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가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아져 잠재적 자금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지만 업계 충격은 가시지 않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날 홈플러스가 신청한 기업회생절차에 대해 개시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별도의 관리인 선임 없이 현재 홈플러스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회생절차가 개시 됨에 따라 금융채권 상환은 유예되지만 협력업체와의 일반적인 상거래 채무는 전액 변제되며, 개시 결정 이후에 이뤄지는 모든 상거래에 대해서는 정상적으로 지급결제가 이뤄지게 된다.
이번 회생신청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비롯됐다. 지난달 28일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등은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이익 창출력 약화, 현금 창출력 대비 과중한 재무 부담을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신용평가 기준 A3는 '적기상환가능성은 일정수준 인정되지만, 단기적인 환경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신평은 이익창출력의 약화와 현금창출력 대비 과중한 재무부담, 중장기 사업 경쟁력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를 등급 하향 조정 이유로 들었다.
한신평은 “영업활동 효율화, 주요 점포 리뉴얼을 통한 수익성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나 점포 매각과 상대적으로 제한된 투자로 자체 경쟁력이 과거 대비 약화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점포 매각과 폐점 등에 따른 영업 중단에도 영업비용 절감 폭이 크지 않아 외형 변동 대비 높게 유지되는 고정비 부담도 수익성 반등을 제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한기평도 “영업실적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점, 과중한 재무부담이 지속되고 있는 점, 중단기 내 영업실적 및 재무구조 개선 여력이 크지 않을 전망인 점 등을 반영해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매출 기준 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는 이마트와 함께 국내 대형마트 시장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지만 재무 악화로 여러 차례 인수·합병을 거치는 등 굴곡진 역사를 겪었다.
1997년 삼성물산 유통사업부로 시작한 홈플러스는 그해 9월 대구에 첫 매장을 선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의 대기업 사업 구조조정으로 매각 위기에 놓였다.
결국 1999년 삼성물산이 영국 테스코에 경영권과 함께 지분의 49%를 넘기면서 홈플러스는 '삼성테스코' 합작법인으로 기사회생했다. 이후 삼성물산은 남은 지분마저 테스코에 순차적으로 매각했다.
테스코를 등에 업은 홈플러스는 2005년 영남권 슈퍼마켓 체인인 아람마트를 인수한 데 이어 2008년에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던 홈에버 매장을 일괄적으로 사들이며 몸집을 키웠다. 당시 홈플러스는 전국에 140여개 대형마트와 375개 슈퍼마켓, 327개 편의점 등을 갖춘 종합 유통 채널로 성장했다.
그러나 테스코 체제의 홈플러스도 오래가지 못했다. 테스코가 2014년 분식회계 스캔들에 휘말린 데가 영업실적도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며 홈플러스는 다시 한번 매물로 나오게 됐다.
그러다 MBK파트너스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2015년 9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와 싱가포르 테마섹 홀딩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약 7조 2000억원에 인수했다.
MBK는 20여개 홈플러스 점포를 매각하거나 재임대(S&LB) 방식으로 처분해 약 4조원의 부채를 갚았다.
그러나 인수 이후 홈플러스는 지속적인 경영난에 시달렸다. 유통업계의 경쟁 심화와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의 수익성이 악화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성장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MBK는 지난해부터 슈퍼마켓 분할 매각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인수 후보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홈플러스가 자금 경색의 징후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이날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개시와 관련해 “백의종군의 자세로 홈플러스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협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MBK는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향후 잠재적 단기 자금 부담을 선제적으로 경감해 홈플러스의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 ”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홈플러스는 2021년부터 영업손실을 내기 시작하면서 적자의 늪에 빠져있다. 2021년(회계연도 기준)과 2022년, 2023년 각각 1335억원과 2602억원, 199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2023년 회계연도에만 5743억원이 발생해 3년 연속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