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 살이던 2011년 박모(24)씨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넘어져 왼쪽 턱이 골절됐다.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물리칠 수 있을 듯한 나이의 청년은 찾아올 가족 하나 없는 아주대병원 병실에 홀로 누워 수술비 걱정을 하며 울먹였다.
생후 100일째 되는 날 박씨의 부모는 이혼했다. 박씨는 어머니를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다. 부모가 이혼한 후 박씨는 고모 집에서 자랐다. 고모에게 양육비를 대주던 아버지는 박씨가 아홉 살 되던 해 교도소로 갔다. 이후 박씨는 여든이 다 된 할머니 손에 자라야 했다.
한겨울에도 보일러는 고사하고 전등 대신 촛불을 켜놓고 살았다. 밤에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급식비를 냈다. “네 나이 때는 돈 버는 것보다 공부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니?”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박씨는 ‘책 살 돈 없어 공부 못해본 심정 아십니까. 가스가 끊겨 촛불을 켜 손을 녹이는 심정을 아십니까’라고 말하고 싶었다.
박씨는 어려운 사정을 교사에게 털어놓은 끝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쌀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박씨는 틈틈이 공부했고 대학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등록은 못했다. 당시엔 국가장학금 제도도 없었고 대출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공사장 인부로 일하는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2년여를 공사판에서 일하다 턱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박씨는 병실에서 ‘어떻게든 공부해서 의과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병원의 도움으로 퇴원한 박씨는 2년 내에 의대에 붙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낮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학원은커녕 참고자료도 없었지만 박씨는 EBS 교재와 인터넷 강의를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었다.
마침내 지난해 연말 지방의 한 의대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박씨는 “정부지원금으로 생활할 수 있었고, EBS 덕분에 공부할 수 있었다”며 “저를 길러주신 할머니처럼 몸이 아픈데도 병원조차 못가는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는 정형외과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방송공사는 EBS 수능강의로 공부해 성과를 거둔 최씨 등 31명을 ‘EBS 꿈 장학생’으로 선발했다. 19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박씨 등 31명의 장학생에게 장학금이 전달된다. EBS는 수상자 중 일부의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할 계획이다.
세종=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