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을 전격 결정했습니다. 두 차례 총리 지명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사실상 새 총리물색을 포기한 겁니다. 소식을 들은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태극전사들을 이끌고 브라질로 날아간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입니다. 공격수 박주영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 머리가 지끈지끈하지만 막상 특별한 대책이 없습니다.
정 총리는 지난 4월 27일 세월호 사고에서의 미흡한 대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새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지요. 그러나 예기치 않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변호사 시절 수입과 수임사건에 대해 고액수입·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이면서 안 전 대법관이 지명 엿새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난 겁니다.
박 대통령은 또 한번의 고민 끝에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 후보로 앉혔습니다. 하지만 문 전 주필 역시 지명 14일만인 지난 24일 후보직에서 사퇴했습니다. 과거 기고한 칼럼 내용에서 비롯된 역사 인식문제가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각계각층의 여러 후보가 다시 물망에 올랐습니다. 청렴한 법조인 재중용설도 돌았습니다. 새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까지 하는 데는 20여일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이미 61일간의 국정 공백 상태가 지속된 상황이었지요. 결국 박 대통령은 정 총리를 다시 불렀고,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이냐”는 질타가 나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박 대통령만큼 골치가 아픈 사람이 또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입니다.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를 치르고 있는 한국 대표팀은 2차전까지 치러진 현재 조 최하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첫 원정 8강 진출’이라는 목표 아래 야심차게 대회에 출전했으나 16강 진출마저 힘들게 돼버렸습니다. 27일 치러지는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 큰 점수차로 승리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벨기에는 피파랭킹 11위에 빛나는 강팀입니다.
비난의 화살은 대표팀 원톱 공격수 박주영에 쏠리는 양상입니다. 박주영은 홍 감독의 신임 속에 1, 2차전 선발 출장했지만 슈팅 한 번 기록하지 못한 참담한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외신에서는 혹평이 쏟아졌고, 축구팬들 사이에선 선수기용에 변화를 좀 주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근호나 김신욱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홍 감독의 1순위는 그래도 박주영입니다. 최근 소속팀에서의 미미한 역할과 함께 부진의 늪에 빠진 모습이지만 특유의 골 감각과 실력을 갖춘 선수인 건 사실이지요. 홍 감독이 경기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박주영이 실질적인 찬스를 만들지 못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아주는데 문제가 없었다”며 재기용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그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시간도 없고,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도 없는 수장들은 괴롭습니다. 선택은 힘들고 책임은 무거워져만 갑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