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천안함 백서가 지적했던 것들…바뀐 건 없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천안함 백서가 지적했던 것들…바뀐 건 없었다

기사승인 2014-04-23 00:43:00
[쿠키 사회] 2010년 3월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피격돼 침몰했다.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됐다. 침몰 원인과 이후 대응, 구조과정 등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폭침 1년 후인 2011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이하 백서)’를 발간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백서는 외교·안보 문제 외에 해상사고에 대한 대응과 구조과정에 대해서도 처절한 반성을 담았다.

백서가 발간된 지 3년여가 흐른 지난 16일 승객 및 승무원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러나 정부가 역량을 총동원해 3년 전 발간했던 백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백서에서 지적했던 문제점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그대로 재연됐다.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우리는 불과 4년 전 아픔을 벌써 잊은 것일까.

◇초기 대응 및 위기관리대응체계 보완=백서는 천안함 피격사건 최초 발생시 신속·정확한 상황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장상황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 혼선을 초래했다고 고백했다. 청와대까지의 최초 보고가 지연됐고, 군의 위기관리시스템의 초기 대응도 미흡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안전행정부 중앙안전상황실은 오전 9시31분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했다. 휴대전화 문자로 보고했다. 전남소방본부가 처음 신고를 접수(오전 8시52분)한 뒤 39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청와대가 세월호 사고를 인지했을 때는 세월호 승무원들이 탈출에 앞서 진도연안VTS에 배의 위치를 마지막으로 알려주던 시각(9시32분)이었다.

백서 제작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남영준 중앙대 교수는 22일 “사고 대처는 의욕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는 사고가 나기 전에 (여러 상황을 가정해) 대책본부를 구성해보고 훈련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훈련하지 않다가 국민을 대상으로 연습하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백서는 생존자 구조를 위한 탐색구조 및 인양작전의 문제점도 언급했다. 해군의 탐색구조 전력이 적기에 투입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때도 여전했다. 민·관·군의 협조는 요원했고 정부의 대응은 계속 지체돼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다.

◇범정부 차원의 통합 협조체계 필요=백서는 천안함 피격사건 대응에 있어 청와대 내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무총리실의 역할 역시 선도적인 위기관리가 아니라 상부지침에 따라 이를 이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언급했다. 정부 부처 간 통합 노력 부족도 꼬집었다. 범국가적 총력대응이 필요했는데도 일부 부처는 국방부 중심의 사고 후속조치로 판단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것이다.

백서는 국가위기상황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통합적인 협조체계를 요구했다. 청와대 비서관실별로 임무·역할을 구체화하고,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도록 국가위기관리센터의 기능 및 운영 개념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리실 등에는 주도적 관리시스템 구축을 요청했고, 국가자원활용시스템을 정비해 민·관·군 자산 및 인력 통합운영 체계를 구축하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그렇지만 백서가 제시한 대안은 세월호 대응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은 여전히 부실했고 ‘컨트롤 타워’는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는 우왕좌왕하는 각 부처 대응을 지켜보면서도 혼선을 신속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백서 자문단이었던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정부가 천안함 백서를 제대로 읽고 한 번이라도 논의했다면 이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백서에 대해 국방부 외 다른 부처는 강 건너 불구경했다는 얘기”라며 “아마도 안전행정부는 (백서가 지적한 내용이) 전혀 모르는 얘기일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국민과의 소통 노력 강화=백서는 정확한 사실 확인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언론대응이 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사건 발생시각과 관련 열영상관측장비(TOD)의 영상자료를 한 번에 공개하지 않고 네 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해 불신을 자초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데 미흡했다는 점도 거론했다.

백서는 공보체계 전반에 걸친 보완을 요구했다. 브리핑 시 사건 관계자와 공보 전문가가 협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했다.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국민과 언론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정제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선제적인 공보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후 정부는 오락가락 발표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2시 정부는 브리핑을 통해 구조자 수를 368명이라고 확인했다가 1시간30분 뒤 구조자는 180여명이라고 말을 바꿨다. 탑승자 가족은 물론 최소한의 희생으로 사고가 수습되는 것을 기대했던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어처구니없는 처사였다. 이후에도 정부는 재난 대처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사망자·실종자·구조자 숫자를 여러 차례 수정 발표하는 등 스스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
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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