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세월호 침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구보현양의 오빠 구현모군이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린 후 공유해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26일 현모군은 페이스북에 장문의 편지를 올리며 보현양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와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을 공개했다.
현모군은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은 하늘에 있는 네가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며 편지의 운을 뗐다.
학교 체육대회에서의 축구예선 경기를 치를 때 사고 소식을 접했다는 현모군은 “다 구조됐다는 뉴스를 보고 별일이 아닌가 보다 했는데, 아니라는 얘길 들은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며 “정말 펑펑 울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은 없는 거 같다”고 적었다.
현모군은 동생의 소식을 들은 지난 16일부터 24일까지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편지에 담았다. 특히 동생이 살아 있을 때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현모군은 “네가 캐리어 꼭 가져오라고 문자했는데 오빠는 평소처럼 귀찮아서 문자도 안 보냈다”면서 “전화라도 해줄 걸 너무 후회된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건 너한테 예쁘다고 많이 못 해준 거, 집에서 애교부리지 말고 노래도 하지 말라고 한 거, 편지 쓰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너한테는 못 써준 거, 너랑 멋진 데이트 한번 못해 본 거다”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착한 내 동생 못된 선장 말 너무 잘 들어서 배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겠지. 오빠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글을 써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너무 슬프다. 20년 동안 너의 오빠여서 정말 행복했다. 사랑해 내 동생 구보현”이라며 글을 끝맺었다.
편지를 접한 네티즌들은 “내 나이 삼십대 중반 눈물이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동생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다음은 구현모군이 동생 고(故) 구보현양에게 보낸 편지글 전문이다.
To. 사랑하는 내 동생
안녕 보현아… 첫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은 하늘에 있는 네가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는 거 밖에 없는 거 같다. 수요일 날 2교시 끝나고 우리 반에 어떤 애가 배 침몰 기사 떴다고 말해주는 거야. 근데 단원고라고…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 근데 몇 분 뒤에 전원 구조라고 나오더라고. 별일 아니구나 생각했지. 너한테 전화했더니 통화 중이더라고 잘 살았나 보다 생각했지….
그날 체육대회 축구 예선이었거든. 우리가 졌어. 1:0으로. 밥을 먹는데 뉴스 기사가 엄청 크게 나오는 거야. 진도에서 지금 배가 침몰했다고… 애들한테 내 동생 있는데 저거 금방 다 구조됐다며 라고 얘기했는데 후배 한 명이 ‘형, 그 기사 거짓말이래요’라고 하는 거야… 난 또 심장이 덜컥해서 너에게 전화했는데 통화 중이었어, 별일 아닌가보다 했지….
계속 걱정하다가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 자기 후배가 너 구조되는 거 봤다고… 울음이 터지더라. 근데 아니었어… 잘못 본 거였나 봐… 나는 정말 펑펑 울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은 없는 거 같아… 네가 죽은 게 나 때문인 거 같고… 내가 이과 말고 문과로 가라고 했으면 구조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괜히 취직 잘 된다고 이과 가라고 해서… 이런 생각도 들고… 아무도 몰랐겠지만 도서관 테라스에서 울다가 쓰러져서 생활관 선생님이 날 안고 내려왔거든…. 그때 나는 몸으로 진짜 느껴봤다. 드라마에서 막 사람 죽으면 울다 쓰러지고 그러잖아. 만날 티브이 보면서 너랑 거짓말이라고, 어떻게 저렇게 되냐고 그랬었잖아. 정말이더라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발이 안 움직이더라. 밥을 먹는데 손이 안 움직여서 옆 친구한테 주물러 달라고 해서 간신히 밥을 먹었다. 나 그래도 밥은 정말 많이 먹었다. 쓰러질까 봐… 근데 밥 많이 먹으니깐 눈물만 더 많이 나오더라. 아침에 계속 울다가 보건실에서 잤어. 정말 이게 무슨 일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고 죽고 싶었다. 근데 그런 생각은 안 하려고 나 죽으면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떡할까….
다음 날 체육활동이었는데 내가 말했지 체육활동 있다고 디미고에서 내가 제일 가장 마음에 드는 시간… 근데 갑자기 엄마한테 카톡이 왔어. 네가 식당 쪽에 살아있을 수 있다고. 카톡 보니깐 딱 봐도 엄마 손 덜덜 떨려서 나 놀라지 않게 또박또박 치신 거 같은데… 페북에 좀 퍼뜨려 달라고. 학부모 분들은 페북 안 하시니깐 소통할 방법이 없다고… 그래서 그날 체육활동을 해보려했었는데 그린 IT실로 가서 미친 듯이 글을 퍼뜨렸지… 거의 페북하면 모든 사람들이 볼 정도로… 근데 거기에서도 조작이라고 이런 거 왜 올리냐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더라. 어떻게 저 상황에서 카톡을 저렇게 또박또박 칠 수 있냐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저런 말을 왜 하는 거지…. 그런 장난을 대체 왜 하는 거지….
