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이한탁씨, 25년 만에 누명 벗다

“저는 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이한탁씨, 25년 만에 누명 벗다

기사승인 2014-08-10 13:35:55
미국에서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해 온 이한탁(79)씨가 25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연방중부지방법원 윌리엄 닐런 판사는 8일(현지시간) 이씨에게 내려졌던 방화·살해 혐의에 대한 유죄평결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무효화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AP통신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닐런 판사는 검찰에게 이씨를 향후 120일 안에 재기소하거나, 아니면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검찰이 지난 1989년 발생한 사건에 대해 새로운 증거로 재기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씨가 석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원은 지난 5월29일 이씨 재판에 대한 유효성을 가리기 위해 ‘증거심리’를 열었고, 검찰은 여기서 자신들의 증거가 과학적이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유죄평결을 사건 25년 만에 무효화 한 것이다.

증거심리를 주재한 마틴 칼슨 예심판사는 본심 판사에게 전달한 권고문에서 “25년 전 이씨의 유죄 판결을 가능하게 했던 방화 수사 증거가 비과학적이고 지금의 수사 기준으로는 인정될 수 없다. 그의 형벌과 유죄판결은 무효화돼야 하며, 검찰의 재기소가 없으면 이씨는 석방돼야 한다”고 밝혔고, 닐런 판사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씨의 변호인인 피터 골드버그는 다음 주 이씨에 대한 보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변이 없는 한 이씨는 올해 중 펜실베이니아 주립교도소에서 출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온한 삶을 살던 이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은 1989년 7월29일 새벽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 스트라우드 타운십에 있는 한 수양관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철도고등학교와 연세대를 거쳐 교사생활을 하다가 1978년 뉴욕으로 온 이씨는 맨해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평범한 이민자였다.

이씨는 사건 당일 큰딸 지연씨(당시 20세)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이 수양관을 찾았다. 화재 발생 후 이씨는 탈출했고 지연씨는 수양관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누전 등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방화 혐의를 제기했다. 그의 변호사조차 “우울증을 앓던 딸이 자살하기 위해 화재를 일으킨 것”이라며 사고보단 방화에 더 무게를 뒀다.

누전 등 사고에 의한 가능성이 크다는 화재 전문가들의 조사보고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결국 “우울증을 앓던 딸과 관계가 좋지 않던 이씨가 건물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고, 그의 셔츠와 바지에 묻어 있는 발화성 물질이 그 증거”라는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씨는 이후 변호사를 4차례나 바꿔가며 항소와 재심을 요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이씨의 아내도 투병생활을 하는 등 시련이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2012년 제3순회항소법원이 이씨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골드버거 변호사는 뉴욕시소방국 화재수사관 출신인 존 렌티니 박사의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고, “이씨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검찰 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 그의 옷에 묻은 발화물질이 모두 다르다”는 렌티니 박사의 주장에 대해 항소법원이 하급 법원에 ‘증거심리’를 명령한 것이다.

검찰은 5월29일 증거심리에서 렌티니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고, 오히려 렌티니 박사의 기법이 더 정확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씨를 기소했던 데이비드 크리스틴 먼로카운티 검사는 항소할 뜻을 보이면서 “시간이 너무 지나서 재기소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지만 얼마나 많은 증인이 아직 생존해 있는지,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당시를 기억하는지를 신중히 재검토하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섭 기자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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