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평온한 일요일 아침, 텔레비전을 보다가 경악했습니다. SBS ‘동물농장’을 보다가 말이죠. 백구 한 마리가 오토바이 뒤 줄에 묶여 질질 끌려 다니면서 학대를 당하는 현장이 그대로 방송됐습니다. ‘동물농장’은 학대를 가한 오토바이 차주를 끝까지 잡아내겠다고 약속하면서 방송을 마무리 지었는데요, 그러나 실상은 방송과 달랐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홈페이지에는 18일 ‘동물농장 악마오토바이 사건, 벌금 30만원으로 종결됐다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의 제목만 보고도 ‘고작 벌금 30만원?’이라며 혈압이 오를 텐데요. 그것보다 더 심한 방송사의 만행도 공개됐습니다.
해당 글에는 ‘악마 오토바이 사건’이 방송된 17일 바로 다음날, 동물사랑실천협회로 사건의 당사자인 오토바이의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오토바이 주인은 “돈을 받고 보신탕집에 개를 잡아주는 일을 처음으로 하다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며 “그렇게 큰 잘못인지 몰랐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 큰 잘못을 했고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우선 개의 안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놀라웠습니다. “사건 당일 개는 바로 해당 식당에 넘겼다.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고 벌금 30만원을 내고 끝났다”고 말했다네요. 즉 오토바이에 끌려 다닌 백구의 영상을 찍은 블랙박스 차량 차주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고, 오토바이 주인은 벌금을 내면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동물농장’ 측과 이 사건에 대해 이미 인터뷰를 끝냈다는 거죠. 인터뷰까지 끝냈으면서 방송에서는 “오토바이 주인을 잡을 때까지 ‘동물농장’은 끝까지 가겠습니다”라니요.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이 같은 사실에 분노하며 홈페이지에 고발글을 올린 것입니다. 협회는 이 사건에 대해 두 가지의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첫째, 17일 방송된 ‘동물농장’은 사건이 아직 종결되지 않은 것처럼 끝을 맺었다. 방송의 지나친 상업적 편집에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이미 끝난 사건결과를 숨김으로써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 모으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상업적 방송이라도 방송윤리와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것은 아닐지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피를 흘리며 끌려가던 백구의 고통에 비해 벌금 30만원은 말도 안 된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에 항상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동물보호단체가 수년간 싸워 동물보호법이 개정된다 한들 판결이 항상 약하게 나게 되면 사람들은 동물학대가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법은 처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예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향후 이런 범죄가 재차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법부의 각성을 요구하는 바다.”
협회의 고발에 시청자들도 격분했습니다. ‘동물농장’ 시청자 게시판에는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냐”며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종결된 사건을 가지고 방송 말미에 구겨 넣듯이 보내다니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방송 보고 난 후에도 계속 백구가 머릿속에 떠올라 일에 손에 안 잡히고 했던 내가 바보 같네요”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음주에 또 진행사항을 보라는 건가요?” “시청률 높이려는 수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생명가지고 장난치면 천벌 받는다” “시청자 바보취급하지 맙시다”라며 ‘동물농장’의 폐지를 촉구했습니다.
백구를 오토바이에 매달아 끌고 다닌 주인, 아무리 반성한다고 해도 그의 파렴치한 행동에 용서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불어 이를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마의 편집까지 한 ‘동물농장’, 그리고 이 같은 악행에도 처벌은 고작 벌금 30만원인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입니다. 사과와 법 개정이 있다고 한들 상처받아 떠난 백구는 우리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SBS ‘동물농장’ 측은 기사가 나간 뒤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지금 경찰 및 검찰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취재 중”이라며 “오토바이 차주를 인터뷰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 계속 바뀌고 있는 등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악마의 편집이라는 지적은 지나친 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정확한 내용을 추후 방송을 통해 해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혜리 기자 hye@kmib.co.kr