계속 페북을 하다가 삼성 이건희 회장이 크레인을 보낸다는 기사를 봤어… 또 그때 희망을 가졌지. 크레인이 다음 날 도착해서 다 구조할 거라고… 예전에 아빠하고 이런 얘기를 했던 적이 있어… 실종이면 거의 웬만하면 사망이고, 다 키워 놓은 자식 잃어버린 부모는 대체 어떤 느낌일까. 대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슬플까. 어떻게 버틸까… 그게 우리 부모님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금요일 날 원래 체육대회였는데 취소됐어. 과끼리 페이스북에서 싸우고 그랬거든. 금요일에 집에 가는데 우리 반 친구들이 10명 정도 와줬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밥도 해먹고, 치킨 먹고, 과자 먹고 음료수 마시고, 껌도 씹고, 밤새게임하고… 토요일 날 아빠가 전화해서 깼다. 잘 있냐고… 2시간 밖에 못 잤는데… 토요일날도 계속 게임하다가 기분 좀 내보려고 중앙동에 친구들과 밥먹으러 갔다. 볼링도 치고 버블티도 먹고. 알지 나 볼링 진짜 잘치는 거? 일요일에는 친구가 뒤척여서 3시간 밖에 못잤다… 한슬이 아저씨 오셔서 용돈주시고 현지도 와서 얘기좀 많이 나누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카톡, 페메, 문자, 전화해 주셨어… 통화하면 왠지 뭔가 마음이 괜찮아 지더라고… 하루에 정신이 정말로 오락가락 했거든. 좋아졌다 나빠졌다 계속… 아침부터 또 게임을 하다가… 게임하면 시간이 빨리 가고 게임할 때는 불안감이 조금 사라지는 거 같았거든.
저녁에는 냉면집에 갔어. 사실 내가 한달 잔류했잖아. 그래서 이번 주에 엄마 아빠랑 너랑 같이 고기나 먹으러 갈려고 했었는데… 또 울다가… 집에 있었을 때 너 방에 있으면 정말 죽을 거 같더라고… 막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잖아. 죽은 사람들하고 지냈던 추억 같은 거 떠오르고… 그런 거 다 진짜더라.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냉면 먹고 고기 먹고 학교에 들어갔다. 오빠가 정말 이 대참사가 일어난 후로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잘 안 나. 한 4~5일 동안 잠잔 게 10시간 밖에 안 되는 거 같다. 정말 괴로웠던 건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고… 월요일 날 수업 들어보려고 했는데 머리가 아파서 쓰러질 거 같더라. 그래서 보건실에서 일 주일 동안 쉬었다. 보건실에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위로해 주고 웃긴 얘기 해주고 그러면서 기분이 좀 나아졌다.
보건실에서 노트북 가져가서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듣고 보건 선생님 폰으로 카톡 내용 훔쳐보고. 보건 선생님이랑 거의 모든 얘기를 다했다. 보건 선생님 아니었으면 진짜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보건 선생님 이번에 새로 오신 분인데 얼굴도 예쁘시고 착하시고 정말 천사 같으셔… 교생 선생님 학교에 두 분 오셨는데 한 분은 남자 분이고 한 분은 여자 분. 남자 선생님은 우리 수업 들어오시고 여자 선생님은 수업때 한번 구경오셨는데 내가 수업을 안 들어서 인지 날 잘알더라고… 보건실 오셔가지고 놀아주셨어. 너무 감사했다. 일부러 나 때문에 와 주셔서 놀아주시고 이야기 해주시고… 어제 두 분 교생실습 끝나셨어. 그래서 아침에 편지지 사러 나갔거든. 학교 앞에 문방구 다 닫아서 와동초까지 10분 만에 뛰어갔다 왔다. 근데 오는길에 장례식장 차가 오더라고 이쪽 사는 친구인가봐… 그거 보고 또 울고 보건실와서 계속 편지를 썼지. 일주일 만에 글쓰려니까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 여자 선생님꺼 먼저 또박또박 쓰다가 진짜 머리가 너무 깨질꺼 같아서 남자 선생님 것은 못 쓸거 같았는데 학교 수업 처음들왔는데 학생이 편지써주면 얼마나 감동이겠니… 남자 선생님 것은 글씨를 휘날려썼다. 편지쓰고 있던 도중에도 내가 뭐하고있었지… 보건 선생님한테 물어보기도하고 정말 정신이 없었다.
