으며 치킨 이름 때문에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기자도 지난해 이 주점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사장님은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한 것으로 볼 때 인종차별과 거리가 먼 분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다른 음식을 시키기는 했지만 흑형 치킨이라고 적은 메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 부정적인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외국인에게 더욱 미안합니다. 대다수 인종차별은 상대방이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는 일방적인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외국인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주점 주인이나 한국인 손님들이나 조금이라도 상처가 되지 않을지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해외에 진출한 한국인 스포츠 선수들이 ‘김치, 마늘 냄새가 난다’는 일화를 털어놓을 때마다 인종차별이라고 강하게 분노하곤 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혐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가벼운 농담처럼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는 흑형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니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