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벨기에-미국 전 뛰어든 훌리건, 그의 이유있는 난입

[친절한 쿡기자] 벨기에-미국 전 뛰어든 훌리건, 그의 이유있는 난입

기사승인 2014-07-02 16:37:55

“화면에 안 잡아줘야 돼요, 잡아주면 계속 들어와요.”

2일(한국시간) 브라질월드컵 벨기에와 미국의 16강 전 도중 한 남자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하자 중계방송을 하던 MBC 서형욱 해설위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훌리건의 목적은 관심을 끄는 겁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월드컵 무대에서 ‘친절하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훌리건들은 더욱 경거망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남자, 욕먹을 거 알면서도 ‘날 좀 보소’를 강행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SAVE FAVELAS CHILDREN(파벨라의 아이들을 구해줘요)’ 그가 입은 슈퍼맨 티셔츠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중계방송에선 먼 거리에서만 비춰 안 보였지만 경기 후 사진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파벨라는 포르투갈어로 빈민촌이란 뜻입니다. 브라질 정부가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2007년 이후 파벨라에 대한 정비작업에 나섰지만 여전히 굶주림과 범죄로 대변되는 ‘버려진 땅’입니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학교에 다닌다는 걸 다른 세상 이야기로 여긴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브라질은 2010년 경제성장률 7.5%를 기록했습니다.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거죠. 하지만 이후 급격하게 경기가 하락하면서 지난해 2.3%에 머물렀습니다. 올해 예상치는 1.8%입니다. 경제난 속에 월드컵에 큰 돈을 들이니 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공공서비스의 질은 떨어졌습니다.

빈민가의 고통은 더합니다. 정부가 월드컵을 위해 경기장과 도로를 건설하면서 강제퇴거 폭탄까지 맞았습니다. 시민단체 ‘월드컵·올림픽 인민위원회’에 따르면 월드컵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빈민은 20만 명이 넘습니다.

지금도 브라질의 경기장 밖 곳곳에선 월드컵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정부는 월드컵 개최에 투입된 110억 달러(11조2100억원)의 예산을 복지, 교육, 주택난 해소에 써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의 민심이 축구 때문에 흉흉해진 겁니다. 개막을 2주 정도 앞둔 지난 5월 27일엔 아마존강 유역에 사는 원주민 500여명이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활을 쏘며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과 다비드 루이스 등 브라질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이들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경기장에 난입한 남자가 브라질 빈민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든, 주목 한번 받아보고 싶었던 훌리건이든 국제경기를 방해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라는 것도 분명히 밝혀둡니다. 하지만 슈퍼맨 마크 아래 문구가 축제를 즐기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커튼 뒤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1분 만에 끌려 나왔는데요. ‘슈퍼맨의 1분’은 강렬했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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