페이스북에 작년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선생님이 밥 사주시겠다고 글을 남기셨어. 그래서 저녁 시간에 산책 좀 하고있었는데 유진이하고 은수알지? 갑자기 5시에 튀어 나가는거야 ‘어디가냐’고했더니 돈까스 먹으러 간데 너무 배가고파서… 그래서 같이 가자 했지. 선생님 오셔서 차 타고 마포갈매기로 갔다. 우리 거기서 엄마 아빠하고 외식 자주 했었잖아. 네가 막 계란 신기하다면서. 처음 갔을 때… 되게 맛있게 먹었는데, 그치?
선생님이랑 이런 저런 얘기하고 떠들고 웃다보니 밤이 되서 학교로 다시 들어갔어. 문자가 왔더라고… DNA 검사 확인… 수원 시신 이송… 이틀 뒤 장례식… 뭔가 이게 대체…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고… 네가 돌아온 게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지 아닌지… 또 잠을 못 자고 오늘은 토요일,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글을 썼다. 점심 먹고 집 가려고… 그리고 내일이면 드디어 너를 본다.
네가 수학여행 가기 전 주에 캐리어 꼭 가져오라고 문자했잖아… 오빠는 평소처럼 귀찮아서 문자를 안 보냈다… 전화라도 해줄 걸 너무 후회된다… 카톡은 내가 항상 지워서 없다… 네가 캐리어 비밀번호 뭐냐고 물어봤잖아. 그냥 비번만 보내고… 정말 너무 너무 후회되고 가슴이 너무 아파. 전화 좀 해줄 걸… 일주일 동안 날씨가 정말 좋았다… 너와 친구들은 아마 천국에서 편히 쉬고있을 거 같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잘 보살펴 드리고, 푹 쉬어….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고 너와 같이 있었던 게, 엄마가 너한테 젖병 물려주라고 해서 네가 너무 귀여워서 젖병 물려줬는데… 엄마도 기억하시더라. 너네는 그때가 가장 사이좋았다고… 우리가 연년생이라 많이 싸우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정말 둘 다 서로 죽이고 싶다 하고… 고등학생이나 돼서야 내가 기숙사에서 살고 오빠 노릇 좀 해보겠다고 5만 원 백화점 상품권을 사다줬는데 네가 어찌나 좋아했던지… 정말 즐거웠다.
올해 2월에 네가 나 생일이라고 옷 사다줬잖아… 맘에 안 든다고 했더니 생일 선물 없다면서… 화 나가지고는 7만원짜리 뉴발 맨투맨을 사왔잖아… 그게 네가 나한테 준 마지막 선물이 됐네… 그때 정말 놀랐는데… ‘내 동생이 이런 비싼 걸 사오다니.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3월 달에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얘기했었잖아. 어차피 먼 나중일이니까 내가 드라마에서 봤는데 장례식을 날씨 좋은 날 공원에서 가족끼리 웃으면서 보내주는 걸 봤는데 정말 좋았다고. 나 죽으면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네가 ‘그게 뭐야’하면서 ‘그래도 뭐 괜찮네’라고 했었잖아… 근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정말로… 저저번 주에 사실 집 가려고 했었거든. 정말 답답해서… 근데 한 달 채워 보려고 안 갔어… 갈 걸 그랬다… 너무 후회된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우리도 페북에 좋은 남매 사이 사진 올려보자고 해서 사진 찍었잖아…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정말 가슴이 메어진다… 그래도 찍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로 참 느낀 게 많다. 세상 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고… 대체 우리나라 윗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지… 뉴스 기사 봤는데 안산 개인택시 운전사분들이 가족 분들 태워다 준다 하더라… 어이가 없어서 정말… 당연히 나라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심리치료도 바로 투입돼야 하는 거 아니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많을 텐데 다음 주부터래… 지금 사고 난 지가 2주일 정도 돼 가는데…
기자들은 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단원고 앞에서 인터뷰나 하려고 학생들한테 마이크 갖다대고 있고… 동네 돌아다니면서 인터뷰하려고 했대…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이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다. 단원고 2학년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친구들은 정말 괴로울 텐데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나도 외국 나가서 살고 싶다. 정말로…
오빠가 정말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건 너한테 예쁘다고 많이 못 해준 거, 집에서 애교 부리지 말고 노래도 하지 말라고 한 거, 편지 쓰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너한테는 못 써준 거, 너랑 멋진 데이트 한 번 못 해본 거다. 착한 내 동생… 못된 선장 말 너무 잘 들어가지고 배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겠지… 오빠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글 써주는 거 밖에 없는 거 같아 너무 슬프다.
보현아, 다음 생에 태어날 때는 나보다 더 멋지고 잘생긴 오빠나 예쁜 언니 아니면 나이 어린 귀여운 동생 가지길 바란다. 거의 20년 동안 너의 오빠여서 정말 행복했다.
사랑해 내 동생 구보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