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대한민국과 알제리의 2014 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은 안정과 변화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알제리의 4대 2 승리. 변화를 두려워해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 준 경기였다.
홍명보 한국축구 대표팀 감독은 알제리전에서 러시아와의 1차전과 똑같은 선발 명단을 들고 나왔다. 박주영이 또 원톱 스트라이커로 출격했고, 구자철은 섀도 스트라이커로 박주영의 뒤를 받쳤다. 좌우 날개로는 손흥민과 이청용이 호흡을 맞췄고, 기성용과 한국영은 중앙 미드필더로 나섰다. 포백 라인과 골키퍼에도 변화가 없었다.
반면 4-1-4-1 포메이션을 쓰는 알제리는 선발 11명 중 최전방과 2선 측면, 중앙 미드필더를 모두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바히드 할리호지치 알제리 감독은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선발 명단에 변화를 주겠다”고 예고했었다. 차범근 SBS 해설위원은 “엄청난 변화”라며 “월드컵에서 이 정도 변화를 준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팀을 꾸린 알제리는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녔다. 전반에만 세 골을 몰아쳤다. 할리호지치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선발 선수를 5명이나 바꾼 데 대해 “한국의 전술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며 “벨기에전에 나서지 못한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 한국을 흔들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후반에 조금 움직임이 둔해졌지만 오늘 우리는 전반적으로 완벽한 경기를 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홍 감독은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패했기 때문에 알제리에 대한 전력 분석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경기 초반 내준 세 골로 승부가 갈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날 할리호지치 감독이 분명히 공격적인 축구를 하겠다며 선발 명단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홍 감독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며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려 했는데 잘 안 됐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취임 당시 “소속팀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선수는 발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소속팀에서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한 박주영과 윤석영 등을 불렀다. 반면 K리그에서 펄펄 날던 이명주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박주영은 러시아전에 이어 알제리전에서도 골은커녕 슈팅조차 때리지 못했다. 그러자 홍 감독이 실력보다 의리만 따진다며 ‘엔트의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홍 감독은 한번 선수를 믿으면 끝까지 믿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상황에 맞는 유연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무1패(승점 1·골득실 -2)가 된 한국은 벨기에(승점 6·골득실 +2), 알제리(승점 3·골득실 +1), 러시아(승점 1·골득실 -1)에 밀려 H조 최하위에 자리했다. 한국은 27일 오전 5시 상파울루의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6강 진출의 마지막 희망을 타진한다. 벨기에는 한국전에서 몇몇 주전들을 쉬게 할 예정이다. 또 안정이냐, 아니면 이번엔 변화냐. 홍 감독이 이번엔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