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8시50분 출근길이던 호주의 한 남성이 지하철역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습니다. 꽉 들어찬 객차에 놀라 뒷걸음을 치다 왼쪽 다리가 객차와 승강장 사이 틈새에 완전히 빠져버린 겁니다.
운전사가 그대로 출발이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죠. 다행히도 직원이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이 직원은 즉각 운전사에게 상황을 알리고 동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밀어내 남성을 구하기로 합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지하철 타고 있던 승객들도 남성을 돕기 위해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어림잡아 100명 이상의 승객들이 ‘하나 둘 셋’ 신호에 맞춰 지하철을 밀어냅니다. 결국 남성은 10여분 만에 발을 빼낼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직원은 “동료가 남성을 살피고 있을 때 수많은 승객이 모여들었어요. 사람들은 힘을 모아 지하철과 승강장의 틈새를 벌렸죠. 그들이 아니었다면 남성을 구할 수 없었을 거예요”라며 승객들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호주 매체에 따르면 남성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렸던 승객은 “그는 걸으면서 다친 곳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조금 멋쩍어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의 다리가 빠진 틈새 바로 앞에 ‘틈새를 조심하시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거든요”라고 전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과 영상은 “감동적인 협동”이라는 찬사와 함께 세계 각국으로 퍼졌습니다. 한국엔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처음 소개했네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네티즌 반응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들은 영상을 본 후 “한국에서 사고가 났다면 신속하게 구조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걱정하더군요. 최근 잇따라 터진 지하철사고에서 일부 직원들이 보여준 안일한 대처 때문에 불신이 쌓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사고가 나면 승객들이 불안에 떨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상황인지 즉각 알려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상할 만큼 대응이 느립니다. 안내방송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이 반복됐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살길을 모색합니다. 직원을 찾거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판단해 알아서 행동하는 거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 때문에 피해를 키운 세월호 참사의 경험도 이런 경향을 부추겼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독단적인 판단이 사고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듭니다.
발빠진 승객구조는 우리나라가 ‘원조’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2003년 10월 13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40대 남성이 객차와 승강장 사이에 발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수십명의 승객들이 지하철을 밀어 구조한 적이 있었던 겁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이네요. 당시 많은 승객들이 합심해 객차를 밀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가 됐죠. 1년 전인 2013년 7월에도 일본서 30대 여성이 틈새에 빠졌는데 40여명의 승객들이 객차를 밀어내는 장관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본보기를 보였다니 뿌듯합니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임의식이 없어서 그렇지 시민의식과 협동정신은 꽤 괜찮은 편 아니냐”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지하철 밀어 승객구한 호주사람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