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스포츠 행정가 꿈꾸는 1인3역 ‘맹렬 여성’

[소치올림픽] 스포츠 행정가 꿈꾸는 1인3역 ‘맹렬 여성’

기사승인 2014-02-19 14:57:00
[쿠키 스포츠] 국내 유일의 국제사이클연맹(UCI) 도핑검사관, UCI 준(準)국제심판, 대한사이클연맹 국제업무 코디네이터. 고은정(27) 씨는 1인3역을 하는 ‘맹렬 여성’이다. “이 모든 게 스포츠 행정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지만 하고 싶은 걸 하니 힘든 줄 모르겠어요.”

고씨는 2009년 4월 대한사이클연맹에 들어가 국제업무를 담당했다. UCI의 준국제심판 육성 과정을 밟은 고씨가 자격증을 따낸 것은 2012년 3월. 20여 명이 강습회에 참가했지만 최종 합격한 이는 고씨 혼자였다. “국제대회를 운영하다 보니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준국제심판 자격증에 도전했죠. 나중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심판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운동선수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고씨는 2010년 국내 도핑검사관 자격증을 땄다. 내친김에 UCI 도핑검사관에도 도전했다. UCI는 ‘금지약물과의 전쟁’을 위해 산하단체인 사이클반도핑기구(CADF)를 설치했다. 현재 CADF엔 50여 명의 도핑검사관이 있는데, 고씨는 그중의 한 명이다.


UCI 도핑검사관 자격증을 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씨는 지난해 3월 23, 24일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뒤 시험을 치렀다. 이어 10월 국내에서 열린 크라운해태BMX대회에서 1차 테스트를 받았다. 올 1월 21일부터 26일까지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투어다운언더대회에서 2차 실습을 통과한 고씨는 지난 6일 UCI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고씨가 스포츠 행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의 해외 생활이다. “1997년 8월 초등학교 5학년 때 직장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가 네덜란드로 발령이 나 가족 모두 네덜란드로 건너갔어요. 네덜란드에선 학생들에게 배구, 농구, 수영, 육상 등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장려해요. 자연스럽게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스포츠 행정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2004년 2월 귀국한 고씨는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토익 만점을 세 차례나 기록했으며 불어와 네덜란드어도 구사한다. 마음만 먹으면 선망의 대상인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고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다들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 없어요. 자신의 길을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봉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엔 반대예요.” 고씨는 똑 부러지게 말했다.

고씨는 심판 활동보다 도핑검사관 활동에 더 관심이 간다고 했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게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고 있다. “금지약물은 결국 선수에게 독일 될 뿐입니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금지약물에 손을 대는 선수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고씨가 털어놓은 에피소드 한 가지. “2012년 7월에 열린 제38회 대통령기 전국남녀테니스대회 때 한 선수의 소변을 받을 때였어요. 그 선수가 소변을 못 보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같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기다렸죠. 무려 7시간을 기다린 끝에 식당 화장실에서 소변을 채취할 수 있었어요. 호호호….”

도핑검사관이 선수들의 소변을 채취하는 과정은 일반인이 보기에 민망할 수도 있다. 도핑 대상자는 상의를 가슴까지 올려야 하고, 하의는 허벅지까지 내려야 한다. 긴소매를 입은 경우 팔꿈치 아래까지 접어 올려야 한다. 도핑검사관은 도핑 대상자의 소변 채취 과정을 정면에서 지켜본다. 고씨는 “어린 선수의 경우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땐 ‘네가 정정당당하게 싸웠다는 것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해 주죠”라고 말했다.

고씨는 오는 8월 광명스피돔에서 열리는 2014 UCI 세계주니어 트랙사이클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느라 벌써부터 바쁘다. “도핑검사관인 동시에 심판이지만 제 본연의 일은 국제업무 코디네이터예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가 성공을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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